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성과공유회 같은 큰 행사에서 정치인은 말한다. 가능하면 쉽게 일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간소화를 추진하겠다고. 일이만 원 때문에 회계서류 처리로 고생하지 않게 하겠다고. 직접 개별적으로 만나는 중간조직 실무자는 말한다. 힘든 거 다 안다고. 그런데 악용하는 사례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퉁쳐서 할 수 없고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지침을 마련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매년 같은 이야기라 이젠 아무런 기대도 안 한다. 숫자에 밝지 못한 나만 탓할 뿐이다.
결혼 전 일했던 시민단체에서는 별도의 회계 담당자가 없었다. 매년 실무자가 돌아가면서 회계를 맡았다. 내가 신입으로 들어가 막 일을 배울 때 회계 담당자는 이화여대 대학원을 나왔던 이였다. 보조금 사업과 위탁업무는 각 사업 담당자가 하지만 그는 사무국 회계를 해야 했다. 회계 업무가 잘 맞지 않았는지 힘들어했다. 자신이 왜 전공과 아무런 상관없는 회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음 연도는 내 차례였다. 이미 신입 때 보조금 사업과 위탁업무 회계에서 몇 번이나 고생을 했던 터라 사무국에 회계 직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은 금세 휙 찾아내는 숫자 오류를 나는 찾지 못했다. 며칠 동안 서류를 다시 보고 또 보다 두 손 두발 다 든 다음,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동료직원 밖에 없었다. 당장 보조금 회계를 마무리해서 제출해야 하는데, 오류가 나서는 안되니까, 모두들 거들어서 1년 사업을 한 번에 정리했다. 황당했다.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던데.... 안경도 안 쓴 저들은 왜 그렇게 잘 찾아내는지... 기획 업무는 잘했지만, 회계는 빵점인 이런 나는 사무국 회계 업무를 비켜갈 수 있었다. 사무국에 회계담당자가 채용된 것이다.
나처럼 숫자에 밝지 못한 마을활동가를 위해 중간조직기관은 왜 회계 업무자를 두지 않을까 의아하다. 사실 작은 회사는 회계사무 업무를 위탁하지 않는가. 월 일정 비용만 내면 모든 처리를 해주는데 말이다. 각 마을을 한 달에 한 번씩 돌면서 영수증을 모아 회계 기록을 하고, 세금 신고를 하면 되는데.... 까다로운 회계 업무 간소화는 이제 기대도 안 하니까, 회계 담당자를 파견해주면 좋겠다.
직업으로 삼은 마을활동과 봉사로 하는 활동은 다르다. 돈을 벌지도 않는데 봉사로 하는 마을활동 때문에 곤혹한 일을 맡기도 한다. 내 일 하다가 망가진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이 저지른 실수를 활동가라는 이유로 내가 책임져야 한다. 아무리 보람을 느끼더라도 치명적인 갈등을 맞게 되면, 그만 둘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봉사로 하는 마을활동이다.
나도 활동 1~3년 차까지는 정말 열정 페이 자체였다. ‘올인’ 한지 한참을 지나서야 결국 정직하게 인정하고 말았다. 앞으로의 10년도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어찌 보면 지난 10년은 마을활동가로 마을 현장에서 끝까지 버틴 셈이었다. 하지만 마을공동체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뭔 소명의식이 그렇게 강했는지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