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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유 Jun 01. 2023

자퇴를 마치며

토막 에세이-위로

언젠간 폭발해 버릴 불안을 알지 못하고, 잠재되어 있던 상처들을 늘 꾹꾹 억누르고 참아오기만 했던 나의 모든 지난날들에 안녕을 고한다.

참으로 고단한 2년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과에서 나는 왜 그리도 설움이 많았는지. 학교에 다니는 내내 곁에 둘러싸인 학부생들 사이에서도 나는 왜 그리도 자주 외로움을 느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잘못이 아닌 것들에 너무 심하게 끙끙 속앓이를 하고, 자주 눈물을 몰래 훔치는 밤을 보냈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들을 끊어내지 못하고, 내가 감당치 못하는 부분들까지 끌어안기 위해 늘 아등바등 애쓰고 있었다.


“온유 너는 그냥 졸업하면 병원취직이잖아. 심지어 바로 옆에 대학병원도 있고. 미래가 그냥 보장되어 있는데, 난 네가 부럽다야.”


괴로운 마음에 좋아하던 보컬 동아리에 가서 가끔씩 고민을 털어놓으면 늘 듣는 말들이었다. 안정적이고, 변화가 없으며, 늘 꾸준히 일만 해야 하고, 재능 자체는 깡그리 무시되는 삶. 당시의 나는 그런 삶을 영위해 나갈 힘이 내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애써 외면해 왔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나와, 휴학 한번 없이 ‘안정적으로’ 졸업하고. ‘안정적으로’, 남들이 모두 다 따는 자격증을 따고, ‘안정적으로’, 너무나 가득한 부조리들에 눈을 감고. 그러다가 반드시 서른 살 쯤에는 결혼하고, 매일매일 출퇴근을 반복하는 삶. 그것이 나에겐 맞지 않았다. 마치 지구라는 이상한 별에 떨어져 혼자 허우적대는 외계인이 된 느낌이었다. 모두 다 이 이상하리만큼 안정적인 삶에 올인하고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너무 기뻐하는데, 나만 어딘가 외딴섬에 홀로 동떨어져 쓸쓸하게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그놈의 안정, 안정. 숨이 막혀왔다. 선배들의 조언조차 내게는, 자유로이 헤엄치는 바닷속의 물고기를 강제로 어항 속에 들이밀라는 듯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사실, 그랬다. 그 무렵의 나는, ‘40대 이상의 어른들이 듣자마자 좋아할 만한’ 일들을 해내는 것에 능통했다. 이를테면, 늘 생글생글 웃고 다닌다거나, 마음속에 불안이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앞날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말한다거나, 관심 없는 수업 내용에 억지로 질문을 한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당시 나는 사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감당하는 것만도 버거웠는데, 이런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아이들은 또 왜 그리도 많았는지.


한 번은 매일 나를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한 아이가, 내가 서류를 작성하던 사이, 내가 가진 볼펜을 빼앗아 쓰던 일이 있었다. 기가 차 그 아이에게 그거, 내 거라고 분명히 말했고 그 아이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 이거 니 거야? 난 몰랐지.”


아무렇지 않은 척 거짓말을 하며 환복을 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미래에 의료인이 될 거잖니. 치과위생사 선서를 할 사람이잖아. 안타까웠다. 그 아이의 행동에 짜증이 난다기보다는, 이런 인격을 가진 사람 밑에서 이가 아파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편히 숨 쉴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학과에는 참 부조리가 많았는데, 이를테면, 매년 진행하는 치과대학 축제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름을 체크하고 학생당 강제로 10만 원을 부과하겠다는, 속된 말로 참 거지 같은 일들이었다.


빠지면 어떻게 되나요, 묻는 내게 선배가 말했다. 뭐, 축제에 참여하지 않을 순 있어, 하지만 그 아이는 아마 학과 전체에 소문 퍼질걸.


억지로 참여하는 축제가 절대 즐거울 리 없다. 치위생학과든 치의학과든 총장님을 보면 ‘90도로’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해야 한다며 맥주잔에 탁구공들을 던져 넣고 계속 술을 푸던 어느 치의학과 학부생의 말에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잠재우며 간신히 맘을 달래야만 했다.

어느 용기 있는 학부생이 대학교의 익명게시판에 올린 글은, 그 당시 치과대학 전체를 뜨겁게 달궈 놓았다. 학생들에게 강제성을 부여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 충분히 맞는 말이었는데, 그 글에 대하여 한 교수님은 학생들 전체를 모아 강의실에 불러놓고 피피티를 띄우며 말했다.


