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비밀 루틴

by 홍종민

19세기 독일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평생 우울과 염세주의에 시달렸다. 그의 일기에는 "세상은 의지와 표상일 뿐,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절망적 문장들이 가득하다.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했고, 어머니 요한나와는 평생 갈등 관계였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가 매일 아침 정확히 7시에 일어나 2시간씩 프랑크푸르트 거리를 걸었다는 사실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몸이 아파도 그 루틴만은 평생 지켰다. 20세기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렸지만, 매일 카페 드 플로르에 나가 글을 썼다. 그토록 절망적이었던 두 철학자가 인류 사상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작은 루틴 때문이었다. 매일의 산책과 카페행이 절망을 철학으로 바꾸는 통로가 된 것이다. 현대 정신과 의사 김병수가 발견한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작은 행동이 우울을 이긴다. 우울해지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라는 느낌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활동을 아주 잘게 쪼개면 적은 의욕으로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김병수, 2020: 135)라고 했다.


쇼펜하우어의 생존 전략, 매일 2시간 산책


쇼펜하우어의 우울은 단순한 기분 저하가 아니었다. 그는 17세에 아버지 하인리히가 함부르크 운하에서 의문사한 것을 목격했다.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불분명했지만, 그 충격으로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세상에 대한 불신에 시달렸다. 어머니 요한나는 유명한 소설가였지만, 아들과는 차가운 관계를 유지했다. "당신은 나에게 짐일 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쇼펜하우어에게 우울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토록 절망적이었던 그가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아침 7시 기상, 차가운 물로 목욕, 아침식사 후 오전에는 집필,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반드시 산책. 60년 넘게 이 루틴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그의 산책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한 '승화'가 바로 이런 것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충동을 건설적인 활동으로 전환시키는 무의식의 방어기제. 쇼펜하우어에게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절망을 철학으로 승화시키는 통로였던 셈이다. 걸으면서 그는 생각했고, 생각하면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핵심 개념들을 완성해갔다.

실제로 그의 대표작들은 모두 산책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들로 완성됐다. "인간은 욕망하거나 권태로워하거나 둘 중 하나다"라는 유명한 명제도, "삶은 고통이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권태일 뿐"이라는 염세주의 철학도 모두 프랑크푸르트 거리를 걸으며 탄생했다. 그 작은 행동이 인류 철학사를 바꾼 것이다.


사르트르의 카페 철학, 공간이 주는 치유력


사르트르의 경우는 더욱 흥미롭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시와 작은 키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장애, 그리고 메스칼린 중독까지 겪었다. 그의 자서전 『말』에 따르면, 집에 혼자 있으면 "무의 공포"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구원의 공간이 있었다. 바로 생제르맹 데프레의 카페 드 플로르였다. 그의 평생 동반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회고록에 따르면, 사르트르는 집에서는 한 줄도 쓰지 못했지만 카페에 가면 하루에 10-15페이지씩 써냈다. 카페의 소음과 사람들의 시선이 오히려 그에게는 집중력을 주는 요소였다.

칼 구스타프 융이 말한 '외향적 성격'의 전형적인 사례다. 융은 인간을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분류했는데, 외향형은 외부 자극이 있어야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사르트르에게 카페는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라 창작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적 장치였던 것이다. 집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무력감을 카페의 활기로 상쇄시킨 셈이다.

김병수는 이런 공간 이동의 중요성을 정확히 지적했다. "우울증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활동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운동입니다. 몸부터 살살 달래가며 행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우울증 치료에서 제일 중요합니다. 움직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바뀝니다"(김병수, 2020: 136)라고 했다.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 『구토』, 『자유에로의 길』 등 20세기 실존주의의 대표작들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원리 때문이다. 절망적인 마음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몸부터 움직인 결과다. 생제르맹에서 카페 드 플로르까지 걸어가는 그 10분의 발걸음이 바로 실존주의 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행동이 먼저, 기분은 나중이라는 절대 법칙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순서다. 쇼펜하우어도 사르트르도 기분이 좋아져서 산책하고 카페에 간 게 아니다. 일단 몸을 움직이고 나서 마음이 따라온 것이다. 그게 바로 팩트다. 우울할 때 '기분부터 바꿔야지' 하는 건 산소 없는 곳에서 숨 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생존이 불가능하다.

현대 뇌과학이 이를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 하인츠 코헛이 발견한 '자기대상' 개념으로 보면, 쇼펜하우어에게는 매일의 산책이, 사르트르에게는 카페라는 공간이 자존감을 지켜주는 자기대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자기대상이란 자신의 심리적 안정성을 유지해주는 외부 요소를 말한다. 사람일 수도 있고, 장소나 활동일 수도 있다.

예외가 없다. 우울이 심할수록 더 작은 행동이 필요하다는 게 일종의 법칙이다. 1밀리미터라도 몸을 움직이면 뇌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세로토닌과 도파민 분비가 늘어나고, 전두엽의 활성도가 높아진다. 두 철학자가 몰랐던 뇌과학적 메커니즘이지만, 그들은 이미 그 원리를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신기한 건 이 두 철학자의 공통점이다. 둘 다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둘 다 자신만의 작은 루틴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쇼펜하우어는 7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르트르는 75세로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루틴을 지켰다. 이게 바로 생존의 최소 조건이었던 것이다.


절망도 루틴이 구원한다는 현실


두 철학자에게는 든든한 부모나 안정적인 환경이 없었다. 대신 그들은 스스로 매일의 작은 루틴을 만들어냈다. 그 루틴이 바로 그들에게는 심리적 안전망 역할을 했던 것이다.

김병수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활동을 추구하면서 늘 활동 상태에 있기 위해 노력하면 스트레스 면역력이 길러집니다. 우울한 기분이 들어도 우울증으로 이어지지 않게 예방할 수 있습니다"(김병수, 2020: 137)라고 했다.

바로 이거다. 쇼펜하우어와 사르트르가 위대한 건 그들의 철학 때문만이 아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작은 행동들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매일의 산책과 카페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존재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였다.

현실은 이렇다. 우울이라는 거대한 어둠 앞에서도 "그래도 오늘은 걸어야지", "그래도 오늘은 카페에 가야지" 하며 버텨낸 사람들이 결국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그 작은 행동들이 인류의 사상사를 바꾼 것이다. 당신의 작은 행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한 걸음이 무엇인지 찾아보라. 그게 바로 당신만의 철학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김병수(2020).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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