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만난 35세 직장인 R씨의 이야기다.
R씨는 중견기업 과장이었다. 성실했다. 책임감이 강했다. 상사 말을 잘 들었다. 회사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동료들이 부러워하는 모범 직원이었다.
그런데 R씨는 숨이 막혔다.
"선생님, 저는 매일 아침 넥타이를 맬 때마다 목이 조여오는 기분이에요. 회사 가는 게 지옥이에요. 상사 눈치 보고, 규칙 지키고, 평가 신경 쓰고. 미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만둘 수가 없어요. 월급이 나오니까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요."
R씨의 사주를 봤다. 관성이 가득했다. 정관 하나, 편관 두 개.
나는 R씨에게 말했다.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살 거예요. 질서 속에서, 규칙 속에서, 억압 속에서. 관성이 많은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어요. 항상 뭔가에 눌려 살아요. 상사에게, 규칙에게, 사회에게."
R씨가 물었다. "그럼 저는 평생 불행한가요?"
나는 대답했다. "불행과 행복은 다른 문제예요. 당신은 안정을 얻는 대신 자유를 포기한 거예요. 관성이 많은 사람은 그게 운명이에요.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박차고 나가든지."
이게 관성이다. 질서라는 이름의 감옥.
관성이란 무엇인가
관성이란 뭔가? 전통 명리학에서는 직장이라고 한다. 관직, 남편, 권력.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본질은 이거다.
관성은 나를 억누르는 질서다. 나를 통제하는 힘이다. 나에게 "해야 한다"를 강요하는 것. 사회, 법, 규범, 상사, 체계. 이 모든 것이 관성이다.
관성이 뭔가? 나를 극하는 오행이다. 갑목인 사람에게는 금이 관성이다. 경금(정관)과 신금(편관). 병화인 사람에게는 수가 관성이다. 임수(정관)와 계수(편관).
나를 극하는 것. 나를 억누르는 것. 나를 통제하는 것.
재성이 내가 통제하는 대상이라면, 관성은 나를 통제하는 대상이다. 정반대다.재성이 많은 사람은 통제하려 한다. 돈을, 물질을, 사람을. 하지만 관성이 많은 사람은 통제당한다. 조직에, 규칙에, 상사에게.
관성은 내 위에 있는 것이다.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나를 평가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세 부분으로 나눴다.
이드, 자아, 초자아.
이드는 본능이다. 먹고 싶다, 자고 싶다, 섹스하고 싶다. 원초적 욕망. 아기는 이드 덩어리다. 배고프면 울고, 졸리면 자고, 불편하면 떼쓴다. 욕망 그대로 표출한다.
자아는 현실 원칙이다. 이드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조정한다. "지금 먹으면 안 돼, 조금만 참아." "여기서 화내면 안 돼, 참아." 현실에 맞춰 욕망을 조절한다.
그런데 초자아는 뭔가?
내면의 경찰이다. 도덕, 양심, 금지. "~하면 안 돼." "~해야 해."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초자아다.
초자아는 어디서 오는가? 부모에게서 온다. 특히 아버지에게서.
어릴 때 부모가 금지한다. "그러면 안 돼." "착한 아이는 그런 거 하지 않아." "남자는 울면 안 돼." "여자는 조신해야 해."
이 금지가 내면화된다. 부모가 없어도 부모의 목소리가 내 안에 남는다. 이게 초자아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이러면 안 되지"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게 초자아다. 내 안에 들어온 부모의 목소리. 내 안에 들어온 사회의 규범.
관성이 바로 이 초자아다.
초자아의 잔인함
정신분석가 맹정현은 초자아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아 이상이 내 안에서 나를 격려해주고 독려해주는 타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초자아는 내 안에서 나를 감시하고 비난하는 타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1]
초자아는 격려하지 않는다. 칭찬하지 않는다. 오직 감시하고 비난한다.
그런데 여기서 무서운 사실이 있다. 초자아는 잘해도 비난한다.
맹정현은 계속해서 지적한다. "초자아는 내가 잘해도 나를 비난하고, 내가 못해도 나를 비난한다. 자아가 못하면, 당연히 '왜 그렇게 못났니?'라고 자아를 비난하겠죠. 그런데 자아가 잘하면 오히려 초자아가 '나랑 맞먹으려고?'라고 하면서 자아를 비난한다"[2]
이게 초자아의 잔인함이다.
못하면 비난당한다. "왜 이것밖에 못 해?"
잘해도 비난당한다. "그래 봤자 부족해." "더 잘해야지." "이 정도로 만족하면 안 돼."
