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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Aug 17. 2023

네 시간의 여행

저녁 먹고 산책 겸 도서관에 갔다. 땀을 흘리며 서가에 앉았다. 화장실 한 번 다녀오고 꼼짝 않고 읽었다. 채 4시간도 되지 않는 그 사이 어딘가 다른 세계를 다녀온 듯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선생의 대표작을 이제야 읽었다. 문체가 좋아서 금방 빠져들었다. 묘사가 뛰어났다. 일제강점기부터 6.25 피난까지의 가족 이야기인데 양반과 상놈, 친일과 항일, 창씨 개명, 빨갱이와 반공, 한문과 언문 등 시대를 대표하는 대조적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의 서사가 흥미로웠다. 학창 시절의 독서가 이렇게 밑거름이 되는구나. 일요일마다 도서관에 드나들며 책에 빠져 살 수 있었다니 역시 교육이 중요하고, 친구가 중요하다. 박노갑 선생에게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 엄마의 못 말리는 교육열이다. 엄마를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 꼭 최근에 읽은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 묘사처럼 맛깔났다. 

책 잘 안 읽는 남편도 알고 있는 소설가 한말숙을 모르다니. 나도 참 할 말이 없다. 어쨌거나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읽자. 즐겁게 읽고 감명 깊게 읽고 깨우치다 보면 언젠가 눈이 떠지겠지.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눈이.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먼 곳을 여행하고 온 듯했다. 아직도 여독이 덜 풀렸나 보다. <엄마의 말뚝>을 읽기 전에 몇 자라도 적어두려고 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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