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11

이 애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by 일상예찬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 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


자녀를 키워본 부모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내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아이가 아파서 밤새 잠도 못자고 힘들어 하면 옆에서 같이 밤을 새며 간호를 해도 피곤한 줄 모른다.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조금만 까져도 약 발라주며 빨리 상처가 아물기만을 바란다. 그렇게 소중한 내 아이를 누가 해(害)하려 들면 부모로서 어떤 마음일까. 아마 숨이 끊어질 때까지 맞서 싸울 거 같다.


20220515_120626.jpg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원본 촬영.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갔을 때 일이다. 네덜란드의 국보라고 하는 렘브란트의 '야경'을 보고 왼쪽 방으로 아무 생각없이 갔다가 한 작품에 꽂혔다. 벌거벗은 성인 남성들이 아이들의 목을 베거나 죽이려 하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이미 사망한 채로 땅에 널부러져 있었고 저 뒤쪽에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아이를 안고 도망가는 엄마들의 다급함과 위태로움이 보였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왼쪽 중간쯤에 표현된 장면이다. 엄마 네 명이 아이들을 해치려는 남자를 눕혀놓고 눈을 '뽑고' 있었다. 힘 없는 여성이지만 엄마는 누구보다 강한 법이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내 아이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뭔 일이든 못하랴.


한 때 30년차 '썬데이 크리스찬'이었던 사람으로서 느낌이 왔다. 아, 헤롯왕 스토리구나. 신약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왕이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즉, 예수님)을 찾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과 인근 마을의 두 살 이하 남자 아이를 다 죽이도록 명령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림 옆 설명을 보니 맞다. 네덜란드 하를럼(Haarlem) 출신 Cornelis Cornelisz란 화가가 1590년에 그린 작품이란다. 성경 내용을 기반으로 하지만 사실상 역사화에 가깝다. 책에서만 보던 영아학살을 그림으로 접하니 훨씬 더 참혹하게 다가왔다. 성경 스토리가 사실이라면 진짜 저랬겠구나 하고 실감이 든다. 나중에 하를럼에 있는 프란스 할스 미술관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도 Cornelis가 영아학살을 주제로 그린 다른 그림이 있었다. 이 작품도 역시 참혹한 느낌을 제대로 살렸다. 역시 유명 미술관에 걸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20200916_112614.jpg 프란스 할스 미술관에서 원본 촬영.


같은 주제의 그림도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르다. 며칠 전 벨기에 왕립미술관에 갔을 때도 영어학살을 주제로 한 그림을 봤다. <농부의 결혼식>을 그린 피터 브뢰헬의 아들 피터 브뢰헬 2세의 그림이다. 원래 아버지가 같은 주제로 그린 걸 약간 덧칠해서 모사했다고 한다.

20231125_145141.jpg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원본 촬영.


아버지 그림을 입수한 합스부르크 황제가 아이를 죽이는 잔혹한 장면들을 지우라고 해서 동물이나 보따리로 바꿨던 걸 나중에 아들이 다시 살려놓은 것이다. 우측 하단에 병사들이 집 문을 발로 차는 장면, 좌측 하단에 한 아빠가 군인들에게 사정사정하는 장면, 중앙에 엄마가 죽은 아이를 안고 우는 장면 등 이 작품 역시 성경 속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영아살해 장면이 있다고 해도 내 눈에 브뢰헬 가문의 그림은 Cornelis의 작품처럼 아주 잔혹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냥 16세기 플랑드르 지방에서 있었던 작은 사건 정도로 보인다. 평소 마냥 즐겁고 행복한 느낌의 풍속화를 그린 화가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인가.


전쟁과 테러로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실제 전투원들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아무 죄없는 민간인, 특히 아기들이 다치고 죽어나가는 장면을 보면 맘이 아프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2천년 전의 참상이 아직도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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