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상대, 임시방편, 동족방뇨

필수교양

by 캐슬

군에 있던 시절 아침 조회 때마다 지겹게 소리치던 말이 있었다.


"하석상대! 임시방편! 동족방뇨! 패.가.망.신!"


대대장님께서는 달에 한 번 정도는 새벽 조회에 등장하던 부지런한 분이셨는데 아침마다 저 구호를 외치게 만드심과 동시에 그에 관한 일장연설을 하곤 했다.

때문에 대대장님께서 스탠드에 등장하시는 날엔 여기저기서 옅은 탄식과 한숨이 새어 나오곤 했다.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같은 말을 듣고 있으면 없던 두통도 저절로 생기는 것만 같았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어물쩡 넘기면 꼭 사고가 납니다. 아랫돌을 빼어 윗돌을 괴는 어리석은 행동은 절대 하지 않도록 합니다."


'아우 대대장님. 요즘 애들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 있게! 하니까 제발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얼어 죽겠습니다!'


입이 오리마냥 튀어나와서 투덜대고 있다 보면 기나긴 연설이 끝났고 힘차게 구호를 다시 한번 외치며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임시방편이나 미봉책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워 조금씩 해치워 나가는 버릇이 있었고 나름의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나의 발전하는 능력과 반비례하여 수직하강하고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임기응변 능력! 어떤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졌을 때 신속하게 대처하는 요령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지독하게 요령이 없는 인간이었다. 좋게 이야기하자면 완고하며 정직했고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타협을 모르고 분위기를 읽지 못했다.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굳이 입 밖에 꺼내 욕을 들어먹기 일쑤였고 융통성 없이 바보 같은 소리를 해 분위기를 망치기도 했다. 사회성이 많이 부족했지만 다행히 공부는 곧잘 해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학생 때는 대단한 요령이 없어도 공부만 꾸준하게 하고 규칙만 잘 지켜도 모범생이라 치켜세워 주었고 사회성이 부족하니 어느 일이든 조용히 묻어가며 조금씩 양보하기만 해도 교우관계에서 문제 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사가 되니 이젠 내가 능동적으로 타인을 이끌어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모든 문제에 관해 긴급 환자에게 수혈을 하듯 정확하고 빠르게 처치해야만 했으나 당연히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판서 중에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면 투닥거리를 하고 있질 않나, 멀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토를 하질 않나, 긴급 꼬리를 달고 온 공문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때도 있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각종 행사에 차출될 때도 많았다.


이거에 잠깐 정신을 팔고 있으면 다른 일이 터지고 그 일을 수습하다 보면 또 다음 일이 터진다. 설상가상으로 빈번하게 일촉즉발의 사태에 연신 놓이곤 해 그야말로 혼비백산 정신을 붙잡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좌절을 맛본 끝에 이제는 어느 정도 임기응변이 가능한 인간이 되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울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잠깐 사탕을 물리는 정도의 센스가 생겼으며 급한 공문이 날아왔을 때나 시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을 때, 당장 학생들끼리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순식간에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토사물 정리는 도가 텄고 학교의 각종 일정도 어느정도(완벽X) 소화해 낸다.


고작 몇 년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나 바뀌다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 무슨 일이든 짬은 무시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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