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재밌고, 의미 있고, 쉽게 읽혀야 합니다.
내 글은 그 세 가지를 모두 비켜갔다고 그는 합평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하지만 김작가의 강의를 함께 들었던 그와 나의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멈칫했다.
나는 김작가의 강의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실질적으로 작가는 어떻게 읽어야 하고, 작가가 되는 사람은 어떤 단계를 거치는가. 다른 현업 작가에게서 듣지 못한 작가의 현실세계, 실재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주의적 소설을 써야지 모더니즘적으로 쓰면 안 됩니다. 한강처럼 쓰면 절대 안 돼요. '붉은 닻', '여수의 사랑' 같은 초기 작품을 읽어보세요. 한강도 초기 작품은 사실주의적입니다. 한강 후기 작품은 난해한 모더니즘이라 읽기 만만치 않습니다. 노벨상때문에 한강 책 엄청 팔렸는데, 한강때문에 소설은 어려운 거구나, 큰 맘 먹고 한 번 읽어보려고 했다가, 소설 읽기를 완전히 포기할까 겁나요. 한강은 천재라 노벨상 받았지만, 여러분, 모더니즘 흉내냈다간 절대 안 뽑힙니다. 꼭 사실주의로 쓰세요.
경제적으로 약간 여유 있고, 시간 있고, 삶의 경험도 많은 사람들이 글을 잘 쓸 것 같은데 오히려 못 써요. 이유는 하나. 절박함이 없죠.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학점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 그런 상황때문에 잘 안 됩니다. 근데, 여러분도 수업료 내고, 사이버대학 강의라도 듣게 되면, 70% 이상 거의 다 작품을 씁니다. 돈이 아까워서, 학점 받으려고, 어쨌든 쓴다니까요. 도서관에서 문학관에서 공짜 강의 듣지 말고 돈 많이 내고 수업 들어보세요.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도서관에서 쓰지 말고, 돈 내고 카페 가서 쓰면 잘 써지고, 사무실 같은 데 한 달 빌려 쓰면 아주 잘 써진다.
그런 예시는 웃음이 나왔지만 현실적이라 콕콕 찔렀다.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 아주 통찰력 있는 일침이라고 생각했다. 강의처럼 작가가 쓴 소설 역시 재치 발랄하고 유쾌했다.
같은 강의를 들었지만, 그와 나는 관점이 완전히 달랐다. 그는 김작가의 강의가 아주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그에게 재미란 무엇일까.
내게 재미란,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이다. 나는 배우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정말 최고의 재미이다.
재미란, 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나는 동네 엄마들이 모이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소재, 연예인 얘기에서는 결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연예인의 신상, 그들의 일상을 듣는 것이 정말 고역이다. 지루하고 답답하고 때로 숨이 막힌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 앞으로도 계속 아무 관계가 없을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에 내 에너지와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
의미. 김작가의 강연은 내게 의미가 있었다. 내가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읽고 쓰면서, 언어 감각을 키울 수 있는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려거든 읽어야 하는 추천 목록을 알려주며 2년간 한국문학과 서양문학 200권을 읽어나가라고 했다. 매주 두 권씩 읽고, 매달 한 편씩 쓰라고 했다.
비법을 말해줘도 하는 사람이 없다고, 웃는 모습이 내게 정말 묘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아무리 말해줘도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보통 사람은 이 년 걸리고, 조금 더 걸리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5년 걸렸어요. 퇴고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내가, 이번에 뽑혔다, 생각하고 일주일 내내 다듬으세요. 그리고 공모전에 제출하세요. 열 편 미만은 읽어줄 것 없는 아주 미진한 작품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계속 읽고 쓰면, 소설이란 이런 거구나. 감이 올 거예요. 계속 읽고 쓰면 전국 그 많은 공모전 중 어딘가에는 뽑힐 겁니다.
그의 말과 웃음이 의미 심장하게 다가왔다. 그렇구나. 하는 사람이 없구나. 힘들다는 거지. 그렇게 할 만큼.
나는 그의 말을 따라 매주 두 권씩 읽고, 매달 한 편씩 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의 강연을 들은 지 7개월 차에 접어든다. 그가 말한 걸 해낼 때도 있지만, 해내지 못할 때가 많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매주 계속 읽고, 쓰는 중이다. 아직 나는 아직 열 편에 이르지 못했다. 완전히 초보라는 걸 알고 있다.
최소한 두 권을 읽고 한 편의 글을 써내지 못할 때 나는 생각한다. 그의 의미심장한 말을.
"제가 이렇게 작가가 되는 비법을 다 말해줘도 따라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의미. 그에겐 김작가의 강연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그는 내게 말했다.
"강의는 이 사람처럼 하면 절대 안 된다, 그걸 배웠다니까요. 강의할 땐 사람을 봐야지, 자기 준비한 슬라이드를 보고 말하면 안 된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글은 쉽게 읽혀야 한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난해 내가 읽었던 작품 중 쉽게 읽혔던 작품이 있었나? 그래. 『스토너』는 아주 쉬웠다. 술술 읽혔다.
그러나,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의미를 찾기 위해 두 번 읽어야 했고, 에니 아르노의 『세월』, 올가의 『방랑자들』,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 보르헤스의 『픽션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를 멈출 때』, 『아노말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도 모두 쉬운 책이 아니었다. 쉽게 읽히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해야 했고, 다시 돌아가 두 번 읽어야 했다.
관심 밖의 영역은 언제나 어렵다. 나는 스포츠가 어렵다. 축구에서 골키퍼 유니폼이 1번이라는 규칙도 몰랐다. 하루키의 스포츠 소설에서 유머 코드를 읽을 수 없다. 미술책도 마찬가지다. 줄리언 반스의 『빨간 망토를 입은 남자』는 오십 쪽도 읽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아무튼』이 어렵지 않다. 이해되지 않아 몇 번 읽었다. 이제 누군가 이 책에 대해 언급하면, 할 말이 많다. 쉽고 어려운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글의 종류도 다양하다. 경수필도 있지만 중수필도 있듯 가벼운 로맨스도 있지만, 심오한 철학적 소설도 있다. 내 글은 가볍지 않다. 비극을 특유의 위트로 꾸며낼 재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재미, 의미, 쉬운 읽기라는 세 가지 기준이 모든 글의 잣대가 될 수는 없다. 내게 의미 있는 글, 내 삶의 맥락에서 필요한 글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읽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