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던 날 임신 중이었던 나는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고 하혈을 했다. 뱃속부터 탯줄을 꼬더니 태어날 때까지 쭉 탯줄을 꼬아서 별난 애가 태어난 거라고 사람들이 한소리를 했다. 엄마만은 달랐다. 손주에게는 사랑만 주는 할머니다. 내가 자라며 들 어보지 못한 의욕적인 말을 쏟아낸다. 그래서 그런지 모 내기나 가을철 고구마를 캘 때 구경 삼아 시골에 가는 걸 아들은 신나라 한다. 큰오빠와 동생은 언제나 반갑게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따로 준비한다. 엄마는 엄마대로
“우리 손주 좋아하니께. 내가 장 봤다. 오늘 상다리 부러지게 차렸으니께 잘 먹어.”
하면서 연신 손주 등을 토닥인다. 그 덕분에 아들은 공부를 했다. 매일 저녁이면 아빠와 책상에 나란히 앉아 열심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공부하고 중학교 첫 학기 시험을 치렀다. 그 정도로 매일 열심히 공부했으면 아무 리 못해도 평균 80점은 넘을 텐데 80점 넘은 과목은 딱 한 과목뿐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이에게
“너무 기죽지 말어잉. 니는 차근차근하면 돼. 노력하면 다 된다이. 이제 시작혀서 아직 기초 쌓는디 시간이 좀 걸리는 거이구망. 걱정 말고 최선을 다하믄 된대이. 니 엄마도 첨엔 못 혔는디 중학교 때 좀 더 잘하고 고등 학교 때 더 잘하고, 대학교 때 엄청 잘해서 일등 해버렸으니께. 니도 계속 발전하고 잘할 것이여. 니는 내 머리 타겨서 엄청 잘할 것인게 아무 걱정 말고 열심히 노력 혀. 노력만 하믄 된다이.”
그러더니 어느 날 내게 통장을 확인하라 그랬다.
“우리 손주 잘 가르치거라. 눈이 얼마나 똘망똘망한 데. 갸 눈을 한 번 봐라. 반짝반짝한다. 내가 학원비 보태 라고 돈 부쳤으니께 니가 잘 가르쳐. 우리 집 복덩이여.”
외할머니의 응원으로 아들은 오늘도 열심히 공부 맛을 보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대부분 80점을 넘었다.
“엄마, 고마워.”
현자 엄마에게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지 몰랐다. 현자엄마는 가슴 골절과 요추, 쇄골 상태 확인을 위해 검사하러 가고 없었다. 현자 엄마의 핸드폰에 음성 녹음을 남기고 간병인에게 부탁했다.
“엄마가 검사하고 오시면 제 음성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어요? 스마트폰 다룰 줄을 몰라서요.”
사랑하는 현자 엄마,
엄마를 떠나보낼 때 하는 말, “엄마 딸이어서 행복했어.”
암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장영희 선생님이 당신 엄 마에게 남긴 말이었고 유명했던 선생님의 그 말을 사람들이 따라 했어. 나도 따라쟁이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좋아한 선생님이었으니까. 날 가르친 선생님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말은 못 해도 적어도 미워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엄마 떠나도 두고두고 남는 건 안 좋은 생각만 아니길 바랐어.
내 맘을 모르는 엄마는 아빠랑 싸운 이야기를, 엄마 힘든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했어. 그놈의 돈, 너무 싫었어. 돈 때문에 그렇게 싸우더니 아직도 여태 돈, 돈. 엄마가 쓰지도 못하는 그놈의 돈이 너무 미웠어. 돈 좀 쓰고 센터 가서 밥 먹고, 낮잠 자고, 수다 떨고 오면 좋잖아. 왜 센터 가는 돈, 계산하는 거야? 자식들이 다 낸다는데. 돈 좀 쓰고 사람 불러 집안일 좀 도와달라 하면 되는데, 허리 아프다, 무릎 아프다 하면서 엉덩이로 방바닥을 밀고 다니면서 사는 거 힘들다 했어? 그게 자식들 속상하게 하는 거야.
