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식상: 억압에서 벗어난 욕망의 분출

by 홍종민

상담실에서 만난 30대 여성 L씨의 이야기다.

L씨는 대기업 홍보팀에서 일했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커리어우먼이었다. 명문대 졸업, 안정적인 직장, 괜찮은 연봉. 그런데 L씨는 괴로워했다.

"선생님, 저는 매일 회의 시간이 지옥이에요.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데 삼켜야 해요. 상사가 틀린 말을 해도 고개를 끄덕여야 하고, 제 아이디어를 말하고 싶어도 눈치를 봐야 하고. 이러다가 미칠 것 같아요."

L씨의 사주를 봤다. 식상이 강했다. 상관이 두 개나 있었다.

나는 L씨에게 물었다. "집에 가면 뭐 하세요?"

L씨가 대답했다. "블로그에 글을 써요. 회사에서 못한 말을 다 써요. 일기도 쓰고, 소설도 쓰고. 주말에는 그림도 그려요. 요즘은 유튜브도 시작했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다. "당신은 표현하지 않으면 못 사는 사람이에요. 회사에서 입을 막히니까 손이 움직이는 거예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거예요. 이게 식상이에요."

입을 막으면 손이 움직인다. 이게 식상의 본질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승화

식상이란 뭔가? 전통 명리학에서는 자식이라고 한다. 또는 표현, 재능, 말솜씨라고 한다. 맞다. 하지만 본질은 이거다.

식상은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억압되었던 것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말하고 싶던 것, 만들고 싶던 것, 표현하고 싶던 것. 참았던 것이 더 이상 참아지지 않아서 분출되는 것.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리비도가 있다고 했다. 리비도란 생명 에너지다. 처음에는 성적 에너지를 의미했지만, 나중에는 모든 심리적 에너지, 삶의 에너지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이 에너지는 끊임없이 분출되려고 한다. 그런데 사회는 이 에너지를 억압한다. "조용히 해." "참아."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행동 하지 마."

억압되면 어떻게 되는가? 병이 된다. 신경증이 된다. 우울증이 된다. 몸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억압된 에너지는 다른 방식으로 빠져나간다. 꿈으로, 실수로, 증상으로. 또는 창조로, 예술로, 표현으로.

정신분석가 맹정현은 이 과정을 명확히 설명한다. "승화는 성적인 목적과 관련해서 억제되기 때문에 성적인 충동을 다른 목적에 투자하는 것이다. 성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투자될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목적을 위해서는 투자될 수 있다는 거다"[1]

(맹정현, 2022: 152).


이게 승화다. 이게 식상이다.

승화와 억압은 다르다

여기서 헷갈리면 안 되는 게 있다. 승화와 억압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당신 몸속에 물이 가득 차 있다고 상상해보라. 댐에 물이 가득한 것처럼. 이 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댐을 꽁꽁 막는다. 물이 한 방울도 나가지 못하게 한다. 이게 억압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압력이 쌓인다. 댐이 견디지 못하고 금이 간다. 결국 어딘가 터진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에너지를 막으면 증상이 생긴다. 불안, 강박, 우울. 막힌 에너지는 반드시 어딘가로 나간다. 정상적인 통로가 막히면 비정상적인 통로를 찾는다.


둘째, 댐에서 물을 발전소로 보낸다. 물은 흐른다. 막히지 않는다. 다만 흐르는 방향이 다를 뿐이다. 성적인 쪽이 아니라 창작 쪽으로. 그러면? 전기가 생긴다. 빛이 켜진다. 작품이 나온다.

이게 승화다. 에너지를 틀어주는 것이다. 막지 않고.

맹정현은 이 차이를 정확히 짚는다. "승화는 억압하지 않고 성충동을 만족시키는 메커니즘이다. 어떤 식으로든 성적인 충동이 만족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데서 만족시킬 필요가 없어진다"[2]

승화는 에너지를 틀어준다. 억압은 에너지를 막는다. 이게 둘의 결정적 차이다.


식신과 상관: 순한 표현과 날카로운 표현

식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식신과 상관.

둘 다 나에게서 나오는 오행이다. 내가 생해주는 오행이다. 갑목이 생해주는 건 화다. 병화(식신)와 정화(상관)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 내가 표현하는 것.

