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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May 15. 2024

<엄마 냄새>

〔소설〕결국 해피엔딩 2


“미자 씨, 감자 드세요.


마루에 앉아 듣는 둥 마는 둥

엄마는 웃옷을 풀어헤치고 요오드 액을 바르고 있다.

가슴이, 여기가 쓰리다면서 매일 한 번씩 저러신다.


처음 붉은 매니큐어를 바르던 날

엄마 가슴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던 그날의 강렬함이 떠오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그것은 흡사 엄마 가슴에 흐르는 피인 줄 알았다.

그리고는 번번이 붉은 매니큐어를 골라 바르곤 하셔서 요오드액을 사다 드렸다.


“이거 빨간약 아닌데?”

“빨간약보다 노란 약이 효과가 더 좋대요. 그거 바르니까 금방 낫지 않아요?”

“응, 그렇긴 해.”


뭐라고 하면 대개는 순순히 받아들이신다.

뭐든 당신의 몸으로 체감하지 않으신다.

그저 때우는 말로도 그런가 보다 넘어가신다.

정신이 사라지면 감각도 사라지는지

그저 껍데기로만 사신다.

그러니 다행이야 라고만 할 수 없는

서글픔은 따로 있다.


대문 소리에 시선이 끌린다.

어, 뭐야 쟤?


술 취해 담을 넘었던 그 애가 이번에는 대문으로였지만 또다시 지멋대로 들어오다 멈칫 얼음이 되었다.

말끔한 차림새에 백 팩을 매고 있다.

큼직한 캐리어가 비스듬히 그 애의 손에 붙들려있다

“안녕하세요?”


“응? 아이고 내 새끼 왔네, 학교 잘 다녀왔어?”

엄마의 화들짝 호들갑에 요오드액이 쓰러져 쏟아진다.

“미자 씨!”

나는 마루로 올라가 요오드액을 닦았다. 노랗게 젖는 휴지.

그새 엄마는 아이를 잡아끈다.

“어여 와, 배고프지? 내가 얼른 밥 차려 올게, 여기 앉아있어.”


귀여운 우리 엄마.

갑자기 홀가분하게 날래지신 엄마는 후다닥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아이는 머뭇머뭇 눈치를 살핀다.

“안녕하세요, 저는 윤건우입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지난번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사도 없이 그래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그 인사하려고 온 거야?"

“네. 그리고 저기, 저 여기서 살면 안 돼요?”

“뭐라고?”

얘가 뭐라는 거야, 뭔 뜬금없는 소리야.


“여기서 할머니들이랑 살고 싶어요.”

“뭔 소리야, 널 언제 봤다고. 너네 집 없어?”

“있어요.”

“가족은?”

“가족도 있긴 있어요.”

“근데 왜 남의 집에 와서 살고 싶대?”

“그게, 그냥요.”

“뭐라고? 니가 그냥이면 우리는 너를 그냥 살게 해 주라고?”

“그게, 그날 뭔가 잠결에 엄마 냄새가 났어요. 그래서,”


뭐야 얘는. 생판 남의 집에서 무슨 엄마 냄새를 맡았다는 거야. 지 엄마 냄새는 지 집에서 나는 거지. 엄마 냄새가 왜 여기서 나. 할머니 냄새면 몰라도.

근데, 엄마가 그리운 앤가? 살짝 맘에 걸린다.


“널 뭘 보고, 어떤 앤 줄 알아서. 어린 게 술 먹고 어디서 쌈질하다 남의 집 담장이나 넘어 다니는 애를 어떻게 집에 들여.”

“안 그럴게요, 다시는. 또 그러면 제 발로 나갈게요.”


“어여 먹어.”

작은 반상에 밥과 감잣 국, 김에 열무김치를 얹어 들고 나오신다.


나는 어이없어 죽겠는데

아주 우리 엄마 신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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