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무슨 소리가 들린다. 벌떡 잠에서 깬다. 무슨 소리지? 누가 우는 소리? 어머니 방에서 나는 소리다. 뛰어가서 방문을 열어 보니 어머니가 방에 주저앉아 매우 아파하신다.
119를 부르고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검사를 하니까 엉덩이 부근 고관절이 부러지셨다고 한다.
의사가 수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병원이 수술이 너무 밀려서 다른 병원을 소개해준다고 한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어머니를 다시 모시고 근처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갔다. 담당 의사가 수술 중이나, 수술 후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얘기해준다. 노인이기에 수술의 후유증이 심할 수 있다, 근육이 심하게 빠지기 때문에 걷지 못하는 결과가 있을 수 있다, 치매가 올 수도 있다, 회복이 느리기에 자칫 했다가는 합병증이 와서 생존확률이 떨어질 수도 있다, 등등이었다.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다가 살짝 미끄러져 방바닥에 콩 하고 앉은 방아를 찌신 것뿐인데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하얀 옷을 입은 의사가 눈앞에서 사망 확률 운운하다니, 뭔가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얼마 뒤에 퇴원하시고 요양병원으로 옮겨갔다. 요양병원은 생전 처음 가본 셈이다. 층층이 편찮으신 노인들이 가득 차 있다. 이상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처음이지만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수술한 부분이 어딘가 불편하고 좀 아프시다고 해서 다시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 수술한 자리가 문제가 생겨서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노인이 두 번씩이나 수술을 받는다는 게 너무 겁이 났다. 의사도 지난번보다 더 겁을 준다.
수술은 또 다행히 무사히 마쳤다. 생각보다 어머니는 이런 과정들을 담담히 잘 견디셨다. 하지만 수술 후유증이 왔다. 팔과 다리와 얼굴 한쪽이 부분 마비가 온 것이다. 수술 시간이 길어져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랴.
퇴원 후, 다시 요양병원, 그런데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다리 근력이 너무 빠지셔서 재활에 진전이 별로 없다. 걷지를 못하시는 것이다. 담당 의사는 아마도 앞으로 다시 걷지 못하실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날 병원 한구석에서 어머님과 우리 부부가 함께 앉았다. 어머님께서 요양원으로 가시기로 한 것이다.
이런 잔인한 일이 나한테도 닥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불가피한 상황이라 해도 이렇게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온몸을 채운다.
어머님은 결국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입소하는 날 어색해하던 어머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수술의 후유증으로 한쪽 팔을 못 쓰시는 데다가 휠체어도 익숙하지 않으셔서 처음에는 몇 번 화장실 가는 중에 넘어지시기도 하셨다.
시간과 거리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무디게 만드는 것 같다. 어머님도 요양원에 그런대로 익숙해지셨고 우리도 많이 덤덤해졌다.
그렇게 지내다가 코로나 19가 터지고 요양원문은 굳게 닫혔다. 그나마 1, 2주에 한 번 뵙던 어머니를 이제 못 뵌 지가 수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에 간혹 유리창을 두고 몇 분간 얼굴을 뵙긴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코로나 19로 인해 요양원에 계신 분들이 집단 감염되기도 한다는 보도가 나고, 노인들의 치명률이 아주 높고, 그러다가 혹시라도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임종은 물론이고 장례식조차 제대로 치를 수 없다는 보도들이 나올 때면 마음이 얼어붙는다.
어제 어머니한테서 크리스마스 카드가 왔다. 요양사들과 함께 만든 카드라고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몇 글자가 삐뚤빼뚤하게 겨우 쓰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