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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Jan 22.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34

연애편지 읽는 얼굴은 이런 거지

<The Love Letter, 1770-1779>

- Jean-Honore Fragonard


워낙 세상이 빠르게 변하다 보니 손으로 글을 쓸 일이 없다. 페북이나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는 물론이고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 받을 때도 전부 이메일이나 카톡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10-20대에 손글씨를 많이 썼다. 당시엔 컴퓨터가 없었으니 당연했다. 특히 피끓는 청춘 시절엔 연애편지 한두 번 써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이성을 생각하면서 글자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편지를 쓰고 또 답장을 읽으며 상대를 연모하는 마음을 품어본 경험, 요즘 젊은이들은 그걸 알까. 이메일이나 카톡이 빠르고 편리하기는 하지만 손글씨에 담긴 연정(戀情)은 결코 넘어서지 못할 거라 확신한다.


Jean-Honore Fragonard <The Love Letter>.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몇 해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을 때 수십 년 전 우리 또래들이 경험했던 그 가슴터지는 심정을 다시 마주했다. Jean-Honore Fragonard의 <The Love Letter>라는 작품이었다.


연애편지를 받은 아가씨의 표정이 압권이다. 읽기도 전에 흥분했는지 벌써 얼굴이 발그랗게 상기됐다. 빨리 편지를 뜯어보고 싶은 마음에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부끄러운가 보다. 편지 갖다준 사람에게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는 눈치다. 편지가 꽃다발과 같이 온 걸 보니 아마 발렌타인 데이 무렵인가 보다(그런데 그 때도 발렌타인 데이가 있었나?). 10대 후반-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이 아가씨는 연인이 보낸 편지 한 장에 모든 감정을 얼굴에 다 드러내고 있다. 관람자가 보기에도 풋풋하고 사랑스럽다. 생명력이 느껴진다. 로코코의 대가 Fragonard의 작품답게 전체적으로 블링블링하다. 그렇지, 이게 청춘이지. 수십 년전 나의 청춘을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Johannes Vermeer <The Love Letter>.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수년이 지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같은 제목의 다른 작품을 만났다.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의 대표선수 베르메르의 <The Love Letter>다. 그런데 솔직히 여기서는 프라고나르 작품에서처럼 연애하는 젊은이의 상큼함과 풋풋함은 느끼진 못했다.


한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다 말고 하녀로부터 편지를 건네받았다. 아주 중요한 편지인지 하녀가 일하다 말고 후다닥 달려온 듯 하다. 바닥에 빨래 바구니가 정리되지 않은 채 놓여 있고 쿠션도 바닥에 뒹굴고 있다. 그런데 편지를 받은 여인은 사랑에 빠진 눈빛이라기 보다는 좀 당황스런 눈치다.


일단 이 여인이 미혼인지 기혼인지도 모르겠다. 미혼이라고 하면 "이 인간 또 편지 보내왔어요?" 하는 것 같고, 하녀는 "그래도 불쌍하잖아요. 한 번 만나봐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만일 기혼이라해도 역시 원하는  편지는 아니다. 벽에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그린 작품이 걸려 있으니 어쩌면 남편이 항해 중일 수도 있다(이 때가 네덜란드의 대항해 시대다). 그런데 예정보다 빨리 온다는 내용일까봐 긴장하고 있나?


해석은 보는 사람 맘이다. 분명한 것은 제목은 연애편지이지만 연애나 사랑의 감정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전문가는 바다는 사랑, 배는 연인의 상징이고, 폭풍우 치는 바다는 위험한 사랑, 잔잔한 바다는 순탄한 사랑이라고 한다. 나같은 초보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가볍게 패스한다.


Johannes Vermeer <Mistress and Maid>.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베르메르의 또다른 작품도 연애편지를 다루는 것 같다. 제목은 다르지만 앞선 <The Love Letter>와 구도가 비슷하다. 하녀가 주인 여인에게 편지를 주고 있다. 여기서도 편지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표정이 밝지 않다. 특히 받는 여인은 얼굴이 왼쪽 절반만 나오는데도 표정이 굳어 있다. 더구나 왼손을 턱에 대고 있는 제스처로 미루어 볼 때 편지 내용이 불길함을 예상하게 한다. 멀리 나가 있는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동네 이상한 남정네가 남편 없는 틈을 타서 편지질을 했나? 하여간 애틋한 사랑의 감정은 느낄 수 없다.


Willem  Bartel van der Kooi <The Love Letter>.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는 <연애편지>라는 제목의 또 다른 그림이 있다. 1808년 작품이니 네덜란드 장르화가 한창이던 시절로부터 거의 150년 정도 지난 시점에 그려진 그림이다. 여기선 남동생이 누나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있다.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누나는 베르메르 작품 속 주인공처럼 편지가 맘에 들지 않는 눈치다. 인종과 국적을 떠나 사랑하는 감정을 가진 사람의 얼굴에선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없으니까.


동생은 "누나, 옆집 반데르 피게 형이 이거 갖다 주래" 하는 거 같고, 누나는 "하..이 인간 또 보냈네. 읽을까 말까.." 하며 고민하는 눈치다. 베르메르가 활동하던 시절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가 인물들의 복장도, 헤어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다.


작품 몇 개만 가지고 일반화할 순 없지만, 네덜란드 화가들은 연인간에 사랑이 한창 꽃피는 행복한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사랑을 둘러싼 갈등이나 감정변화를 표현하는 데 치중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가 프랑스인과 네덜란드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도 이와 비슷하다. 왠지 프랑스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앞뒤 잴 것 없이 사랑에 올인할 것만 같고, 게르만족 네덜란드 사람들은 매사에 정확하고 빈틈없지만 사랑에 있어서도 무뚝뚝하고 차가울 것 같은 이미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일 뿐이다.


적어도 연애와 사랑에 있어서는 프라고나르의 작품이 훨씬 열정적이고 아름다워 보인다. 청춘들에게도 이 작품을 꼭 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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