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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Oct 22. 2023

김현자 여사 약전

약전이란 어떤 사람의 생애와 업적 따위를 간략하게  적은 기록이다.  

엄마와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며, 때로 형제들과 사실  여부를 확인하며 김현자 여사의 약전을 정리했다. 어떤  형제는 무심하여 답변이 없었고 어떤 형제는 추정한 연 도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여 수정해 주었다. 너른 들판에  붉게 물들어가는 황혼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저 산 너머로 져가지만 이렇게 희로애락의 삶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  


김현자 여사 약전


1943년 전북 정읍군 이평면 창동리 신송부락의 가난 한 집 김형윤(아버지)과 김천두(어머니) 사이 1남 4녀 중 넷째 딸로 태어났다. 아들을 바랐던 부모는 현자를  차남이라고 불렀다. 큰 언니 달영(13세), 둘째 언니 필현 (10세, 필례), 셋째 언니 귀녀(6세, 오니)가 있었다. 

1950년(7세) 남동생 김만철이 태어났다.  

1955년(12세) 이평초등학교에 가서 2학년 과정을 배웠다. ㄱ, ㄴ부터 배웠다.  

1956년(13세) 월반하여 4학년 과정을 배웠다. 아버지가  55세로 숨을 거두었다. 학교를 중단하고 농사를 지었다.  

1958년(16세)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집안 살림을 위해  밭일과 논일을 도맡았다. 

1964년(22세) 부안군 백산면 거룡리로 이사했다. 

1966년(24세) 한 살 많은 박대자와 혼인하였다. 논이 16마지기가 있었고 단 형제, 시어머니 한 분이라고 중매가 들어왔다. 정읍군 영원면 앵성리 수성부락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1967년(25세) 큰아들 영환이 태어났다.  

1970년(28세) 둘째 아들 정환이 태어났다.

1973년(31세) 딸 영숙이가 태어났다. 시아제 박주상이  결혼하여 분가했다. 

1974년(32세) 큰아들 영환이(7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영환이가 도수로에 빠졌으나 살았다. 영환이와 정 환이(4살)를 친정에 보내었다. 정환이는 연말에 집으로 돌아왔다.  

1976년(34세) 셋째 아들 재영이 태어났다. 

1977년(35세) 큰아들 영환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1979년(37세) 딸 영숙이를 친정에 보내어 대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1980년(38세) 딸 영숙이가 집에 돌아왔다. 

1982년(40세) 딸 영숙이가 도수로에 빠졌으나 살았다.  

1984년(42세) 재영이가 도수로에 빠졌으나 살았다. 작은 집 사촌 준환이가 구해주었다.  

1985년(43세) 큰아들 영환이 대학에 입학했다. 전주에  방을 얻어 시어머니가 손주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1988년(46세) 둘째 아들 정환이 대학에 입학했다. 

1990년(48세) 딸 영숙이가 대학에 입학했다. 

1993년(51세) 막내아들 재영이 대학에 입학했다. 큰아 들 영환이 대학을 졸업했다. 가깝게 지냈던 큰 언니 김 달영이 63세로 숨을 거두었다. 

1995년(53세) 시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와 같이 살게 되었다.  

1996년(54세) 막내아들 재영이 카투사에 입대했다. 부엌을 개량했다.  

1999년(57세) 막내아들 재영이 군 복무 중 ‘올해의 카투사’으로 뽑혔다. 포상휴가와 포상금으로 제주도를 여행했다.  

2000년(58세) 컴퓨터를 배워 정보통신부 주관 홈페이 지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고, 중앙일보에 [박대자 씨부부] 가족 기사가 실렸다. 

2003년(61세) 갑계로 태국, 홍콩, 방콕, 말레이시아를  여행했다. 막내아들 재영이 결혼하여 첫 며느리 조혜진을 보았다. 

2004년(62세) 평생 사랑해 준 시어머니 봉선녀가 96세로 숨을 거두었다. 사위 박현규를 보았다. 막내아들 재 영 내외와 고창 읍성을 여행했다. 영숙이 독려로 인생  회고록을 썼다.  

2005년(63세) 뇌출혈로 쓰러져 전북대학병원에서 뇌 수술을 했다. 둘째 아들 정환이 휴직하고 간병을 했다.  정환이가 결혼하여 둘째 며느리 이소영을 보았다. 큰손자 건율이가, 큰 손녀 예인이가 태어났다.  

2006년(64세) 손자 지훈이가 태어났다. 남편이 경운기 사고를 당하였으나 살았다.  

2008년(66세) 손자 윤재와 정이가 태어났다.  

2010년(68세) 온 가족이 안면도로 여행을 갔다.  

2011년(69세) 곤지암 리조트에서 생일잔치를 했다. 이천을 여행했다.

2012년(70세) 생일 기념으로 전주 한옥마을을 여행했다. 

2014년(72세) 손녀 시온이가 태어났다. 

2016년(74세) 온 가족이 생일 기념으로 여수, 순천을  여행했다. 

2018년(76세) 온 가족이 남편 생일 때 서천 국립생태원, 장항을 여행했다.

2019년(77세) 생일을 수원 둘째 정환이 집에서 치렀다. 장어구이집에 갔다.  

2020년(78세) 대전 막내 재영이 집에서 설 명절로 온 가족이 모인 후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 못했다.  

2021년(79세) 광덕리 사는 셋째 언니 아들 형신이 임대 차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2022년(80세) 치매 진단을 받고 주간보호센터에 다녔다.  

2023년(만 79세) 4월 치매안심센터에서 내장산 나들이를 갔다. 딸 영숙이가 보호자로 동행했다. 5월 자전거 사 고가 났다.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6월 병원에서 인생을 회고하며 글을 정리했다. 7월 집으로 돌아왔다. 


“저승사자가 이번에도 날 잡아 갈랬더니 못 데려갔다.  하도 억세서. 내 걱정은 말그라.”  

김현자 여사는 나란히 썩은 앞 이빨 세 개가 다 드러나 도록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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