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사람이 드디어 폐경이 왔어. 완전 다른 사람이 됐다니까."
퇴직 후 정기적으로 만나는 동기 모임에서 정수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50대 중반, 비슷한 시기에 명예퇴직을 한 친구들이다. 25년간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올랐지만, 이제는 그저 동네 아저씨들이다.
"어떻게 다른데?" 내가 물었다.
"갑자기 영상 편집 배운다고 학원 다니고,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어. 50년 넘게 살면서 처음 보는 열정이야. 폐경 후에 오히려 에너지가 넘친다니까."
집에 돌아와 아내를 봤다. 49세의 아내는 아직 규칙적으로 생리를 한다. 가끔 "이제 곧 끝날 텐데"라고 말하지만, 아직은 그 시간이 오지 않았다.
"정수 집사람이 폐경 후에 완전 변했다던데."
저녁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내가 웃으며 답했다.
"은정이 언니 얘기 들었어. 요즘 완전 제2의 인생 산다고 하더라.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
"뭐가 두려워?"
"모르겠어. 그냥... 변한다는 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가 된다는 게."
회사 선배를 만나러 갔다. 60대 초반인 선배는 5년 전 은퇴했고, 부인은 작년에 완전히 폐경을 맞았다고 했다.
"폐경이 오면서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어. 밤에 잠도 못 자고, 갑자기 울기도 하고. 처음엔 나도 당황했지."
"어떻게 하셨어요?"
"각방을 쓰기 시작했어. 아내가 먼저 제안했는데, 처음엔 섭섭했지. 하지만 그게 서로를 위한 배려더라고. 아내는 편하게 뒤척일 수 있고, 나는 푹 잘 수 있고."
선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각방을 쓰면서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어. 아침에 부엌에서 만나면 '잘 잤어?'라고 인사하는데, 그게 데이트하는 것처럼 설레더라고."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와서 아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우리도 미리 준비하면 어떨까? 폐경이 오기 전에."
"무슨 준비?"
"각자의 공간을 만드는 거야. 너도 네 공간이 필요하고, 나도 내 공간이 필요하잖아."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벌써부터 각방 쓰자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서재를 내 작업실로, 작은 방을 네 공간으로 꾸미자는 거야. 폐경이 오든 안 오든, 우리 각자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 주말, 우리는 집을 재정리했다. 서재는 내 목공 작업실로, 드레스룸 옆 작은 방은 아내의 개인 공간으로 꾸몄다. 아내는 그곳에 요가 매트를 깔고 작은 책상을 놓았다.
"이상하지? 결혼 25년 만에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어."
아내가 신기해하며 말했다.
"좋지 않아? 각자의 동굴이 있는 거야."
우리는 약속했다. 저녁 7시 전까지는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7시가 되면 거실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기로.
몇 달이 지났다. 아내는 자신의 방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대학 때 못다 한 심리학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나는 목공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요즘 친구들이 하나둘 폐경이 오고 있어. 다들 힘들어하더라. 근데 나는 이상하게 덜 두려워."
"왜?"
"우리가 미리 준비했잖아. 각자의 공간도 있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폐경이 와도 우리는 괜찮을 것 같아."
동기 모임에서 우리 부부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신기해했다.
"아직 폐경도 안 왔는데 벌써 각자 방을 만들었다고?"
"미리 준비하는 거지. 폐경이든 뭐든, 우리 나이면 변화가 올 수밖에 없잖아."
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 집사람도 갑자기 폐경이 와서 당황했거든.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느 날 밤, 아내가 내 작업실로 와서 말했다.
"고마워."
"뭐가?"
"미리 준비하자고 한 거. 사실 폐경이 두려웠어. 여자로서 끝나는 것 같고, 늙는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 같고. 근데 요즘은 오히려 기대돼."
"기대가 된다고?"
"응. 폐경이 오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잖아. 호르몬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다고. 그때가 오면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걸 해보고 싶어."
아내는 아직 폐경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변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25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퇴직한 나는, 이제야 아내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를. 그리고 그녀도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부장님이 아닌, 그냥 한 남자로서의 나를.
언젠가 아내에게 폐경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준비했으니까. 각자의 공간, 서로에 대한 이해,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
친구들은 묻는다. "왜 미리부터 그런 준비를 하냐?"고.
나는 답한다. "변화는 갑자기 오는 게 아니야. 우리가 먼저 변하면, 어떤 변화가 와도 받아들일 수 있어."
오늘도 나는 작업실에서 나무를 다듬고, 아내는 자기 방에서 책을 읽는다. 7시가 되면 거실에서 만나 와인을 마시며 하루를 나눌 것이다.
폐경이 오든 안 오든, 우리는 계속 함께 그리고 따로 살아갈 것이다. 서로의 궤도를 존중하며, 각자의 빛을 발하면서, 그래도 같은 우주 안에서.
이것이 50대 부부가 찾은 지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 그 기다림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