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일깨운 아침
영화 보고 시 쓰고, 그림 보고 시 쓰고, 가수 보고 시 쓰는 시인
그녀의 일상 모든 것이 시가 되었나. 예민한 감수성이 시를 쓰게 하나.
관찰하는 것에서 인상 깊은 걸 자신의 언어로 기워내는 시인을 상상한다.
오늘 읽은 시는 진작 읽었었다. 그땐 몰랐는데, 오늘 상세 배경을 알자
이해가 된다. 시가 쉽게 읽혔다. 시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때와 다르게 쉽게 읽혔다.
시의 배경이 된 영화와 그림, 책이 궁금하다. 르네상스 베살리우스와 같은 초기 해부학자들이 극장에서 영화 보듯 표를 팔아 해부를 관람하게 했다는 걸 알았다. 지난 가을 읽었던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방랑자들>에 등장하는 해부와 플라스티네이션 과정이 떠올랐다. 어떤 문우가 해부학책을 가져와 실감나게 근육과 신경까지 박제한 걸 보여줬다. 지식은 또 다른 지식으로 연결된다. 어쩌면 우리의 지식은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짧은 두 시간 동안 호기심을 일깨운 아침, 흥미진진한 나의 하루였다. 어제와 다른 나의 하루였다.
해부극장 *
한강
한 해골이 비스듬히 비석에 기대어 서서
비석 위에 놓인 다른 해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섬세한
잔뼈들로 이루어진 손
그토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펼쳐진 손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본다
(우리 마주 볼 눈이 없는걸.)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
저녁의 대화 *
한강
죽음은 뒤돌아서 인사한다.
너는 삼켜질 거야.
검고 긴 그림자가 내 목줄기에 새겨진다.
아니,
나는 삼켜지지 않아.
이 운명의 체스판을
오래 끌 거야.
해가 지고 밤이 검고
검어져 다시
푸르러질 때까지
혀를 적실거야
냄새 맡을 거야
겹겹이 밤의 소리를 듣고
겹겹이 밤의 색채를 읽고
당신 귓속에 노래할 거야
나직이, 더없이,
더없이 부드럽게.
그 노래에 취한 당신이
내 무릎에 깃들어
잠들 때까지.
죽음은 뒤돌아서 인사한다.
너는 삼겨질 거야.
검은 그림자는 검푸른 그림자
검푸른
그림자
*<제7의 봉인>에 부쳐
제7의 봉인을 보았다. 세기의 걸작이라는데, 한강은 이 영화를 보고 시까지 썼는데,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이래서 영화 읽는 법도 배워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