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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Sep 07. 2023

딜레마


중독은 피하려고 했는데 중독된 것 같다. 일주일만이라도 끊어보려고 했더니 이틀도 가지 못했다. 금단 증상인가. 없으면 허전한 게 뭔가 빠진 듯하다고 몸이 말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산책하러 나가 혹시라도 일찍 문을 연 카페가 있나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아직 8시 전이라 베이커리 외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시장이 아니어서 그럴까? 영업을 준비하는 거리가 활기차 보이지는 않았다. 시장에 가면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삶의 의욕을 북돋워 준다고 했는데, 이제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신도시에는 들썩들썩한 재래시장이 없다. 누군가는 일주일에 한 번 서는 아파트 장이 마을의 품격을 떨어뜨린다고까지 했다. 대형상점에 가면 해결 될 것을 몇 푼이나 번다고 비릿한 냄새 풍기는 장터를 유치하냐는 것이었다. 아파트 잡비라도 벌어서 주민들 부담을 줄이기보다는 산뜻한 게 좋다는 것이다. 비릿한 사람들 냄새가 싫고 깔끔하게 엔 분의 일 하는 세대라 그런 것인지 사람들이 오고 가며 얼굴 보고, 흥정 흉내라도 내어보며 덤을 받고, 포장마차에 줄을 서서 뭔가를 먹는 재미 같은 건 고려할 바가 아니었다. 이 깔끔한 신도시에서 헛헛한 마음을 채울 건 허공 속에서 울리는 상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진한 커피 한 잔이건만 그 어디에서도 구수한 커피 볶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집에 돌아왔더니 남편이 물을 끓여달라고 했다. 그 역시 부스터가 필요했는지 커피 믹스라도 마시겠단다. 9시가 넘었으니 이제 카페가 문을 열었을 시간, 다시 동네 카페에 갔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잠시, 책 한 권을 들고 와 카페에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왔는데 문득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오른다. 이런 장소가 우리 집에 있으면 더 좋을 텐데…. 언제까지 커피만을 의존할 수는 없다. 내 삶의 부스터, 무엇이 되어야 할까. 가만 생각해본다. 어려운 독서, 빡빡한 글쓰기? 왜 나는 힘든 걸 좋아할까.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에도 학점 따기 어렵다고 소문난 교수 수업을 즐겨 수강했다. 뭘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기보다는 그 어렵다는 수업을 버텨내며 뭔가 성취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던 것 같다. 힘든 과제에 징징대면서도 마침내 해냈다는 쓰릴, 좋은 결과를 얻어냈을 때의 성취감 말이다. 동네 수업에서는 그런 성취감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수업이 기초, 입문자를 위한 과정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대상을 위한 수강생 모집을 위한 기초과정. 글쓰기도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다. 이제 동네 입문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듣는 것도 슬슬 지겨워진다. 아무런 도전을 끌어내지 못한다. 어떤 등단 작가들은 그런 동네 입문 수업에 숨어들어서까지 글을 쓴다는데, 그것이라도 있어야 글을 쓰게 된다는 데, 아직 등단도 하지 못한 나는 웬 푸념이란 말인가. 결국 답은 나 자신과의 싸움만이 남았다는 것일까. 임계점을 지나야 부글부글 끓어오는 물처럼 무엇으로 나를 뜨겁게 할 수 있을까. 한계를 돌파해 좀 더 높은 수준으로 가기 위한 길에서 오늘도 나는 딜레마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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