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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저널 Jul 15. 2022

입원 만반의 준비를 하고도 당황스러운 일은 직면하다.

병원에서 벌어진 황당 에피소드


큰 수술을 앞두고 입원 준비는 간단하다.


샤워도구, 스킨, 로션(건조해서 손발 수시로 바름)
물티슈, 각티슈, 여성위생용품
칫솔, 머리빗, 머리끈, 수술후 쓸모자
텀블러(빨대는 선택 사용이 용이)
여벌의 속옷, 수건, 옷걸이(젖은 수건용)
핸드폰 충전기, 노트북이나 태블릿(여가용),
빵끈(전기코드가 침대에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용)
책, 다이어리, 필기구
이어폰이나 귀마개, 안대(민감한 사람들은 필수)
유산균이나 요거트(변비에 즉효)
보호자용 침구, 종이컵, 수저(선택)
PCR검사결과(1~2일전 보호자와 필수), 신분증(보호자)​


만반의 준비를 다해 놓고 침상에 앉으니
뭐.. 나름 괜찮다.


어제 비가 꽤 많이 와서 차가 많이 밀렸다.
종합병원의 주차공간이 아주 좁아서 더 시간이 걸렸다.
식구들은 입원만 도와주고 모두 집에 보냈다.
하루는 혼자 병실에서 보내도 된다.
아직 걸어 다니고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큰 딸이 회사 휴가를 내고 간병을 하러 올 예정이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은 더욱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호자는 1인으로 통제되고 외출이나 교체가 어렵다.
부득이 교체해야 하는 경우 PCR 검사를 해야 한다.
검사 결과가 하루가 지나야 하니 번거롭다.



보호자 상황도 엄격하니 병문안 방문객도 일절 사절이다.
보호자 외 가족들만 잠깐 로비에서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다.
6인용 병실로 안내받았는데
일제히 모두 커튼을 쳐놓고 방안 사람들의 얼굴도 모른다.
예전 시어머니께서 암 수술로 장기입원을 했을 때
간병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식사시간에 서로 간식들 나눠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시대는 정말 먼 옛날이야기 같다.


병실 안내를 해주는 내 담당 간호사가 남자다.
요즘은 남자 간호사도 종종 보인다.
오자마자 혈압부터 쟀다.
170이 넘어서 양쪽을 번갈아 다시 쟀다.
너무 높다고 조금 있다가 다시 재야 한다고 했다.


이 남자 간호사 성실하고 착해 보이나
아직 초보인 티가 난다.
병원의 에어컨 가동 중이라 선선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덥다란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링거 바늘을 꽂는데

오 마이 갓!

주삿바늘을 넣고 피가 나오지 않자
혈관을 여기저기 찌르며 찾고 있다.
오른팔로 교체.
겨우겨우 혈관을 찾아 바늘을 꽂았다.
혈압은 어제만 열 번을 넘게 재었다.


더욱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뇌혈관 조영술을 수술 전에 해야 한다고 한다.
조영제는 혈관을 잘 보이게 하는 약이다.
약간의 부작용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이전 CT 촬영과 MRI 촬영 때도 조영제를 투입했을 때
나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뇌혈관 조영술은 서혜부를 절개해서 뇌혈관까지

2mm 정도 머리카락 굵기의 관을 삽입하여
조영제를 투입한다.



문제는 서혜부에 면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집에서 해결하고 왔을 텐데...
남자 간호사라 더욱 민망했다.
뇌혈관 조영술도 하반신 국부 마취를 하고
시술 직 후 누워서 하루를 보내야 할 만큼 힘든 시술인데

지금은 남자 간호사에게 내맡긴 몸이
훨씬 더 부담스럽다.


지인에게 이 어이없는 상황을 말했더니
병원이 환자를 멘탈붕괴 시켜
다른 생각은 아예 못하게 만들려는 고도의 작전이란다.
훌륭한 병원과 의료진이라고 칭찬하다.
나도 덕분에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의도치 않게 한 번도 한적 없는 브라질리언 왁싱을 당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마음도 정신 무장했는데
초보 남자 간호사가 이렇게 당황시킬 줄 전혀 몰랐다.


웃자!
웃고 넘어가자!
삶이 주어진 상황은 나의 의도는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감정은 나의 선택이다.


최근에 명상이 꽤 잘 된다.
아무래도 삶과 죽음에 대해 좀 더 실질적으로
몸에 와닿으니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넓어진듯하다.


저녁 아이들과 단체톡을 했다.
영상 톡은 병실에서 실례가 될듯하여
그냥 문자로 주고받았다.
아이들이 엄마 보고 싶다며 자신의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큰애는 회사에
둘째는 학교 기숙사에
막내는 아빠랑 집에 있었다.


한 장씩 올라온 아이들의 사진이 기가 막히다.
어머나! 모두 한결같이... 어쩜.

두 눈을 모으고,
턱을 이중으로 만들고,
화면에 꽉 채운 세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입에 물 한 모금 머금었다면 바로 뿜어버릴 뻔했다.
아이들도 이 시간을  이해하고 잘 보내준다.
많이 컸다.


우리 가족이 모두 내면적으로 성숙하는 단계인듯하다.


인생의 파도는 덤비고 맞서 싸우는 게 아니므로
그 파도를 슬기롭게 즐기는 서핑을 배우자.
굴곡이 있을수록 나의 삶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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