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등대 Jun 12. 2022

모퉁이

여러분은 언제 설레시나요?

최근에 설렜던 적이 언제였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설레는 일은 세월과 비례하여 줄어들어갔다. 이미 알고 있기에. 기대해봤자 별 소용없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렐 때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얼굴에 미소가 얹히고 행복 회로가 돌아간다. 그 순간이 좋다. 곧 무너질 설렘일지언정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 순간이 좋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나에겐 모퉁이가 그렇다.


느지막이 이불 밖으로 나온 주말, 사진을 저장해 놓는 하드디스크를 열었다. 마지막으로 내 일상을 찍은 사진 폴더에 2021년이라고 적혀있었다. 사진을 직업으로 가지고 난 이후 내 일상을 카메라에 담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일의 연장선 같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카메라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간 이유는 사진에 대한 애정이 식을 것 같은 걱정과 일상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이다. 


2:00:00. 타이머를 설정해놓고 걷기 시작했다. 무작위 재생으로 틀어놓은 유튜브 뮤직에서 잔나비의 목소리가 들린다. 잔나비 특유의 음색으로 잔나비인 줄 알았지만 처음 듣는 노래였다. 이어폰 넘어 들리는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섞여 귀를 자극한다. 오묘하게 섞인 소리는 꽤 잘 어울려 듣는데 거북함이 없었다. 바람을 타고 초여름의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이 시기면 매 년 맡는 익숙한 냄새는 늘 활기 넘치게 만들어준다. 


걷다 보니 모퉁이가 나왔다.

 모퉁이. 국어사전에 따르면 구부러지거나 꺾어져 돌아간 자리라고 한다. 이름부터 투박한 게 마음에 든다. 길을 걷다 모퉁이를 만나게 되면 늘 기대하게 된다. 저기 앞에 보이는 모퉁이를 돌아도 깜짝 놀랄만한 다른 세계가 펼치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내 경험이 틀렸다는 듯 휘황찬란한 다른 풍경이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해 주길 바라게 된다. 이번에도 모퉁이를 돌아보니 별 다른 게 없는 풍경의 연장이었지만 그래도 모퉁이를 돌기 전 두근거리는 설렘이 난 좋다. 설렘과 기대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사라질 거란 걸 알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설레는 마음을 잠재울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결과를 알면서도 설레는 일은 미성숙하게 보이고 효율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모퉁이를 만나는 순간 재밌고 행복한 상상들이 나를 즐겁게 해 준다. 곧 그 설렘이 사라질지라도 지금 내게 오는 이 설렘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아무도 내가 그런 상상을 한다는 걸 모르니 미성숙하고 비효율적인 건 나만 아는 비밀로 하고 즐거움을 마구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 일상에 모퉁이가 많이 나타나길 바래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