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떠오른 그 이미지가 정답이다
상담의 기술은 듣기가 아니다. 무의식으로 듣는 것이다.
"왜 상담을 받으러 왔어요?" "음... 제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사람, 거짓말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본인도 모른다. 성격 문제? 그게 진짜 이유일 리 없다. 하지만 나는 따져 묻지 않는다. "성격이 어떤 점이 문제인데요?" 같은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냥 듣는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숨은 것을 듣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담자가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틀렸다. 상담자는 귀로 듣지 않는다. 무의식으로 듣는다. 내담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 그게 정신분석적 듣기의 본질이다.
내담자는 자기가 하는 말을 모른다
놀라운 사실 하나. 상담실에 온 사람들 중 90% 이상이 자기가 왜 왔는지 정확히 모른다. "남편 때문에요." "직장 상사 때문에요." "불안해서요." 다 거짓말이다. 아니,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본인도 모르는 거다.
진짜 이유는 무의식 속에 있다.
30대 여성이 왔다. "남편이 게임만 해요. 대화가 안 돼요."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내 머릿속에 "건국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왜? 모르겠다. 그냥 떠올랐다.
"혹시 건국대와 관련된 게 있나요?"
"어떻게... 남편이 건국대 출신이에요. 거기서 만났어요."
그 순간 뭔가 풀렸다. 이 여성의 문제는 남편의 게임이 아니었다. 건국대 시절, 캠퍼스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그때 그 남자. 지금은 사라졌다. 게임만 하는 남자만 남았다.
내가 들은 건 그녀가 한 말이 아니다. 그녀의 무의식이 보낸 신호다.
레버리 - 멍때리며 듣는 기술
이게 뭘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비온(Bion)은 이를 '레버리(reverie)'라고 불렀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몽상'이다. 일상어로 치면? 멍때리기.
맞다. 상담자는 멍때린다. 내담자의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멍때린다. 의식은 내담자의 말을 듣고, 무의식은 꿈을 꾼다. 깨어 있는 꿈.
레버리는 상담 중에 꿈을 꾸는 것이다.
밤에 자면서 꾸는 꿈처럼, 논리적이지 않다. 체계적이지도 않다. 갑자기 건국대가 떠오르거나, 제주도가 보이거나, 싱크대가 떠오른다. 이게 다 무의식의 언어다.
엄마가 아기를 품듯 - 비온의 모성적 레버리
"비온은 투사적 동일시를 전적으로 무의식적인 심리내적 환상에서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의사소통의 상호주관적인 형태로 확장했다"(Grotstein, 2012: 60-61).
비온은 멜라니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 개념을 완전히 다르게 봤다. 클라인에게 투사적 동일시는 병리적 방어기제였다. 하지만 비온은 이것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정상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봤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밤에 아기가 운다. 배고픈지, 기저귀가 젖었는지, 아픈지 알 수 없다. 아기는 말을 못 한다. 그냥 운다. 하지만 엄마는 안다. 엄마는 그 울음을 받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느낀다.
'아, 배고프구나.'
어떻게 아는가? 엄마의 무의식이 아기의 무의식을 읽는 거다.
이게 비온이 말한 '모성적 레버리(maternal reverie)'다. 엄마가 아기의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해서 아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돌려준다. 젖을 주거나, 안아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준다.
아기는 공포를 쏟아냈다. 엄마는 그 공포를 받아서 사랑으로 바꿔 돌려줬다. 이게 모성적 레버리다.
상담도 똑같다.
내담자는 운다. 말로 울든, 침묵으로 울든, 웃으면서 울든.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상담실 안을 떠돈다. 상담자는 그걸 받는다. 자기 무의식으로 받는다. 그리고 소화한다. 그다음 돌려준다. 해석으로, 질문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내담자는 자신의 불안을 말로 표현 못 한다. 그냥 이야기한다. "요즘 회사에서..." 상담자는 그 말을 듣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느낀다. 건국대가 떠오르거나, 제주도가 보이거나, 물레방아가 떠오른다.
이게 레버리다. 내담자의 무의식적 소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비온은 이를 '담는 것 ⇄ 담기는 것(container ⇄ contained)'이라고 불렀다. 밥그릇이 밥을 담듯, 엄마가 아기의 불안을 담는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무의식을 담는다. 담기만 하는 게 아니다. 소화시켜서 다시 돌려준다. 아기가 먹을 수 있는 형태로. 내담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레버리를 쉽게 설명하면
여기서 잠깐. 레버리가 뭔지 아직도 모호하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레버리 = 상대방의 감정을 내 몸으로 느끼는 것
친구가 "괜찮아"라고 말한다. 웃으면서. 하지만 당신 가슴이 답답해진다. 왜? 친구의 무의식이 "사실 괜찮지 않아"라고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거다. 말로는 안 했다. 하지만 친구의 몸짓, 표정, 목소리 톤, 침묵. 이 모든 게 무의식적 신호다.
당신의 무의식이 그 신호를 받았다. 그래서 당신 가슴이 답답해진 거다. 이게 레버리의 시작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친구가 말한다 - "요즘 회사가 힘들어. 그냥 참아야지 뭐."
당신이 느낀다 - 갑자기 속이 메스껍다. 또는 졸음이 쏟아진다. 또는 화가 난다.
이게 레버리다 - 친구의 무의식(참을 수 없는 분노, 극도의 피로)이 당신에게 전염된 거다.
중요한 건, 이 감정이 '당신 것'이 아니라는 거다. 친구의 감정이 당신 몸을 빌려서 표현되고 있는 거다.
의식을 무의식화하기 - 옥덴의 혁명적 통찰
"꿈꾸기라는 용어를 자신의 정서적 경험에 대한 무의식적 심리적 작업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다. 레버리와 자유연상은 전의식적인 깨어 있는 꿈꾸기의 형태이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된 꿈꾸기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보다는 의식을 무의식화하는 과정이다"(옥덴, 2025: 16-17).
이 문장이 핵심이다.
대부분의 정신분석치료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려고 한다. 어둠 속에 숨은 것을 밝은 데로 끌어내는 일이다. "당신의 무의식에는 이런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거다.
하지만 레버리는 정반대다.
의식을 살짝 어둠 속으로 내려놓는다. 마치 저녁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을 때처럼. 아직 완전히 잠들진 않았는데, 생각이 둥둥 떠다닌다. 논리적이지 않다. 체계적이지 않다. 그냥 흐른다.
이게 레버리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