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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Aug 05. 2023

김칫국이면 어때! 내일을 꿈꾸자.

벌써 에드먼튼 집 공사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이 모든 쓰레기들과 오물을 어떻게 치워야 할지...

망가진 문은 어떻게 고쳐야 야할지...

누구한테 부탁을 해야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감쪽같이 우리 집을 고쳐줄 수 있을지...

과연 우리 집에 살고 싶은 세입자가 또 있을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염치도 없다. 저렴한 가격으로 감쪽같이 수리를 해줄 천사같이 착한 아니, 바보같이 착한 신의 손을 기대하며 여기저기 전문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설령 천사의 마음과 신의 손을 가진 전문가를 찾았다 해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모아둔 여유자금이 없기에 공사비용을 마련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고, 공사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게 최선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또한 팬더믹 이후 경기침체기를 겪으며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에 이른 것 같다. 캐나다 가계부채가 G7(주요 7개국)중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기사를 읽었다. 최대한 저렴한 이자로 큰돈을 빌리기 위해 담보대출과 Home Equity Line of Credit 등 다양한 상품들을 알아보는 것도 지금 같은 상황에는 쉽지가 않았다. 친구들은 '골칫덩어리 집 이 기회에 팔아버려'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했지만 당장 이 집을 팔고 손을 턴다고 해도 어찌 되었든 집은 수리해야 마켓에라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무엇인가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신랑이 급하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타게 찾았던 마음 착하고 신의 손까지 가진 구세주를 만난듯한 환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죤이 수리해 주겠데!"

죤은 신랑의 축구동호회 친구로 자기 손으로 직접 집도 멋지게 지어본 경험이 있는 손재주가 좋은 친구이다. 에드먼튼으로 이사를 간 후 한동안 연락이 뜸한 것 같았는데 순간 신랑의 머리에 죤이 떠올랐나 보다. 몇 년 전 목공을 전공한 큰아들과 함께 소소하게 핸디맨 개인 비즈니스를 시작했다는 그는 아들과 둘이 집을 수리해 보겠다며 너무 걱정 말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아직까지 그럴듯한 큰 공사가 없었던 그는 우리 집 공사가 자기에게도 큰 홍보의 기회가 될 것 같다며 지체 없이 바로 공사에 착수했다.


하루 만에 가장 걱정했던 출입문 문제가 해결되었다. 너무 오래된 집이라 문 사이즈가 일반 규격사이즈와 달라서 걱정을 했었는데 세큐리티 도어락까지 설치해서 교체해 놓았다. 이렇게 문만 바꾸었을 뿐인데 이미 마음속에 안정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두 번째 날에는 끔찍한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했던 내부가 깨끗해졌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카펫이 걷어지고 나무골격이 수줍게 그 속살을 내비쳤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물도 나오지 않는 그곳에서 죤은 해가 돕는 시간 동안 이 모든 일을 빠르게 처리해 나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거실과 부엌사이에 답답하게 가로막혀 있던 벽을 뚫어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칵테일 바를 디자인 하고 있었고, 싱크대옆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여 그곳에 음식과 음료수 등을 저장할 수 있는 팬트리를 짜넣기로 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카펫을 걷어내는 일은 죤의 아버지와 세 아이들이 모두 와서 함께 일을 거들었다고 한다. 죤의 첫 큰 공사에 가족 모두가 돕는 모습이었다. 부엌 케비넷교채 때문에 잠깐 죤과 상의해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친절하게 자기가 계획하는 우리 집의 새로운 모습을 설명해 주었다. 비록 전문가처럼 3D나 캐드 같은 디자인 도면은 없었지만 그의 설명 만으로도 신기하게 내 머릿속에 빠르게 그림이 그려졌다. 그의 구두 도면에는 소파를 놓을 자리와 멋진 그림이 걸릴 자리 그리고 아담한 전기벽난로 자리까지 아주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었다. 

"언제 이렇게 디테일하게 생각을 다 한 거야?"

그의 대답은 너무 의외였다.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공사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많은 부분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함께 청소를 하고 공사를 하면서 하나둘씩 자기의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고 새로운 공간을 상상하는 동안 아이들도 죤도 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한다.

에드먼턴 집을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나고, 속상하고, 절망스럽고, 두려웠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곳에서 더 나아질 모습을 상상하며 힘들고 고단한 일도 즐겁게 생각하며 일하고 있었다니 모든 상황을 절망스럽게 바라봤던 나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

아직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말갛게 속살만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지만 내 눈에도 깔끔하고 세련되게 다시 태어난 나의 집이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어떻게 이 멋진 공간을 소개할까?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서 행복을 만들어 갈까? 김칫국부터 마시기 시작하며 속도 없이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래! 내일을 꿈꾸자.

난 아무래도 정말 착한 신의 손을 만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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