그런데 식신과 상관은 다르다. 식신은 음양이 같고, 상관은 음양이 다르다. 이 차이가 표현 방식의 차이를 만든다.

식신은 순한 표현이다. 부드럽다. 창조적이다. 생산적이다. 식신이 강한 사람은 뭔가를 만들어낸다. 요리, 글쓰기, 그림, 공예, 자식.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긴다. 결과물을 보면 뿌듯하다.

식신은 비판하지 않는다. 공격하지 않는다. 그냥 표현한다. 만든다. 자기 세계를 구축한다. 식신이 강한 사람은 취미가 많다. 손재주가 좋다.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야 마음이 편하다.

상관은 날카로운 표현이다. 비판적이다. 반항적이다. 기존 질서를 못 참는다.

상관이 강한 사람은 틀린 것을 보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거 아닌데요." "왜 그렇게 해요?" "이건 잘못됐어요." 상사가 틀려도 말한다. 규칙이 불합리하면 따르지 않는다. 사회 통념이 이상하면 거부한다.

상관은 순응하지 않는다. 타협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조직생활이 힘들다. 규칙이 답답하다. 상사와 부딪힌다.

식신은 창조고, 상관은 파괴다. 식신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상관은 기존 것을 깬다.

식상이 많으면 표현하며 산다

사주에 식상이 많으면 어떻게 되는가?

평생 표현하며 산다. 말로, 글로, 행동으로, 작품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병든다. 억압되면 터진다.

식상이 많은 사람의 인생을 보자.

어릴 때부터 말이 많다. 질문이 많다. 호기심이 많다. "왜요?" "어떻게요?" "그게 뭐예요?" 끊임없이 묻는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 뭔가를 만들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무언가를 조립한다.

학창시절에는 창의적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푼다. 예체능에 재능이 있다. 하지만 규칙을 싫어한다. 특히 상관이 강하면 선생님 말씀에 반박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해요?"

성인이 되면? 식신이 강한 사람은 창작 분야로 간다. 예술가, 디자이너, 작가, 요리사, 크리에이터. 뭔가를 만드는 일을 한다. 평범한 직장에 다니더라도 취미가 있다. 주말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

상관이 강한 사람은 조직에 못 맞는다. 프리랜서가 된다. 사업을 한다. 독립한다.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게 견딜 수 없다.

식상이 많은 사람은 창조하지 않으면 못 산다. 뭔가를 낳아야 한다. 생산해야 한다.


식상이 없으면 표현하지 못한다

반대로 사주에 식상이 없으면?

표현이 서툴다. 말을 못 한다. 창작을 못 한다. 자기 생각을 말로 꺼내는 게 어렵다. 글을 쓰라고 하면 막막하다.

식상이 없는 사람은 머릿속에는 생각이 많은데 표현이 안 된다. 답답하다. 말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온다.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

식상이 없는 사람은 억압에 익숙하다. "참아야지." "말하면 안 되지." "드러내면 안 되지." 평생 억누르며 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폭발한다. 쌓이고 쌓인 것이 한꺼번에 터진다. 아니면 몸으로 나온다. 병이 된다. 우울증, 공황장애, 신체화 증상.

말하지 못한 것이 몸으로 드러난다.


식상운이 오면 무의식이 폭발한다

일년 신수에서 식상운이 오면 어떻게 되는가?

억압되었던 것이 표면으로 올라온다. 참았던 말을 하게 된다. 만들고 싶던 것을 만들게 된다. 식상운은 분출의 운이다. 폭발의 운이다. 해방의 운이다.

천간에 식신이 오면? 의식적으로 창조하고 싶어진다. "뭔가 만들어볼까?" "새로운 걸 시작해볼까?" 취미를 시작한다. 공예, 그림, 글쓰기. 손으로 뭔가를 만든다. 말로는 "그냥 재미로 해보는 거야"라고 한다. 하지만 점점 진지해진다.

천간에 상관이 오면? 의식적으로 반항하고 싶어진다. "이제 더 이상 못 참겠어." "이건 아니야." 회사 규칙에 이의를 제기한다. 상사에게 반박한다.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낸다.

위험하다. 상관운에는 말조심해야 한다. 상사와 충돌할 수 있다. 해고당할 수 있다. 관계가 깨질 수 있다.

