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6장

부드러움이 낳는 힘

by 닌자


한때는 강해야만 살아남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고요히 흐르는 것이 더 단단하다는 걸 배워간다.


* 한자, 음, 해석


谷神不死,是謂玄牝。

곡신불사, 시위현빈.

→ 골짜기의 신(비어 있음의 생명력)은 죽지 않는다. 이를 ‘현묘한 어미(현빈)’라 부른다.

☞ ‘곡신’은 도(道)의 생성력, ‘현빈’은 여성의 생식력을 상징하는 도의 다른 이름이다.


玄牝之門,是謂天地根。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 현빈의 문은 천지의 뿌리라 한다.

☞ 만물이 태어나는 근원이며, 도는 하늘과 땅의 바탕이 된다.


綿綿若存,用之不勤。

면면약존, 용지불근.

→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듯 존재하며, 써도 다함이 없다.

☞ 도는 무형이지만 끊임없이 흐르고,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근원적인 에너지이다.


현대적 해설

『도덕경』 제6장은 ‘도(道)’의 근원적 생명력과 그 여성적 속성을 매우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 구절, “谷神不死,是謂玄牝”에서 ‘곡신(谷神)’은 비어 있는 골짜기의 신, 즉 텅 비었지만 생명을 품는 자연의 힘을 말합니다.


노자는 이 비움에서 나오는 힘을 ‘현빈(玄牝)’, 즉 신비로운 여성성으로 비유합니다.

이는 단순히 성별을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뜻합니다.

현빈의 문이 “天地之根(천지의 뿌리)”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강하고 힘센 에너지가 아니라,

조용하고 비어 있으며 끊임없이 생성하는 부드러운 힘이야말로 세상의 근원이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綿綿若存,用之不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실처럼 가늘고 끊어지지 않게 이어져 있는 듯한 그것,

마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기(氣)’처럼,

도는 써도 다하지 않고,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말로 다할 수 없는 신비를 지녔습니다.


나의 생각들

『도덕경』 6장을 필사하며,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젊었을 땐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때로는 감정이 앞설 때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그 강함 속에는 자기 확신과 함께 미숙함도 있었던 것 같다.

실수도 많았지만, 그나마 그 실수들을 통해 얻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모든 것을 이기려는 힘보다,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여유가 더 크다는 걸.

노자가 말한 ‘현빈(玄牝)’, 신비로운 어머니의 문은

생명을 낳는 자리이면서, 조용히 받아들이고 길러내는 힘을 상징한다.

젊은 시절의 ‘강함’이 바람 같았다면, 지금은 그 바람을 받아주는 골짜기 같은 마음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떤 중심을 지키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비어 있는 듯하지만 다함이 없는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러 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이 글을 읽는 누군가, 특히 젊은 누군가가

조금은 더 부드럽고, 조금은 더 느긋하게 자신을 바라보길 바라며.


그런데 이 장을 읽으며,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드러움이 곧 선함은 아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조용한 말투와 다정한 태도를 앞세우며

오히려 상대의 감정과 판단을 조종하려 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태도는 『도덕경』이 말하는 부드러움과는 전혀 다르다.

노자의 부드러움은 억지로 하지 않음, 비움, 자연스러움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부드러움은 부드러움이 아니다.

그건 감춘 지배이고, 심리적 폭력이다.

진짜 부드러움은 조용히 흐르되, 누구도 억누르지 않는다.

그 안엔 중심이 있고, 여유가 있고, 다함이 없는 도(道)가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덕경』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