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 김치 담그기
고추장, 자잘한 상춧잎과 아직 다 크지 않은 마늘쫑, 잘 다듬어진 쪽파 두 뭉치, 약 뿌리와 대추가 택배 상자 속에 담겨왔다. 어릴 땐 썩 좋아하지 않았던 마늘쫑이 가끔 생각나 엊그제 엄마에게 마늘쫑 안 나왔냐고 물었었다. "아직은 철이 아녀. 쪽파나 다듬어서 고구마랑 보내줄게. 녹두랑 찹쌀, 약뿌리 보낼 거니까 큰 오빠 불러서 같이 먹어." 엄마는 고구마를 잊으셨는지 고구마 대신 고추장을 두 통이나 보냈다. 택배비를 절약하기 위해 20킬로 한 상자를 가득 채운 야채. 그 속에는 낯선 야채가 한 묶음 있었다. 유채꽃 같기도 하고, 갓 같기도 하고. 구글 검색 대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토종닭 다 두 마리 사서 약뿌리랑 대추 넣고 달여. 큰오빠한테 전화해서 먹고 가라 혀."
녹두와 찹쌀이 택배 상자에 없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다.
"응. 오빠 오면 같이 먹을 게. 근데 야채 보낸 거 갓이야?"
"어, 갓이다 갓. 파김치 담글 때 같이 넣으라고 보냈지."
반찬 만드는 것에 별 취미가 없고 깜박증 때문에 냉장고로 들어가면 야채의 존재는 잊힌다. 어느 날 누렇게 뜬 채소를 만나고 싶지 않아 딸을 불렀다.
-파김치 담그자. 알바해. 레시피 좀 찾아봐.
-얼마 줄 건데?
-만 원.
-개꿀.
나는 조미료를 대충 꺼내고 파 무게를 쟀다.
-1250g이야. 레시피 찾았어? 몇 그램 기준이야?
-1kg야. 참치액젓 8스푼인데, 120ml래. 액젓에 15분간 파를 절이는 게 먼저야.
-그 레시피에 1/4을 더해야 해. 계산 잘해야 해.
전자저울 세팅을 0에 맞추었는데, 액젓 무게를 재며 용기에 붓고 있는 사이 저울 눈금이 사라졌다. 무게를 재는 시간이 길어지면 숫자가 사라지는 전자식 저울이다.
- 저울 눈금 꺼졌어.
- 0이었을 때 빨리 재었어야지. 몇 ml 넣었어? 마지막 숫자 못 봤어?
- 모르는데?
액젓이 담긴 용기를 0으로 세팅했다. 액젓을 덜어내고 난 후 용기 무게는 -78.
"액젓 얼마였어? 78이니까 얼마 더 부으면 돼?"
딸은 대답이 없더니 잠깐 후 말한다.
- 22 넣으면 돼.
-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78이니까 방금 잰 건 78이잖아.
- 그니까 22 넣으면 0 되는 거지.
- 계산을 그리하면 어떻게 해? 78 들어갔으니까 120에서 78 빼고 해야지. 이것도 계산 안 되는 거야?
헉 하면서 표정이 달라진다.
- 그니까 왜 저울로 재냐고. 그냥 8스푼 넣으면 되는 건데.
- 내가 진짜 황당한 거 알지? 빨리 제대로 계산 해봐.
액젓이 담긴 저울을 다시 세팅하면서 계산이 안 되는 딸 때문에 옥신각신 했다. 고춧가루를 저울에 재는데 어째 양이 너무 많은 것 같다.
- g과 ml는 같니? 1ml가 1g였던 것 같은데?
- 근데 이상하다. 고춧가루 한 컵이 200ml인데 저울로 잰 200g 이거 너무 많은데?
고춧가루를 컵에 담아냈더니 두 컵 분량이다.
- 하마터면 고춧가루만 두 배 들어갈 뻔했네. 진짜 매울 뻔했어.
- 이상하다. g과 ml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닌가 봐.
갑자기 과학시간으로 돌아간다. 밀도 차이때문인가?
- 검색해 볼까?
- 귀찮아. 그냥 해. 엄마가 양파를 갈아야 하는 데 안 갈아서 그렇다니까.
- 안 갈고 그냥 넣어도 돼. 믹서기 씻는 거 귀찮아. 니가 양파를 조각조각 만들었잖아. 난 양파 집어 먹고 싶었는데, 그렇게 잘게 잘라버리면 어떻게 먹어?
- 알아서 먹든지. 갈아야 한댔는데 안 갈았으니까 나도 몰라.
- 갈아만든 배 한 캔 넣을까?
갈아만든 배 한 캔을 넣자 고춧가루로 뻑뻑하던 양념이 때깔 좋게 달라진다.
- 양념 색깔은 맛있어 보이네.
- 그래. 괜찮아 보여.
나는 액젓으로 절여진 파에 양념을 붓는다. 양손에 비닐장갑을 꼈는데도 한 손만 움직이는 딸을 보고 말했다.
- 양념 골고루 묻혀야지. 야, 여기 좀 잘해봐. 아래쪽 잎사귀는 양념이 없잖아. 양손을 쓰면 되는데 왜 한 손으로 뒤적거려. 대가리끼리 모아지도록 하는 게 좋단 말이야.
- 엄마, 그냥 나 혼자 하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딸에게 양념장을 넘겼다. 딸은 차곡차곡 파김치를 통에 담는다. 많아 보였던 양념이 다 사라지고 그럴싸한 모양새로 파김치가 뽐을 내고 있다.
엄마 덕분에 딸과 파김치를 담갔다. 맛있어 보인다. 방 안에만 있던 딸과 옥신각신 만 원의 행복이다.
시골에서 택배가 올 때마다 나는 딸을 불렀다. 나도 이런 거 못한단 말야. 나도 이런 거 취미 없단 말야. 담엔 보내지 말라 해. 자식 주는 재미로 산다는 데 어떻게 그래. 용돈이 아쉬웠던 딸은 고구마순을 다듬어 김치를 담갔고, 부추와 생강을 손질했다. 만 원을 주고 생색을 냈다. 야채 다듬는 법을 알려주면서 시골에서 자란 어릴 적 내 얘기를 꺼냈다.
갓김치는 누구랑 담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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