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질 않는다. 바람이 세차게 불지만 않는다면 아침 산책은 되도록 나간다. 여름날 시골 생활이야 반바지에 슬리퍼만 신어도 뭐라 그럴 사람이 없다.
여느 날처럼 산 밑자락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길가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괴이한 소리가 난다. 가까이 가보았다. 배수구에 물이 흘러 들어가는 소리이다. 흘러 들어간다는 표현보다는 빨려 들어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배수구는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쩌억쩌억 하는 괴이한 소리를 내며 연신 물을 빨아들이고 있다. 발을 헛디디기만 하면 어른도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것같이 그 기세가 맹렬하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나무 하나가 쓰러져있다. 나무는 산에서부터 넘어져 길을 가로질러 길게 누워있다. 연일 내리는 비를 못 이겨낸 것이다. 방금 쓰러진 것 같이 온통 드러난 뿌리엔 흙들이 그대로 붙어있다. 줄기는 까맣게 젖어 있다. 쓰러질 때의 충격 때문인지 줄기와 가지 몇 군데가 부러져있다. 하지만 가지 끝에 달린 나뭇잎들은 아직도 초록 잎들이 생기를 머금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나무는 하루하루 천천히 모습이 달라져 갔다. 처음에는 가지에 붙은 나뭇잎들이 떨어져 나갔다. 나뭇잎들은 빗물에 이리저리 뒹굴다가 모두 배수로로 흘러간다. 하루 이틀 뒤에는 껍질들이 툭툭 떨어져 나갔다. 껍질이 사라지면서 나무는 누렇게 속살을 드러낸다. 나무는 한참 동안을 거기 그대로 비를 맞으며 버티다가는 조금씩 부러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끄러지듯이 떨어져 잠시 흐르다가는 그 끔찍한 소리를 내는 배수구로 힘없이 빨려 들어간다.
남은 조각들을 집어서 산쪽으로 던질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곧 아니라고 되뇌어본다.
나무는 그렇게 보름 정도를 견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숲을 올려다본다. 같이 어울리던 나무들이 내리는 비에 고개를 숙인 채 내려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