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배운 것을 모두 잊고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한 번 믿고 따라와 보라는 말이 어쩐지 카리스마 있다.
단편소설 오리배(이유리, 좋은 곳에서 만나요)를 읽고 이야기를 세 문장으로 줄여보았다.
처음.
오래전 지박령이 된 나는 오리배 선착장에서 엄마와 이복동생 희재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회상에 젖는다.
중간.
자살한 내연녀와 딸 희재에 대해 엄마에게 자백한 아버지는 희재를 돌봐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고 희재는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았다.
끝.
아버지 납골당에 가다 교통사고로 죽은 나는, 마침내 오리배를 타러 온 둘을 만나 마지막으로 행복한 한때를 보낸 다음, 좋은 곳으로 간다.
글의 소재는 무엇인가. 자살유가족의 용서와 화해, 불륜과 책임, 가족의 의미, 사후세계, 힐링 장소와 자연의 위로, 사고사와 자살, 삶과 죽음의 경계, 남겨진 가족을 위한 위로이다.
글을 읽으며 가장 많이 눈에 띈 말은 오리배다. 아빠도 엄마도 열심히 페달을 밟았던 오리배. 온 가족이 즐겁게 나들이를 갔고, 아빠와 엄마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 희재와도 함께 갔던 곳. 그래서 지박령이 된 지영은 엄마와 희재가 좋은 날을 맞아 오리배를 타러 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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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내성적. 자살. 정리해고. 칩거. 종일 TV 시청, 비겁한 행동. 불륜, 유서, 친구를 시켜 거짓말, 자백 후 자살, 사내 소문.
어머니 : 외향적. 외판원. 남편 자살 후 희재를 가족으로 받아들임. 꿋꿋하게 살아가는 억척 이미지, 지영 죽음 후 노쇠해짐.
나 : 시크. 사고사. 택시. 납골당. 빗길.
희재 : 대담. 다이어리 노트. 멀미, 검정 봉지. 반지를 끼고 오리배 선착장에 나타남. 오리배를 타고 엄마와 사진을 찍음.
내연녀 : 자살. 차. 저수지. 딸을 혼자 키움. 생활고.
한강 둔치 강물 위 오리배는 가장 큰 소재이고 좋은 것을 상징한다. 가족이 좋은 날 오는 곳이었고 가족 간에 갈등이 힘든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아빠와 엄마의 인연을 이어준 곳이자 죽은 지영이 엄마와 희재를 다시 만나는 곳, 아버지 죽음 후 엄마와 지영이 왔던 곳, 희재가 가족이 된 후 함께 왔던 곳, 자신이 죽은 후 세월이 흐른 다음 엄마와 희재가 찾은 곳으로서 힐링 장소였다. 햇빛이 부서지는 강물의 물결처럼, 시간 속에 서서히 인간대소사는 잊힌다. 페달을 힘차게 밟아야 움직이기도 하지만, 가만히 강물에 맡겨도 되는 오리배다.
나의 오리배는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