“우리는 하나니까, 둥글게 가야 해요. 어느 하나 톡톡 튀는 사람 없이. 솔직히 그렇잖아, 내가 학부생이던 시절에는 이런 식으로 글도 맘대로 못 올리고 그랬어요. 그리고 선배들 잘못이 아니에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사정들이 이해될 거예요. 글 쓴 사람이 아직 어려서 그래.”


얼마나, 어디까지 이해를 바라는 걸까. 과연 우리는 나이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걸까? 그 사람의 눈빛과 성향과, 살아온 삶들과 가치관들로 그 사람을 바라볼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가. 왜 사람들은, 외양과 직업, 나이, 성별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마음을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


이상하게,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머릿속에는 의문들이 커져만 갔고 어느새, 나는 수업을 들으면서 낙서를 할 정도로 학과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주로 학과에서 내가 수업시간에 하는 일들은, 그림을 끄적거리거나 짧은 글귀들을 적는 일같이 수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오를 때쯤. 나의 삶이 뒤틀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결국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자퇴를 마치고, 현재 4개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 편입원서를 넣고 있는 나는 생각한다. 참 다행이라고, 그곳을 제때 나오지 않았으면 내 삶은 못 견딜 정도로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자퇴’라고 선명히 써진 학교의 학과 정보들을 바라볼 때마다, 내 머릿속엔 참 여러 일들이 떠오른다. 다행스럽게도, 2년 동안 그곳에 있었던 게 헛되진 않았어,라고 중얼거리며 미소를 짓게 되는 일들이 있었다.


*피펫을 밀리미터 단위로 적어내는 나의 리포트를 보신 나의 생물학 교수님은, 나를 따로 불러내 말씀하시곤 했다.


“온유야, 너 혹시, 대학원 안 올래?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 줘.”


또, 남은 게 있다면 달라며 당당하게 치킨 몇 조각을 뺏어 들고, 양 볼이 미어져라 우걱우걱 씹어대는 나에게 보컬 동아리 오빠들은 온유 넌 어딜 가나 굶어 죽진 않겠다고 웃으며 말해주곤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곳에서도 섬세한 일들은 참 잘했었다. 특히 짧은 시간 동안, 병원에서 일할 땐 더욱 그러했다. 이유 없이 괴롭히는 수직적인 병원 문화에 눈물 흘리기도 했지만, *악궁의 전체적인 구조를 관찰하기 위해 환자의 입술에 *개구기를 끼워 사진 촬영을 해야 한다거나, 환자에게 의학용어를 바꿔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 일들은 참 잘했다.


특히, 인문학, 명저 읽기와 가치관의 이해, 창의적 사고와 표현 같은 과목들에선 그리 힘들이지 않아도 높은 점수를 받았었는데, 그러한 교양 수업들은 나라는 사람이 사실 글과 철학, 그리고 추상적인 과목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도와주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은 그렇다. 무얼 하든, 섣부를 때도 많고, 늘 서투르고, 미숙하다.

우아하게 등을 돌리는 방법이나, 미소를 지으며 작별 인사를 하는 일들에 대해선 더더욱 그렇다.

나의 앞길에 대해 알 수 없다 해도, 그렇다 해도 나는 삶에 안주하지 않고 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늘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들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고,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든지 삶에 대해 포기할 부분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도전할 일들엔 용기 있고 소신 있게 도전하라고 다독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간다고 해서, 절대로 생각 없이 그 길을 따르지 말고, 당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회의 통념에 욕먹을 각오를 해가며 때론 당당하게 맞설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마음이 아플 땐 언제든지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어른에게 내가 꼭 해주고픈 이야기이다.

아플 땐 아프고, 행복할 땐 마음껏 행복하길. 가장 먼저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길.

꿈을 고민하고, 꿈을 품기엔 늦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의 시작을. 나는 응원한다.


 

1. 피펫: 일정 체적의 액체 또는 기체를 측정하거나, 다른 용기에 추가하거나 할 수 있는 기구를 말한다. 보통은 유리제로 1~100㎖의 용적이다.


2. 악궁: 영어로는 dental arch. 치아 배열이 말발굽 형태의 아치를 형성하기에, 턱에 있는 아치 형태라는 뜻이다.


3. 개구기: 치과에서, 구강을 오픈할 때 쓰는 기구. 이 기구를 환자의 입에 끼워 벌리면 치아의 모든 형태가 눈에 들어오기에, 치아 형태와 관련된 사진을 찍기에 매우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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