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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May 02. 2024

<프로포즈>

〔소설〕결국 해피엔딩 2


나는 처음 연애를 했고

그 사람과 결혼했다.


그는 나를 포함해 꼴 난 직원 몇 명뿐인 출판사의 젊은 사장이었다.

한 1년쯤 근무했을 때

개인적으로 연락해도 될까요, 하길래, 그러세요,라고 했다.

왠지 싫지 않았다.


그와의 사적인 만남이 시작되면서 결혼이란 걸 생각하게 되었지만

정작 결혼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해도 되나, 난 이 집에서 우리 엄마랑 살아야 하는데.

이런 내 사정 고스란히 받아 줄 사람이 있겠어?

"우리 집을 떠나야 하는 거면 결혼 안 할 거야."

엄마에게 못 박았다.     


"괜찮아. 엄마 혼자 있어도 돼. 엄마 잘할 수 있어."

"아니, 못 할걸. 여기서 혼자, 텃밭에서 코 박고 봄여름가을엔 그렇다 치고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겨울엔 어쩔 건데. 비 오는 날엔 어쩔 건데. 엄마 혼자 외로운 날엔 어쩔 건데.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오는 밤은 어쩌려고. 난 못해. 그렇게 엄마 혼자 남겨두는 거 안 할 거니까 그런 줄 아세요."   


그래도 한동안 데이트란 걸 했다.

뭐 딱히 뜨겁거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무슨 옷을 입고 갈까 거울을 보게 되고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와 함께 있을 땐 마음이 편했다. 뭔가 곤두서 있던 신경이 누그러지는 것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

그는 몸짓이 작고 말씨도 고요했지만

본인이 알아서 할 건 다 했다.

밥도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이거 완전 개똥차예요, 멋쩍어하면서

드라이브도 하고.


"요즘 산이 예쁠 땐데 주말에 등산 갈까요?"

맞아, 우리 텃밭에 꼬물꼬물 올라오는 것들이 제법 자랐어. 나도 알지. 요즘 초록이 예쁠 때라는 건.

"네, 좋아요."

"도시락은 내가 준비해 올게요. 은이는 몸만 와요."

"그래도, "     


그날 퇴근길에 어디 좀 가재서 따라간 곳은 아웃도어 매장이었다.

이거 신고 오라면서 등산화를 사줬다.

요란하지 않은 세심함에 처음으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가 좋아진 그만큼 조바심이 났다.

더 좋아지기 전에 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 없어 그만해야 한다면

되도록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을 때  내 얘기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면 안 될 거 같았다.     


"저기, 할 말 있어요."

"그래요? 음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네요."

"기대는 뭐고 걱정은 뭐예요?"

"기대는 은이가 드디어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건가이고요, 걱정은 끝내 마음 걸어 잠그는 건가, 그래요. 일단 하려는 얘기 들어볼게요."     


오빠 얘기를 먼저 했다. 눈물이 날까 봐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실종 됐노라고, 생사가 확인이 안 된 상태라고,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랑 둘이 산다고 했다.       

"난 우리 엄마 혼자 두고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을 거  같아요."     


말없이 듣던 그의 입가에 가벼운 웃음기가 번졌다. 뭐야, 이분위기에 그런 웃음이 맞냐.

"그러게 은이는 그런 어머니를 혼자 두고 오기는 어렵겠네요."

"네."

"근데 올 생각은 있다는 거로 들리는데."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먼저 짚고, "

"그럼 간단해요.  은이는 그냥 있고 내가 가면 되죠. 은이가 있는 데로 가면 받아는 준다는 거잖아요."

"네? 그게, "

"난 어차피 대학 때부터 혼자 살고 있어요. 부모님은 고향에 계시고. 그리고 난 사실 오래전에 마음 정했는데, "

"네, 뭘요?"

"은이랑 결혼해야지 하고."

"네? "

"마음 열어 주길 기다렸어요. 그러려고 엄청 노력한 건데. 여튼 난 오늘 프로포즈받은 걸로 칠게요."

"네, 그건 아니고, "    


아, 그냥 가만히 있을걸. 괜한 조바심에  마음만 홀랑 들킨 거 같고, 원래는 내가 받아야 할걸 엉겁결에 탈취당한 거 같은데, 근데 또 기분은 묘하고,

나쁘지 않은 게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 이 사람 좋은 사람 같아.


완아,

세상에 너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 하나 더 있다.


이 사람한테 기대도 될 거 같아.

그런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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