이게 관성이 많은 사람의 내면이다. 평생 비난당한다. 자기 자신에게.
"잘해도 빰이 석 대"
맹정현은 우리 속담을 인용한다. "초자아의 작용은 '잘해도 빰이 석 대'라는 우리 속담에 딱 맞아떨어진다. 초자아와의 관계는 꼼짝없이 갇히게 되는 막다른 골목이다.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3]
관성이 많은 사람은 이 게임 안에 산다.
일을 잘하면? "더 잘해야 해." 일을 못하면? "왜 이것밖에 못 해?" 쉬면? "이렇게 놀아도 되나?" 일하면? "더 열심히 해야지."
어느 쪽으로 가든 비난이다. 어느 쪽으로 가든 패배다.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관성이 많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가혹하다. 완벽주의다.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 항상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친다. 그래서 우울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관성이 많은 사람의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내면에 있다.
정관과 편관: 정당한 질서와 폭력적 질서
관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정관과 편관.
둘 다 나를 극하는 오행이다. 하지만 억압의 방식이 다르다. 정관은 음양이 다르고, 편관은 음양이 같다.
정관은 정당한 질서다. 합법적인 통제다. 정당한 권위다.
회사, 공무원, 법, 결혼. 정관이 있으면 조직생활을 잘한다. 규칙을 따른다. 상사를 존중한다. 법을 지킨다. 질서를 받아들인다.
정관이 강한 사람은 모범생이다. 착하다. 성실하다. 책임감이 강하다. 의무를 다한다. 직장에서 인정받는다. 승진을 잘한다. 안정적이다. 믿을 만하다.
정관은 포용적이다. 규칙이지만 숨통이 트인다. "이 안에서는 자유롭게 해도 돼." 경계 안에서의 자유. 이게 정관이다.
정관이 강한 사람은 규칙을 따르지만 규칙에 질식하지 않는다. 조직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체계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편관은 다르다.
편관은 폭력적 질서다. 강압적 통제다. 부당한 권위다.
압박, 사고, 수술, 강제. 편관은 무겁다. 짓누른다. 숨막힌다.
편관이 강한 사람은 항상 압박받는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긴장한다. 불안하다.
편관은 예측 불가능하다.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른다. 갑자기 사고가 난다. 갑자기 병이 생긴다. 갑자기 해고당한다.
편관은 폭력이다. 물리적 폭력일 수도 있고, 심리적 폭력일 수도 있다. 상사의 폭언, 부당한 대우, 이유 없는 징계. 이게 다 편관이다.
편관이 많은 사람은 평생 누군가에게 눌려 산다. 부모에게, 교사에게, 상사에게, 배우자에게. 자유롭지 못하다. 숨쉬기 힘들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다. 편관은 따라온다. 어디를 가든 누군가 나를 억누른다.
정관은 내가 수용하는 질서고, 편관은 내게 강요되는 질서다.
관성이 많으면 평생 억눌려 산다
사주에 관성이 많으면 어떻게 되는가?
평생 질서 속에서 산다. 규칙을 따르며 산다. 누군가의 통제를 받으며 산다.
관성이 많은 사람의 인생을 보자.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는다. 부모 말씀을 따른다. 규칙을 지킨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다. "착한 아이" 소리를 듣는다. 반항하지 않는다. 순응한다.
정관이 강하면 모범생이다. 반장을 한다. 학급 회장을 한다. 어른들이 좋아한다. "어른스럽다"는 소리를 듣는다. 또래보다 성숙하다는 칭찬을 받는다.
편관이 강하면 억눌린 아이다. 부모가 엄격하다. 체벌을 받는다. 늘 긴장한다. 눈치를 본다. 실수하면 혼난다. 실수가 두렵다.
청년이 되면 조직에 들어간다.
정관이 강하면 좋은 직장을 얻는다. 공무원, 대기업, 전문직. 안정적이다. 조직생활을 잘한다. 상사에게 인정받는다. 승진도 빠르다. 규칙을 따르는 게 자연스럽다. 체계 안에서 편안하다.
편관이 강하면 직장생활이 힘들다. 상사가 괴롭힌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직장을 옮겨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상사가 괴롭힌다. 편관은 따라온다.
어른이 되면 책임이 늘어난다.
정관이 많으면 책임을 잘 진다. 가장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한다. 믿음직하다. 하지만 무겁다. 항상 뭔가를 짊어지고 산다.
편관이 많으면 압박이 심해진다. 빚, 병, 사고. 한 가지가 해결되면 또 다른 게 생긴다. 쉴 틈이 없다. 숨 돌릴 틈이 없다.
중년이 되면?
