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지 않는 사랑의 기술

by 홍종민

상담실에서 만난 오르페우스들


오후 4시 30분. 상담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30대 초반의 여성이 들어왔다. 눈가가 부어있었고, 손에는 생년월시를 적은 종이를 꼭 쥐고 있었다.

"선생님, 제 사주에 이별수가 있나요?"

연화는 남자친구 지훈과 2년째 사귀고 있었다. 모든 게 좋았지만 한 가지에 갇혀 있었다. 지훈의 전 여자친구 소미에 대해 알게 된 후,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미가 저보다 더 예쁠까요? 지훈이가 저보다 소미를 더 사랑했을까요?"

15년간 사주상담과 정신분석을 병행하면서 내가 발견한 진실이 있다. 사람들이 과거를 캐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는 것. 연화의 눈물 속에서 나는 수많은 현대판 오르페우스들을 보았다.


신화가 건네는 경고


그날 저녁, 김서영 교수의 『아주 사적인 신화 읽기』를 다시 펼쳤다. 오르페우스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라"는 약속을 어기고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었다는 그 대목. 저자는 이것이 "연인의 과거를 지나치게 궁금해하는 현대인의 심리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썼다.

책을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내가 상담실에서 매일 목격하는 비극이 이미 수천 년 전 신화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오르페우스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에우리디케가 정말로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마치 연화가 지금 지훈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오르페우스의 실패는 단순한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뢰의 부재, 더 정확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의 결핍이었다.


내가 저지른 오르페우스의 실수


총각때 나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 당시 사귀던 미경에게 끝없이 질문했다.

"그 의대생 선배가 나보다 더 똑똑했지?" "아직도 그 사람 생각해?"

질문은 독이 되어 관계를 갉아먹었다. 6개월 후 미경이 말했다.

"오빠, 나는 오빠와 현재를 살고 싶어요. 과거가 아니라."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미경의 과거와 싸우는 동안, 정작 우리의 현재는 시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같은 상처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주가 드러내는 불안의 근원


연화의 사주를 보니 일간이 약했다. 丁火(정화)인데 목(木)의 도움 없이 혼자서 타고 있었다. 이런 사주는 자존감이 낮아서 상대방의 과거에 집착하기 쉽다.

흥미롭게도 15년간 상담하면서 발견한 패턴이 있다. 비견(比肩)이 강한 사주는 본능적으로 남과 비교한다. 편관(偏官)이 강한 사주는 과거를 통제하려 한다. 상관(傷官)이 강한 사주는 완벽한 사랑을 원한다.

하지만 사주는 운명이 아니라 성향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과거를 묻지 않는 사랑의 전략


수많은 상담을 통해 나는 세 가지 핵심을 발견했다.

첫째, 현재 순간에 집중하기.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 이것만이 중요하다. 김서영 교수의 말처럼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사랑을 지속시키는 길"이다.


둘째, 과거를 동반자로 보기. 그 모든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 사람이 있다. 과거를 적이 아닌, 그를 만든 소중한 재료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셋째, 함께 새로운 이야기 쓰기. 과거와 경쟁하지 말고 둘만의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우리가 만들 수 있다.


연화의 변화, 그리고 깨달음


6개월 후, 연화를 다시 만났다.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선생님, 지훈이와 정말 잘되고 있어요. 소미 얘기는 더 이상 안 해요. 대신 지훈이와 함께 요리 클래스를 듣고, 매주 새로운 전시회를 봐요."

더 중요한 변화는 연화 자신에게 일어났다. 자존감이 높아지니 지훈의 과거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이 핵심이다. 사랑은 과거를 묻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물을 필요가 없을 만큼 현재가 충만한 것이다.


사랑은 과거를 묻지 않는다


김서영 교수는 책에서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 문장을 읽으며 깨달았다. 우리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현재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에서 온다.

사랑은 과거의 퍼즐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현재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연인의 과거가 궁금한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것을 파헤치는 순간, 우리는 오르페우스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묻지 않는다. 과거에 누구를 만났는지,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연인들에게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대신 현재를 물으세요.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일 어디를 가고 싶은지, 함께 어떤 추억을 만들고 싶은지."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본 것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실패를 통해 우리는 배운다. 사랑은 과거를 캐묻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뒤돌아보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하지만 앞만 보고 함께 걸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오르페우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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