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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Jul 17. 2023

덮는다고 숨겨지니?

캐나다에서 집주인 아줌마 되기

Eviction Notice로 사람들을 내보낸 후 다음 날.

랜트집을 돌아본 후 남편과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듯 보통과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 약속이라도 한 듯 아침밥을 먹고 주섬주섬 청소도구들을 챙겨서 트럭에 옮겨 실었다.


"우리가 완벽하게는 청소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분들이 작업하기 쉽게 대충 쓰레기라도 정리해 보자."


더 이상은 집을 오픈상태로 놔둘 수가 없어서 오늘부터 청소를 하기로 했다. 그래야 전기설치해 주시는 분도 부르고 청소업체도 부를 테니 말이다.


우리 집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한 마음뿐이다. 게다가 며칠 동안 밖에 방치되어 있는 쓰레기라도 빨리 치워야 했다.

제일 큰 사이즈의 쓰레기봉투에 하나하나 쓰레기를 담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치우다 보니 생각 없이 쓰레기더미에 던져놓은 그들의 신상이 담긴 개인서류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밖에서만 3명의 신상정보를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집에서 생활했을지 알 수는 없지만 꼬박꼬박 카드값을 내고, 자동차 보험을 리뉴하며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그들의 공통점이 보였다. 먹다 남은 음식, 마약에 사용했던 주사기와 각종 약물, 담배꽁초, 그리고 본인들의 서류들을 쌓아놓고 그 위를 솜이나 이불로 덮어놓은 것이다. 몇 년 동안 집을 방문할 때마다 마당 한쪽에 가득 쌓여있는 낙엽과 흙무더기를 보며 집 외부 관리까지 잘해주는 캐서린에게 고맙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났다. 이상한 마음이 들어 삽으로 파보니 그곳에도 역시나 주사기와 담배, 약병등이 나왔다. 이런 더러운 쓰레기들을 버리고 흙과 낙엽으로 덮어놓은 것이었다. 조금만 더 눈치가 빨랐다면,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조금만 더 잘 알았다면 이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까? 겨우 솜과 흙으로 덮어놓는다고 그들의 잘못된 행위가 감춰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청소 전 후

정원에 쓰레기만 치우는데도 한나절이 걸렸다. 트럭 가득 쓰레기를 싣고 쓰레기처리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길 건너 이웃집에서 상냥한 미소를 띤 중국인 아줌마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이웃 : 네가 이 집주인이니? 너희 집 일 정말 유감이야.


신랑 : 진짜 미안해. 이 사람들 나갔으니 이제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을 거야. 집수리도 깨끗이 해서 이 커뮤니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좋은 세입자를 구하도록 할게. 미안해.


이웃 : 너희가 무슨 잘못이니. 아마 이 동네 사람들 다 이해할 거라 생각해. 사실 여기 살던 사람들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어. 이웃집에서 힘든 일이라도 하는 것 같으면 바로 달려와서 도와줄 것 없냐며 물어보곤 했어. 그런데 아무리 사람이 착해도 약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봐. 약만 하면 사람이 변하더라고. 여기에서 20년을 넘게 살았는데 나도 이런 이웃은 처음이었어. 무섭기는 했지만 너희 입장 이해해.


이해한다니 고맙기는 하지만 온 동네가 다 알고 있을 이 불길한 집에 어떤 세입자가 들어오고 싶어 할지 갑자기 두려워졌다. 우리 집의 이런 과거가 솜이나 흙, 낙엽으로 덮는다고 감춰지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쯤 너희들은 또 다른 곳에서
너희의 행위를 무언가로 덮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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