정관이 많은 사람은 성공한다. 조직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다. 사회적 지위가 있다. 존경받는다. 하지만 자유는 없다. 더 많은 책임, 더 많은 의무. 정년까지 버텨야 한다.
편관이 많은 사람은 지쳐 있다. 평생 억눌려 살았다. 몸도 망가졌다. 마음도 망가졌다. 빨리 은퇴하고 싶다. 하지만 은퇴해도 편안하지 않다. 편관은 끝까지 따라온다.
관성이 많은 사람은 평생 무언가에 눌려 산다. 그게 운명이다.
관성이 없으면 자유롭지만 불안정하다
반대로 사주에 관성이 없으면?
규칙을 싫어한다. 통제받기 싫어한다. 조직에 못 맞는다. 자유롭다. 하지만 불안정하다.
관성이 없는 사람은 직장생활을 못 한다. 상사가 싫다. 출퇴근이 싫다. 규칙이 답답하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된다. 자영업을 한다. 혼자 일한다.
자유롭다. 내 마음대로 한다. 하지만 수입이 불안정하다. 월급이 없다. 보험도 없다. 노후도 불안하다.
관성이 없는 사람은 결혼도 늦다. 결혼이 속박으로 느껴진다. "왜 법적으로 묶여야 해?" 동거는 하지만 결혼은 안 한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하지만 외롭다. 나이가 들수록 외롭다.
관성이 없는 사람에게 관성운이 오면? 갑자기 질서가 보인다. "직장을 다녀볼까?" "결혼을 할까?" 처음엔 낯설다. 하지만 해보면 나쁘지 않다. 월급이 들어온다. 안정적이다. 사회적 지위가 생긴다.
관성운이 끝나면? 다시 자유로워진다. "역시 조직은 내 것이 아니야."
관성이 없으면 자유롭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취약하다.
내담자 사례: 아버지와 상사
상담실에서 만난 천 과장의 이야기를 하겠다.
천 과장은 대기업에 다녔다. 성실했다. 능력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직속 상사인 김 부장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조심한다고 해도 회의 중에 언쟁을 벌이고 말았다. 동료들도 천 과장이 지나치다고 했다. 김 부장이 권위적이고 인기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상사에게 대드는 사람은 없었다.
천 과장 자신도 이해가 안 됐다. "왜 저렇게까지 화가 나는지 모르겠어요. 김 부장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상담을 하면서 밝혀진 것이 있었다. 천 과장의 아버지는 집에서 폭군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데다 가부장적이었고, 가끔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생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김 부장은 아버지와 고향이 같았다. 같은 사투리를 썼다. 성격도 급하고 다혈질적인 게 닮았다.
천 과장은 김 부장을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화가 치밀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김 부장에게 투사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관성의 비밀이다. 관성은 현재의 상사만이 아니다. 과거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천 과장의 진짜 감정
상담이 더 진행되면서 천 과장은 아버지에 대해 미움만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큰아들을 무척 아꼈다. 다른 가족에게는 폭군이었지만 천 과장에게는 잘해주려고 애썼다. 어려운 형편에도 서울로 유학 보내기로 결정한 것도 아버지였다.
1년 전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런데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천 과장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너무 담담해서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천 과장은 아버지를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가족에게는 폭군이었지만 자신에게는 잘해주려던 아버지. 상반되는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아버지 생각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김 부장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무의식 속 죄책감과 슬픔이 분노로 바뀌어 튀어나왔다.
상담을 통해 천 과장은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김 부장에 대한 부적절한 감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관성이 강한 사람의 상사 문제는 단순히 현재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아버지 문제이기도 하다.
관성운이 오면 질서가 나를 부른다
일년 신수에서 관성운이 오면 어떻게 되는가?
질서가 나를 부른다. 조직이 나를 필요로 한다. 책임이 생긴다. 의무가 생긴다. 관성운은 구속의 운이다. 안정의 운이지만 동시에 억압의 운이다.
천간에 정관이 오면? 의식적으로 직장을 생각한다. "취업해야겠다." "승진하고 싶다." "안정된 직장이 필요해." 말로는 조직을 찾는다. 실제로도 기회가 온다. 채용 공고, 스카우트 제의, 승진 기회.
천간 정관운은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 원하는 대로 된다. 정관운은 좋은 운이다. 직장을 얻고, 승진하고, 결혼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천간에 편관이 오면? 의식적으로 압박을 느낀다. "스트레스 받는다." "누군가 나를 괴롭힌다." "조직이 답답하다." 말로는 힘들다고 한다. 실제로도 힘들다. 상사와 갈등, 부당한 대우, 과도한 업무.