지지에 식신이 오면? 무의식적으로 창조가 시작된다. 말로는 안 하는데 손이 움직인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뭔가를 만들고 있다. 퇴근하면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린다. 주말이 되면 글을 쓰고 있다.

지지에 상관이 오면? 무의식적으로 반항이 시작된다. 말로는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하는데 행동은 다르다. 회사를 그만둔다. 이혼한다. 관계를 끊는다. 의식적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는데 몸이 먼저 움직인다.

지지 상관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다. 무의식이 실행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내담자 사례: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둔 해

내담자 M씨는 40대 남성이다. 대기업에서 10년을 근무했다. 안정적이었다. 연봉도 괜찮았다. 가족들도 만족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 M씨가 이상해졌다. 퇴근하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글쓰기 모임에 나갔다. 아내가 이상하게 여겼다. "당신 왜 그래?" M씨는 대답했다. "그냥 쓰고 싶어서."

1년 후 M씨가 사표를 냈다. 가족들이 놀랐다. "미쳤어?" 하지만 M씨는 이미 결정했다. 작가가 되기로.

M씨의 그해 신수를 봤다. 천간에 상관, 지지에 식신. 완벽한 식상운이었다.

천간 상관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의식을, 지지 식신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무의식을 보여줬다.

M씨는 10년간 억눌렀다. 회사 생활이 답답했지만 참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삼켰다. 창작하고 싶었지만 미뤘다. 그러다가 식상운이 왔다. 억압되었던 것이 터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3년 후 M씨는 신인작가로 등단했다.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돈은 회사 다닐 때보다 적었다. 하지만 M씨는 행복했다.

"선생님, 저는 이제야 제가 누군지 알겠어요. 10년 동안 저는 제가 아닌 사람으로 살았어요. 이제야 진짜 제 인생을 시작했어요."

이게 식상운이다.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진짜 나를 찾는 것이다.


식상의 위험: 통제 불가능한 분출

식상은 좋은 것인가?

아니다. 식상은 양날의 검이다. 표현은 창조가 될 수도 있고 파괴가 될 수도 있다.

식신은 비교적 안전하다. 만들기만 하니까. 창조만 하니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상관은 위험하다. 비판하고, 반항하고, 깨뜨린다. 관계를 망칠 수 있다. 직장을 잃을 수 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상관이 너무 강하면 어떻게 되는가? 조직에 못 맞는다. 어디를 가도 충돌한다. 상사와 싸운다. 동료와 다툰다. 규칙을 어긴다. 그러다가 해고된다. 이직을 반복한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다.

맹정현은 억압과 승화의 결과를 비교한다. "승화가 하나를 하면 굳이 다른 하나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라면, 억압은 하나를 하면 오히려 다른 하나가 더 하고 싶어지는 경우다"[3]

상관이 강한 사람이 표현 통로를 찾지 못하면? 억압된 에너지가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 가족에게 화풀이한다. 술에 의존한다. 몸이 아프다.

표현 통로가 있어야 한다. 없으면 병이 된다.


식상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식상이 강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표현 통로를 확보하라.

억압하지 마라. 표현하지 않으면 병든다. 회사에서 말을 못 하면 집에서 글을 써라. 직장에서 창의성을 발휘 못 하면 주말에 작품을 만들어라. 통로가 있어야 한다. 분출할 곳이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터진다. 엉뚱한 곳에서 폭발한다.

둘째, 특히 상관이 강하면 말을 조심하라.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한 박자 쉬어라. 당장 말하지 마라. 쓰고 싶으면 일기장에 써라. SNS에 올리지 마라. 상사에게 직접 말하지 마라. 일단 참고, 나중에 전략적으로 말하라.

상관은 날카롭다. 상처를 준다. 관계를 끊는다. 한번 내뱉으면 돌이킬 수 없다.


셋째, 식상을 직업으로 만들어라.

식상이 강한 사람은 창작 분야로 가야 한다. 예술가, 작가, 디자이너, 크리에이터. 표현하는 일을 해야 한다. 평범한 직장은 답답하다. 규칙이 많은 조직은 숨막힌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면 부업이라도 해라. 주말에 작품을 만들어라. 유튜브를 해라. 블로그를 써라. 표현 욕구를 해소해야 일주일을 버틴다.


[1]맹정현(2022). 『프로이트 패러다임』. 서울: 위고. 152.

[2]Ibid., 153.

[3]Ibid.,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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