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삼키는 기억의 바다에서
나는 듣는 걸 기록한다. 머릿속 울림을 쓴다. 소설을 읽으며, 영화를 보며, 길을 걸으며, 강의를 듣다 기록한다. 오십 대의 기억은 바다처럼 모든 걸 삼킨다. 한번 읽는 것으로 족하지 않고, 두세 번을 반복해야 간신히 희미한 것들만이라도 남지 않을까 싶지만, 이틀 전에 읽은 것도 희미하다. 기록하고 남겨두어야 내 바다 어딘가 헤엄칠 문장만이라도 남겨두어야 오늘을 잘 살아낸 기분이 든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세상의 모든 빛>을 보다가 생각한다. 소설의 끝은 모르지만, 영화의 끝장면은 이제 어디선가 본 듯 친숙하다.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줄 거라고 모두 믿은, 건드리면 안 되는 저주의 다이아몬드, '불꽃의 바다'를 바다에 던진다. 목숨을 걸고 아버지가 지킨 다이아몬드를 결국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바다에 버린다.
나는 기억한다. 그래. 이 장면은 <진주>와 같다. 존 스타인벡의 <진주>의 끝장면과 같다. 원주민 부부가 아이를 잃고 마을로 돌아와 모두가 탐했던 진주를 바다에 던진다. 벼락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었지만 온갖 시련의 원천이 되었다. 더 이상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방화부터 살인까지 서슴치 않게 했던 악의 근원이었던가. 주인공은 커다란 진주를 의연하게 버린다.
두 소설 모두 이야기를 이끌어간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 무언가를 버린다. 다시 찾을 수 없는 심연의 공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진다.
그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도 던진다. 핸드폰을 바다에. 그리고 자신을 바다의 파도에 던진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단서를 바다에 투척하고 이야기는 끝난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창희는 여자친구 현아에게 말한다. 서로 축복해 주면서 헤어지자고. 앙금 없이 좋게 끝내자고. <폭삭 속았어요>에서 금명이는 영범과 좋은 얘기로 끝낸다. 20대를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악다구니를 쓰면서 안 좋게 헤어지는 씬에 익숙해서 기억에 남는다 했더니, 뒤늦게 보는 <나의 해방일지>에서 오버랩이다.
읽을수록, 볼수록, 시간이 더해갈수록 오버랩 위에 다시 오버랩이다. 모든 걸 삼키는 기억의 바다에서 한 조각을 건져 올린다. 고로 나는 기록한다.
커피를 내려 뜨거운 머그컵에 담는다. 육년 전쯤 학교 밖 꿈의 학교를 운영할 때 '비밀의 화원'이라는 프로그램명을 달고, 공부에 뒷전인 아이들과 토요일마다 만났다. 어떤 씨앗을 뿌리고 싶었을까, 나는. 굿즈를 살 여력이 없어 비슷하게 직접 디자인 한 머그컵을 과학으로 바꾸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문장을 쓰고, 그 위에 테이핑을 붙였다. 머그컵이 뜨거워지면 글씨가 보이는 과학컵이었다. 나는 오늘 별 생각없이 하나 남은 머그컵 위에 커피를 부었다. 언제 무슨 의미로 스티커를 붙였는지 기억하지 못한채였다. 무심코 머그잔을 들었다. 뜨거워진 머그컵이 말을 걸고 있었다. "Believe yourself."
컵이 차가워져 사라진 문장. 다시 뜨거운 물을 붓고 다시 선명해지는 글귀를 본다. 너 자신을 믿어라. 기억이 희미해져도 지금은 다시 보고 싶은 문장. 너 자신을 믿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