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언제 설레시나요?
최근에 설렜던 적이 언제였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설레는 일은 세월과 비례하여 줄어들어갔다. 이미 알고 있기에. 기대해봤자 별 소용없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렐 때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얼굴에 미소가 얹히고 행복 회로가 돌아간다. 그 순간이 좋다. 곧 무너질 설렘일지언정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 순간이 좋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나에겐 모퉁이가 그렇다.
느지막이 이불 밖으로 나온 주말, 사진을 저장해 놓는 하드디스크를 열었다. 마지막으로 내 일상을 찍은 사진 폴더에 2021년이라고 적혀있었다. 사진을 직업으로 가지고 난 이후 내 일상을 카메라에 담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일의 연장선 같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카메라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간 이유는 사진에 대한 애정이 식을 것 같은 걱정과 일상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이다.
2:00:00. 타이머를 설정해놓고 걷기 시작했다. 무작위 재생으로 틀어놓은 유튜브 뮤직에서 잔나비의 목소리가 들린다. 잔나비 특유의 음색으로 잔나비인 줄 알았지만 처음 듣는 노래였다. 이어폰 넘어 들리는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섞여 귀를 자극한다. 오묘하게 섞인 소리는 꽤 잘 어울려 듣는데 거북함이 없었다. 바람을 타고 초여름의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이 시기면 매 년 맡는 익숙한 냄새는 늘 활기 넘치게 만들어준다.
걷다 보니 모퉁이가 나왔다.
모퉁이. 국어사전에 따르면 구부러지거나 꺾어져 돌아간 자리라고 한다. 이름부터 투박한 게 마음에 든다. 길을 걷다 모퉁이를 만나게 되면 늘 기대하게 된다. 저기 앞에 보이는 모퉁이를 돌아도 깜짝 놀랄만한 다른 세계가 펼치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내 경험이 틀렸다는 듯 휘황찬란한 다른 풍경이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해 주길 바라게 된다. 이번에도 모퉁이를 돌아보니 별 다른 게 없는 풍경의 연장이었지만 그래도 모퉁이를 돌기 전 두근거리는 설렘이 난 좋다. 설렘과 기대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사라질 거란 걸 알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설레는 마음을 잠재울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결과를 알면서도 설레는 일은 미성숙하게 보이고 효율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모퉁이를 만나는 순간 재밌고 행복한 상상들이 나를 즐겁게 해 준다. 곧 그 설렘이 사라질지라도 지금 내게 오는 이 설렘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아무도 내가 그런 상상을 한다는 걸 모르니 미성숙하고 비효율적인 건 나만 아는 비밀로 하고 즐거움을 마구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 일상에 모퉁이가 많이 나타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