천간 편관운은 의식적으로 느껴진다. "아, 나 지금 억압받고 있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대응할 수 있다. 참든지, 싸우든지, 도망가든지.
지지에 정관이 오면? 무의식적으로 질서를 받아들인다. 말로는 안 하는데 행동이 바뀐다. 규칙을 따르게 된다. 조직에 적응한다. 상사 말을 듣게 된다.
지지 정관은 말보다 행동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조직인이 된다. 월급쟁이가 된다. 체제 순응자가 된다. 지지 정관운은 조용하지만 강력하다. 나를 바꾼다.
지지에 편관이 오면? 무의식적으로 압박이 온다. 말로는 "괜찮아"라고 하는데 몸이 먼저 안다. 긴장된다. 불안하다. 잠을 못 잔다. 두통이 생긴다. 소화가 안 된다.
지지 편관은 몸으로 온다. 사고가 날 수 있다. 병이 생길 수 있다. 강제적 상황이 올 수 있다. 지지 편관은 예측이 안 된다. 갑자기 온다.
지지 편관운은 위험하다. 조심해야 한다.
내담자 사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해
내담자 S씨는 20대 후반 여성이다. 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로 일했다. 자유로웠다. 출퇴근이 없었다. 상사가 없었다. 좋았다.
하지만 불안했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걱정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라." S씨는 듣지 않았다. "저는 자유가 좋아요."
그런데 어느 해부터 S씨가 생각이 바뀌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해볼까?" 가족들이 놀랐다. "네가?" S씨도 이상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안정이 필요해졌어요."
S씨의 그해 신수를 봤다. 천간에 정관, 지지에도 정관. 완벽한 정관운이었다.
천간 정관은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의식을, 지지 정관은 "조직에 들어가야 한다"는 무의식을 보여줬다.
S씨는 1년간 공부했다. 합격했다. 공무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출퇴근, 복장 규정, 상사 눈치. 자유가 그리웠다. 하지만 적응했다. 월급이 좋았다. 안정적이었다. 연금도 있었다. 부모님이 기뻐했다.
3년 후 S씨가 다시 찾아왔다.
"선생님, 저는 이제 공무원이에요. 프리랜서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그때는 왜 그렇게 자유가 좋았는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안정이 좋아요."
이게 관성운이다. 질서가 나를 부르는 것이다.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안정을 얻는 것이다.
관성의 양면: 안정과 억압
관성은 좋은 것인가?
답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다.
관성이 적당하면 좋다. 사회적으로 안정된다. 직장이 있다. 월급이 들어온다. 사회적 지위가 있다. 존경받는다. 관성이 적당한 사람은 성공한다.
하지만 관성이 너무 많으면? 억압이 심해진다. 숨막힌다. 자유가 없다. 하고 싶은 걸 못 한다. 항상 눈치를 본다.
특히 편관이 많으면 지옥이다. 압박, 스트레스, 사고, 병. 평생 고통받는다.
관성이 없으면? 자유롭다. 하지만 불안정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불안하다. 노후가 불안하다.
관성은 필요악이다. 없으면 불안하고, 너무 많으면 억압받는다. 적당해야 한다.
관성운이 너무 강하게 오면? 특히 편관운이 강하면? 조심해야 한다. 사고가 날 수 있다.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편관운에는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위험한 일을 피해야 한다.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관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관성이 많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질서를 받아들여라.
저항하지 마라. 관성이 많은 사람은 질서 속에서 사는 게 운명이다. 조직, 규칙, 상사. 피할 수 없다. 받아들이는 게 편하다. 싸우면 더 힘들다.
둘째, 초자아를 완화시켜라.
"해야 한다"를 "하면 좋다" 정도로 바꿔라. 모든 걸 완벽하게 할 필요 없다. 적당히 해도 된다. 잘해도 비난하고 못해도 비난하는 초자아의 게임에서 빠져나와라. 그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게임을 하지 않는 게 답이다.
셋째, 특히 편관이 많으면 몸을 관리하라.
스트레스를 풀어라. 운동을 하라. 취미를 가져라. 편관은 몸으로 온다. 몸이 신호를 보낸다. 무시하지 마라. 쉬어야 할 때 쉬어라.
넷째, 관성이 없는 사람이 관성운을 만나면?
기회로 삼아라. 평생 없던 안정을 경험할 기회다. 조직에 들어가 보라. 규칙을 따라보라.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관성운이 끝나도 경험은 남는다.
[1]맹정현(2022). 『프로이트 패러다임』. 서울: 위고. 281.
[2]
Ibid., 281.
[3]
Ibid.,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