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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만나는 '나', 새롭게 친해질 '그림책'

by 조이스랑

지금 난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습니다. 오늘 처음 만나는데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쑥스럽다네요. 흠.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이름 대신 ‘형용사’와 ‘숫자’로 말문을 틉니다. 의미 있는 숫자란 통장비밀 아닌가요? 하는 말에 다들 웃었어요. 잠깐 내 통장비밀번호가 뭐였더라. 생일도 전화번호도 결혼기념일도 아닌데.... 잠시 딴생각하다 첫 번째 그녀, 별명도 듣지 못했네요. 그녀가 뽑은 형용사나 숫자 같은 거 들었지만 듣지 않은 것과 같아졌어요. 같은 공간에 있어도 듣지 않으면 모르는 거죠. 앞으로도 쭉 모를 거고요. 듣는 척하며 딴짓해서 전혀 듣지 않는 게 아니에요. 제 나이가 그래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집중하려고 애써야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답니다. 귀는 윙윙거리고 정신이 쉬이 딴 데로 가버리죠. 굳게 맘 먹고 노트북을 켭니다. 새로운 사람들 속으로 아자 아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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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씨.

어떤 마음으로 왔든 집으로 돌아갈 땐 발걸음이 가벼워졌으면 좋겠어요. 오전 10시에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업주부인데 뭔가 변화와 탈출구를 원하는 이들이 많아요. 도서관 모임이 많이 도움이 돼요. 집에만 있으면 다운되고 어두워지니까요. 저는 가벼워지려고 옵니다.

제게 의미 있는 숫자는 0303. 생일이고요. 부모가 준 숫자예요. 결혼으로 인한 변화가 엄청 크니까 0413 결혼기념일도 의미 있네요.


고마운 씨

튀지 않으면서 나만의 색을 갖고 싶어요. 파스텔처럼요. 자기 맘대로 달라질 수 있는 구름이 부러워요. 바다 같은 사랑을 꿈꾸면서 예전엔 큰 바다를 봤는데 지금은 구름을 봐요. 물, 바다, 공기, 하늘처럼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게 의미 있는 숫자는 7입니다. 제 이름 속에 7이 있어서 항상 따라다녀요.

2034. 10년 후 오십이 되거든요. 40세 되면서 10년 후가 더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이 도서관 모임에 왔습니다.


상냥한 씨.

상냥하고픈 까치로 살았는데. 인사이드 아웃을 읽고 까칠함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맘먹었어요. 까칠해도 상냥하게 봐주세요. 5735. 핸드폰입니다. 길을 걸으면 간판을 봐요. 홀수를 좋아해 곱하기를 하죠. 차량번호 보면서 숫자놀이를 즐깁니다.


꺾은 씨.

배우는 건 끝이 없어요. 배울수록 부족한 저를 보거든요. 예전엔 혼자서 하는 일이 좋았어요. 여럿이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게 편했거든요. 아이 키우며 전업주부가 되면서,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발전하기 힘들더라고요. 낯선 사람인데 우연히 스치는 사람이 영감이나 방향성을 탁탁 쳐줄 때가 많았어요. 지금은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이 사람이 내게 어떤 영감을 줄까 생각하게 돼요. 하루 한 가지 질문을 즐겨요. 1년 365개의 새로운 걸. 10년 후 3650개.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의미 있는 숫자는 2019에요.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나는 뭐지? 누구의 엄마, 아내 말고 나는 누구지? 그 질문이 가슴을 탁 쳤던 거죠.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매일 질문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해였어요. 질문하는 삶을 시작하며 도서관도 오게 됐어요.


기막힌 씨.

내게 남아있는 시간을 후회 없이 기막히게 쓰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을 자주 헤아려요. 해가 지듯 머리가 흰, 연식이 오래된 사람입니다. 2010. 2019. 삶의 모든 걸 바꿔 준 숫자예요. 그때 아팠거든요.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을 맞았어요. 모든 게 바뀐, 크게 다가온 숫자예요. 앞으로 살아갈 날도 큰 숫자이죠. 2019. 남편이 퇴직한 해입니다. 남편도 지금 어딘가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어떤 학습센터에서는 우리 부부를 만날 수도 있을 거예요. 퇴직할 땐 걱정이 많았는데 같이 책 읽고 공부하면서 끝까지 함께 할 사람이라 지금은 든든합니다.


그리운 씨.

작년에 참여한 도서관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 다시 왔어요. 자기소개가 가장 힘들어요. 저는 지금 멍한데 다들 쾌활하게 풀어내는 데 듣고 있으니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지금 전 그리운 이를 추억하며 살고 있어요. 숫자 1요. 퇴직 후 1년 동안 나를 알아나가는 시간이었고요. 올해 2년 차 되었는데 작년과 또 다르네요. 좀 이상해지나 싶게 모든 게 새롭네요. 이 그림이 그 그림이었나. 아 그랬었나.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새롭게 모든 걸 매일 시작할 수 있어요.


환상적인 씨.

최근에 처한 상황과 연결하면 너무 반대예요. 앞으로 희망적으로 살아야겠죠?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되었어요. 너무 멀리 왔고 정신없이 이사 와서 모든 게 낯설어요. 아이도 새 학교에 입학해서 잘 적응할까 걱정했는데 씩씩하더라고요. 아이를 보며 나도 빨리 적응해야지, 하면서 수업에 왔어요. 도서관에선 안정감이 생겨요. 예전에도 도서관 모임에 참여했는데 그때 마음이 참 편안했었어요. 2015. 이사한 날이고요. 환상적인 삶을 기대합니다.


건강한 씨.

50세가 넘어도 뛰어다니는 런닝맨이 꿈이에요. 88. 팔팔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고 싶고요. 9. 완전한 십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9가 필요해요.


어려운 씨

지금 내 마음이 이래요. 어른이 될수록 하늘 보기가 힘들어요. 하늘을 계속 보면서 별을 찾는데, 두 딸들에게서 별을 찾아요. 4. 죽을 사라며 사람들이 미워하는 게 마음 아파 나라도 좋아해야지, 해서 좋아하는 숫자예요. 1225.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남편을 만난 첫날 반했어요.


너그러운 씨

일 벌이길 좋아해요. 뒷수습, 마무리를 못한답니다. 덜렁거리며 정신없지만 너그럽습니다. 결혼 날짜 0327. 친구와 술을 너무 좋아해 친구독 술독이었는데 신랑 만나 바뀌었습니다. 이제 책독 될지도 몰라요.


강한 씨.

목표 없이 살았는데 올해 버킷리스트가 생겼어요. 강해야 해낼 수 있는 목표예요. 의미 있는 숫자는 100과 20입니다. 서양문학 100권 한국문학 100권 그리고 20편 쓰기. 일주일에 두 권씩 읽고 한 달 한 편 쓰기. 대부분 10편 이전에 포기한대요. 둔감하면 5년 걸리고 보통이면 2년 걸리지만, 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대부분 중간에 다 포기한다네요. 제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요. 해보니까 읽기도 어렵고 쓰는 건 더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눈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가보고 싶어요. 가장 아름답게 지는 일몰이 되고 싶거든요. 도서관이 제 아지트예요.


화성시 왕배푸른숲도서관 그림책으로 만나는 사람들, 2025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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