엄마, 미워! 엄마가 언제 떠날지 몰라 엄마 소원 들어주고 싶은데, 엄마 하고 싶다던 공부, 지금도 안 늦었는 데, 지금도 할 수 있는데 엄마, 왜 그러는 거야? 일을 안 해야 복지관이라도 갈 시간이 있지. 덜 아파야 혼자라도 버스 타고 갈 수 있지. 돈을 써야 배울 수 있지. 안 싸워야 아빠랑 손잡고라도 갈 수 있지. 남들은 나 치매일지 몰라, 그러면서 날마다 생각 지키려고 하는데 엄마는 나, 치매 아니야, 그러면서 생각을 자꾸 까먹잖아. 요실금도 점점 심해지고, 없던 변실금도 생기고, 뇌가 망가지고 있다는 건데, 빨리 받아들이고 엄마 생각을 지키면 얼마나 좋아? 엄마를 지키고 싶어. 엄마를 두고두고 미워하고 싶지 않아. 나도 엄마를 좋게 기억하고 싶어. “엄마 딸이어서 좋았어.” 그렇게 말할 기회를 만들고 싶어. 이제 조금 있으면 종이 칠지 몰라. 마지막 교시가 끝나고 집으로 갈 시간 말이야. 엄마, 아직 늦지 않았잖아. 지금 배우면 돼. 지금 좋은 걸 같이 하면 돼. 현자 엄마, 생각을 지켜줘. 내 생각을 지켜줘. 이제 다시 퇴원해 집으로 가면 엄마 하고 싶었던 거 다 하면서 살아. 그게 지혜로운 현자를 찾아가는 길이야. 현자 엄마, 우리 지혜로운 사람, 현자 엄마. 사랑해.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모처럼 꿀잠을 잤다. 무음으로 해둔 핸드폰에 음성 메시지가 뜬 줄도 모른 채.
딸아, 돈, 돈 한 건 돈이 있어야 자식들 가르칠 수 있어서 그랑겨. 돈이 없어 내가 배우지 못했으니까. 한 푼이라도 아껴야 니도 가르치고, 니 동생도 가르치고. 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못 배웠으니께. 큰 언니는 배웠지만 나는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께. 초등학교도 못 뎅기고, 논밭으로 일하러 당겼어. 손가락 마디 마디가 다 갈라지고 남자 손이 되도록 일만 했으니께. 그렇게 집안 살림에 보탬이 돼 내 동상은 고등학교까지 배웠어. 시집와서도 살림 모으는 것만 최고인 줄 알았으니께. 좋은 옷 입지도 않고 화장품도 안 바르고 먹지도 놀지도 않고 돈을 모았어. 그렇게 니들 다 가르칠 수 있어 좋았어잉. 나는 바보같이 살았어도 니들은 잘 사는 게 내 소원이니께.
딸아, 미안허다. 하지만 내가 치매일까, 내가 진짜 치매일까. 그럼 나는 땅이 꺼진다. 니들 힘들게 하는 망령난 노망난 어미일까 싶어 하루라도 빨리 저 세상 가야지 하는 마음이 되니께. 그래서 나는 나 치매 아니라고 생각헌다.
딸아, 미안허다. 그거 우리 싸우는 거 아녀. 우리가 맨날 큰 소리 내는 건 그냥 말하는 거여. 우린 못 배워서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 된 거여. 젊었을 땐 못마땅혀서 고함 질렀지만 나이 들어 고함지르는 건 귀 가 잘 안 들려서 그런 거여. 딸아, 고함 질러 미안허다. 허지만, 우린 고함 질러야 잘 들려. 내가 밥 먹으라고 말하면 니 아버지 못 들어. 문 열고 말해도 잘 못 듣는디. 그리서 내가 고함지르는 거여. 마당이 넓고, 마당에서 일하니께 집안에서 부를라면 나는 고함질러야 혀. 그리야 니 아버지, 내 소리 들어. 딸아, 미안허다. 그게 큰 소리로 습관이 돼서 참 미안허다.
딸아, 니 말이 맞다. 내가 이제 일 안 헐란다. 병원서 나가믄 니 아빠랑 같이 복지관 가서 오천 원 내고 둘이 밥 먹고 스마트폰 배울꺼여. 영어 몰라서 유튜븐가 뭔가 듣고 싶은데 어떻게 히야 나오는지 몰라 못 듣는디 나도 가서 배울라고. 딸아, 니 말 마시로 이제 돈 안 아끼고. 나한테는 너무 힘지만, 니 말대로 그간 모아 놓은 돈 쓸겨. 주간보호센터 안 빠지고 잘 갈께이.
딸아, 우리 마지막에 잘 헤어지자이. 니들 힘들게 안 할 것이여. 나 죽어도 너 좋은 기억나게, 나랑 행복한 시간 보낸 거 너 기억나게 내가 힘 보탤께. 시간 내서 나 보러 와. 이제 돈 아깝다고 안 허께. 나도 시간 내서 너 보러 갈 것이여. 손주도 보고, 아들도 보고,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 같이 밥 먹고 구경 다니고 돈 쓰고 놀아야쓰것어. 니들 행복헌 시간 내가 만들어 줄 것이여. 딸아, 니가 내 딸이어서 좋다. 나는 행복힜어. 너도 나처럼 잘 살어이. 이 한 세상 끝까지 살아보니 마지막에 참 좋다. 잘 기억혀라. 나는 행복하게 잘 살고 간다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