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중이었다. 30대 여성이 남편과의 갈등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침묵이 흘렀다. 10초, 20초, 30초. 나는 기다렸다. 1분이 지났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침묵은 계속됐다. 2분. 3분.
대부분의 초보 상담자라면 이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무슨 생각 하세요?", "괜찮으세요?", "힘드시죠?" 같은 말로 침묵을 깬다. 하지만 나는 기다렸다. 5분이 지났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요..."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남편의 외도 의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침묵을 깨뜨렸다면, 이 이야기는 영원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자는 진실을 들을 수 없다. 이게 팩트다.
침묵이 불편한 이유
왜 우리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가? 친구와 대화하다가 침묵이 흐르면 불편하다. 어색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래서 급하게 말을 꺼낸다. "그나저나...", "아 참, 그거 알아?", "날씨 좋다" 같은 말로 침묵을 메운다.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침묵이 흐르면 "무슨 생각해?", "왜 말이 없어?" 하고 묻는다. 침묵이 관계의 문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정반대로 본다. 침묵은 문제가 아니다. 침묵은 메시지다. 침묵 속에 진실이 있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섣불리 말을 던지는 순간, 진실은 사라진다. 프로이트는 침묵을 저항의 한 형태로 봤다. "환자가 침묵할 때, 그것은 무의식적 갈등이 표면 가까이 떠올랐다는 신호다"(프로이트, 2021: 119). 침묵은 내담자가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상태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너무 수치스러워서, 너무 두려워서 말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침묵한다.
그런데 상담자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순간, 내담자는 안도한다. '아, 더 이상 그 이야기 안 해도 되는구나.' 침묵 속에 담긴 고통스러운 진실은 다시 무의식 속으로 내려간다. 상담자가 침묵을 깨뜨린 것은, 내담자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내담자를 위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치료사가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환자의 무의식적 자료와 접촉하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바우어, 2023: 156).
침묵의 종류들
모든 침묵이 같은 침묵은 아니다. 침묵에도 종류가 있다. 첫째, '저항의 침묵'이다. 내담자가 말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한다. 분노를 숨기기 위해,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상담자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침묵한다. 이런 침묵은 무겁다. 긴장감이 흐른다. 상담자는 이 침묵 속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둘째, '사색의 침묵'이다. 내담자가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적절한 말을 찾고 있다. 이런 침묵은 부드럽다. 공간이 살아있다. 상담자는 이 침묵 속에서 함께 기다릴 수 있다.
셋째, '공허의 침묵'이다. 내담자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텅 비어있다. 해리된 상태다. 이런 침묵은 차갑다. 연결이 끊어진 느낌이다. 상담자는 이 침묵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넷째, '친밀의 침묵'이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분한 순간이다. 이런 침묵은 따뜻하다. 평화롭다. 상담자는 이 침묵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중요한 건, 침묵의 종류를 구별하는 능력이다. 어떤 침묵은 깨뜨려야 하고, 어떤 침묵은 지켜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침묵을 불편해한다. 그래서 무조건 깨뜨린다.
침묵 속의 전이
"BT는 그동안 상당히 조심스럽게 표현하였고 직장 환경이나 교장과의 관계가 만족스럽다고 말하였다. 치료자는 지난 두 회기 동안 그가 이전보다 더 긴장하고 거리를 두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였다"(바우어, 2023: 72-73). BT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침묵도 많았다. 미묘한 침묵들. 질문에 대답하기 전의 짧은 침묵. 어떤 주제로 넘어갈 때의 침묵. 이 침묵들이 메시지였다. BT는 상담자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침묵으로 말했다.
한 40대 남성이 있었다. 그는 매 회기마다 정확히 30분 지점에서 침묵했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다. 하지만 패턴이 명확했다. 30분이 되면 말이 끊겼다. 5회기에 물었다. "30분쯤 되면 침묵이 오는 것 같은데요." 그가 놀랐다.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모르게 그러는 것 같아요. 30분 지나면 갑자기 말하기 싫어져요." 알고 보니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대화가 정확히 30분이었다. 아버지는 30분 동안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30분이 지나면 "이제 그만 자라"고 말했다. 그 기억이 무의식에 각인되어, 상담에서도 30분이 되면 자동으로 입을 닫았던 것이다.
또 다른 여성은 자신의 감정을 말할 때마다 침묵했다. "저는... (침묵) ...화가 나요." "저는... (침묵) ...슬퍼요." 감정 단어 앞에 항상 침묵이 왔다. 왜? 어린 시절 엄마가 그녀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내지 마", "슬퍼하지 마", "겁내지 마". 감정을 표현하면 엄마가 부정했다. 그래서 감정 단어를 말하기 전에 침묵이 온 것이다. 무의식이 '이 말 해도 될까?' 하고 망설이는 거다.
침묵을 깨뜨리는 폭력
상담 중 침묵이 흐른다. 내담자가 눈물을 흘린다. 10초, 20초, 30초. 초보 상담자가 견디지 못하고 말한다. "많이 힘드시죠. 괜찮아요. 다 잘 될 거예요." 이게 위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폭력이다. 내담자의 침묵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내담자는 지금 눈물 속에서 뭔가를 경험하고 있다. 슬픔을, 분노를, 후회를, 그리움을.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상담자가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 경험이 중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