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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믿음! 아직 서투른 시작 앞에서

기도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by 아침햇살영




늘 괜찮은 척, 웃으며 살아왔다. 마음의 상처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던 날들, 울컥함은 말없이 올라왔고 오직 나만 알고 있는 눈물과 마주했다. 그 눈물은 내 안에 아직 살아 있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어머니는 모든 괴로움을 하나님께 맡겼다." -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 중 <내 부모님은 어떻게 걱정을 극복하셨을까>를 읽는 동안 마음 한편이 자꾸 울컥거렸다.


홍수에 농작물이 쓸려 나가고 돼지들은 병들어 타들어가며 평생을 일해도 남는 건 빛과 절망뿐인 부모님의 삶

그 절망 속에서 카네기의 아버지는 생을 포기하려 했고 어머니는 매일 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기도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결국 가족 모두를 지켜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억울함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왜 내 삶에는 믿음이 없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너무도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던 나

의지할 대상도 도와줄 사람도 없이 그저 혼자 버텨야 했던 시간들. 세상이 무서웠다.

내 편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늘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친절하고 착하게 살아야 했다. 그것이 내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는 것이 아니라 억눌림 속에서 겨우 견디는 것이었다.


만약 어릴 적부터 기도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자랐다면 조금 덜 무서운 세상을 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내 안의 무언가가 부서지고 또 새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중 · 고등학교 시절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하는 노래를 참 좋아했다. 가사 밑에 '고린도전서'라는 글자가 젹혀 있었고 그게 성경 말씀이라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저 노래로만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 구절의 깊은 의미 그 말씀이 주는 위로를 진심으로 마주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옛날부터 그 말씀이 내 마음의 문을 살며시 두드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몇 해 전부터 우연한 일들 속에서 기독교에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성경을 펼쳐보기도 했고 아침마다 '주기도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진심으로 되뇌며 입술로 기도문을 따라 읽었을 뿐인데 갑자기 그 주기도문을 낭송하던 내 입술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한 문장이 나를 품어줄 아버지가 되어주겠다는 약속처럼 들렸다.


예수님의 삶을 깊이 알지도 못한 채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그분은 늘 내 곁에 계셨던 것 같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던 내 인생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 그분의 손길이 나를 붙잡고 계셨기 때문 아닐까.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쳐를 예비하러 가노니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장 2절


"걱정을 없애는 특효약은 종교적인 신앙심이다." -윌리엄 제임스-


"인간은 삶을 이해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살아가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산타야나-


"종교적으로 신실한 사람은 신경증에 걸리지 않는다." -A·A 브릴 박사


"내가 온 것은 너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_


이 말들이 지금의 나에게 작은 빛처럼 다가온다. 나는 이해하려 애쓰느라 지쳐 있었다. 살아남느라 지쳐 있었다.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믿음이란 살아가는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그 자체일 수 있다는 것을.


고린도 전서 13장 4절 ~ 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매일 주기도문을 읊조리며 나는 감사의 말을 반복한다. 그러다 문득 감사와 함께 찾아오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린 아픔이 가슴을 타고 올라온다. 그건, 내가 견뎌온 세월이 남긴 고요한 흔적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리고 문득 나보다 훨씬 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지금의 나, 그 깨달음을 가질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다.


나는 아직 교회에 나가지 못했다. 그저 주기도문을 외우고 생각날 때마다 성경책 읽어 주는 오디오북을 듣고 책을 들여다볼 뿐이다.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다 보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놀랄 때가 있다. 살아오며 참 많은 감정을 눌러왔다. 누구에게도 날카롭게 굴지 않았고 싸움은 피했고, 손해 보더라도 마음 편한 쪽을 택했다. 받기보다는 주는 것이 더 익숙했고, 관계가 깨질까 늘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조용히 참고 넘겼던 시간들 끝에, 요즘 들어선 누군가 내게 무례하게 말하거나 억울한 상황을 겪으면 속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예전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던 일이 이제는 내 안에서 분노로 치솟는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이해와 용서가 깊어진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의 마음을 경험하고 있다. 아마도 너무 오래 참고 눌러온 감정들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늘 괜찮은 척 항상 따뜻한 사람인 척 웃는 얼굴을 하고 살아왔던 나의 또 다른 모습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사랑'을 철학의 중심에 두고 실천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그 내면에 알 수 없는 감정을 솔직히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가 조금씩 알아채고 있는 중이다.

아, 이제는 신 앞에 솔직해지고 싶은 때가 왔구나!

그 누구의 평가도, 눈치도 없이, 그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


"내가 기도와 종교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종교가 가져다주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즐기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종교적인 삶을 권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은 뒤 지옥에 가는 것을 피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지옥, 즉 위궤양, 협심증, 신경쇠약, 정신이상 등과 같은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사상을 지적으로 받아들인다거나 어떤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정신으로 어떤 특정한 삶을 사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 중에는 인용하고 싶은 감동적인 글귀가 너무 많다.


이런 문구들이 내 마음을 기독교인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나도 모르게 억눌려 있는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하고 싶다.

더 풍요롭고 충만하며 행복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그래, 잊지 말자. 지금의 나를. 살아있는 나를.


믿음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조금씩,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비추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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