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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Jul 19. 2023

성경위 마약

캐나다에서 집주인 아줌마 되기

청소 두 번째 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벌써 며칠이 지난 시간이지만 아직도 글을 쓰며 분노의 감정을 진정시킬 수가 없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 나의 감정이 날것으로 그냥 드러날까 봐 부끄럽고 조심스럽다.


오늘은 집안 내부의 쓰레기들을 치우기로 했다. 지난번 보다 더 큰 쓰레기봉투를 준비하고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와 목장갑 그리고 목장갑 속에 일회용 비닐장갑까지 철저하게 준비해 갔다. 큰 가구들과 장식품들을 먼저 한쪽으로 몰아넣고 우리는 쓰레기를 봉투 속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건 사이사이에 숨겨놓은 주사기들이 너무 많아서 좀처럼 일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이름 모를 약병들과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하얀 가루들 때문에 마스크와 장갑을 몇번씩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혹시나 주사기에 찔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결국 손으로 주어 담기를 포기하고 우리는 정원에서 낙엽을 끌어 모을 때 쓰는 낙엽 갈퀴와 삽을 이용하여 쓰레기봉투에 옮겨 담았다.


공간마다 성경책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건지.

성경을 읽기 위해 성경책을 옆에 두었을까?

아니면 마약을 하는데 성경책만큼 튼튼한 도구가 없었을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죄책감과 정당성, 합리화를 위한 장식품이었을까?

성경책 위에 은박지를 깔아놓고 마약을 불에 그을린 현장들을 집안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었다.

특히 여성들이 사용했을 법한 물건들이 가득한 지하방에는 벽 한가운데 세 개의 십자가 그림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고 바로 그 그림 아래 쾌락을 즐겼을 침대와 성경책, 주사기, 약병들이 주인 잃은 옷가지들과 함께 여기저기 얽혀있었다. 말 그대로 지옥과 천국이 오고 가는 현장이었을 것이다.




캐서린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을 위해 따뜻한 저녁을 지었을 오래된 부엌에는 누구를 위한 희망인지 그 대상을 잃어버린 HOPE이란 단어만 온전히 그 모양새를 유지하며 단어의 의미가 무색하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HOPE이 있었을까? 그녀에게도 그리고 지금 이 공간에 서있는 나에게도 차갑게만 느껴지는 단어였다.


신랑이 무겁게 입을 연다.


"생각해 보면 캐서린 불쌍해. 정말 착하게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아들 때문에 이렇게 계속 도망자처럼 살아가는 거잖아. 불쌍하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도 캐서린을 동정했었다. 같은 엄마로서 '사랑으로 키웠을 아들이 이렇게 마약에 찌들어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속상할까...' 조금이라도 그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청소를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들이 엄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바로 캐서린이 아들을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불쌍한 사람은 캐서린이 아니라 바로 아들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수많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우리는 학교 졸업장, 운전면허증, 카드명세서 심지어 캐나다 헬스케어 카드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가 캐서린의 아들과 그리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을 친구들의 것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어느 한 곳에서도 캐서린의 이름으로 된 메모지 한 장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미 철저하게 자신의 모든 물건들과 자신과 관련된 서류들을 꼼꼼하게 챙겨서 달아난 것이다. 아들을 염려한 엄마의 모습이 아닌 모든 죄와 책임을 고스란히 아들에게 떠넘긴 엄마의 흔적이었다.

아참! 캐서린이 남기고 간 편지가 있기는 했다. 마치 우리가 봐주기를 바랐다는 듯이 아주 잘 격리되어 발견되기 쉽게 서랍 안에 보관되어 있던 교회에서 온 두통의 편지였다.

 

첫 번째 편지를 요약하자면, 캐서린이 교회에 도네이션 해준 $80에 대한 교회 측의 감사의 편지였다. 늘 선한 영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쓰는 캐서린에 대한 고마움의 편지였다.

두 번째 편지는 캐서린이 교회 측에 부탁한 기도내용에 대한 답장편지였다. 어떤 기도내용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캐서린의 기도가 이루어 지기를 바란다며, 꼭 그녀의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중보기도 하겠다는 편지 내용이었다.

자기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일부러 남기고 간 자신의 흔적이었을까? 

자기는 이미 회개했으니 너무 자신을 원망하지 말라는 간접적 메시지였을까?

난 흑과 백이 공존하고 희망과 절망 그리고 희열과 경멸이 공존하는 복잡한 현장 중심에 서있다.


캐서린의 미납금액이 렌트비와 유틸리티 비용을 포함하여 6천 불이 조금 넘는다. 아마 이 집을 수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5만 불 가까이 들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며칠이 지나 감정을 추스르고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난 억장이 무너지고 눈물이 쏟아져 하나님이라는 이름조차 부르지도 못하고 기도할 힘도 없이 끙끙대고 있다.

80불 헌금으로 오늘도 그녀의 기도제목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목사님에게 당장이라도 달려가 따져 묻고 싶었다.


"그녀의 기도제목 중에 피해를 준 우리에게 대한 미안한 마음과 사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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