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_이제는 보낸다.

by 진시율

#만남



내가 원해서 세상의 빛을 본 것은 아니였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해서 나오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처음 마주하는 세상은 엄마라는 아빠라는 존재인 것이다. 세상에 엄마가 전부인 줄 하는 엄마가 제일 인줄 하는 어린 시절을 지내는 모든 아이들은 엄마의 말에 엄마의 행동에서 나의 세상이 절망이기도 나의 세상이 행복으로 가득 차기도 한다.


나의 엄마는 내 세상에 우울감으로 채워주었다. 모자람으로 채워주었다. 결핍된 감정들을 많이 채워주었다. 그러나 그게 나의 세상이라 나는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모두가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줄 알았다.


나의 엄마는 나에게 최선을 다 해 주었다. 나이가 먹고 나니 알 수 있었다. 어릴 땐 나의 세상을 결핍으로 채워준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내가 점점 어른이 되어가며 엄마는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나의 세상을 결핍으로 채운게 오해였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엄마는 분명 내 세상을 결핍으로 채워 결핍으로 허우적거리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다만 결핍을 주기위해 최선을 한 것이 아니라, 결핍을 주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좀 더 이해심 깊고 착한 딸이 태어났다면 엄마는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않고 건강이 악화되지 않지 않았을까? 좀 더 똑똑한 딸을 가졌었다면 엄마를 설득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 능력있는 딸을 가졌었다면 허망하게 죽게 두진 않지 않았을까? 나와의 만남이라 엄마가 일찍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하여 나에게 또 결핍을 주고 갔다.


엄마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엄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서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잘못 된 만남이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싸움


기억 속에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매일

매일 싸웠던 기억만이 떠오르는 사이..이게 정말 엄마와

딸의 사이가 맞는 걸까? 누구든 그런 걸까?


결핍을 너무 버거워해서 투정을 부렸지만 결핍으로 인

한 투정이라는 걸 모르던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상처만

을 주고 흉터만 남기고 지냈다. 말 한 마디가 비수로

날아와 파고들고 한 마디 말이 나 온 마음과 몸을 베

어갔다. 나 또한 고르고 골라 제일 아픈 말을 찾아 던

지고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다.


엄마가 죽어갈 그 때 나와의 즐거운 추억을 떠 올렸을

까? 싸운 기억만 떠올라 아쉬움만 가지고 떠난 건 아

닐까? 난 그 또한 또 상처가 된다.


아침에 눈을 마주보고 눈을 감을 때 까지 싸웠다. 왜

그랬을까 지금은 뭐 때문에 싸웠는지 기억도 잘 안난

다. 왜 엄마에게 그렇게까지 반항을 했는지 생각이 나

지 않는데 왜 그랬을까…


이렇게 후회 할 줄 알았었다. 나는 매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훈련하느라 생각에서 죽인다. 그래서 엄마다 죽

어가는 상상을 할때 매번 그 상처들이 후회 였는데.. 진

짜가 되어보니 이건 상처라고만 하기엔 너무 아프다.

싸워도 좋으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혼나도 좋으니

대화하고싶다. 그렇게 삶의 반이상을 딸과 싸우며살다

가 죽은 우리 엄마는 상처가 너무 많은 체 떠나버렸다.

엄마에게 좀 더 즐거운 기억을 남겨줬어야 하는데..






















































#이해


몰랐었다. 엄마의 마음도 어른들의 이야기도 엄마가

나에게 결핍을 줄 수 밖에 없던 환경도 나는 그 어린

나이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이해해보려 했다.


나이가 들어 갈 수록 알게 되었다. 이해하게 되었다. 다

만 버거워서 그랬던 걸 잘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그리

고 처음이니 잘 몰라서 그런거 였다는 것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곁을 떠난 엄마를 이해했었다. 나의 옆에 없던 아빠

의 마음도 이해를 했었다. 동생을 더욱 안쓰러워 하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이해했었다. 그러나 눈을 감았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왜 내가 이 나이에 이해를 해야

하는지.. 나도 아직은 어린아이 인데 왜 이해해야하는지

화가나서 더 눈을 감았다.


날 버린 엄마를 이해했다. 날 죽이려던 아빠도 이해했

다. 날 버겁다고 엄마에게 버린 할머니의 마음도 이해

한다..그래도 나는 왜 그 이해와 달리 그 상황들이 여전

히 상처로 남아 있는걸까.


같이 죽자며 칼을 물던 엄마를 이해했다. 같이 죽자며

가스 통을 켜던 아빠도 이해했다. 나만 없으면 된다던

엄마의 말을 이해했다. 잠든 척 누워있을 때 면 목을

조르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


나는 이제 엄마 아빠 할머니를 이해 한다.

하지만 이제는 대화 할 수 없다..


엄마는 떠났고 할머니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아빠는 이

제 그런 대화 할 여력이 없다..

이제는 그냥 홀로 이해한다.
















































#이별


처음 본 이별은 친 할아버지였다. 너무 어렸었어서 입

관을 보지는 못 했었지만 무너지는 아빠를 보며 이것이

죽음이라는 이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사이 장레식은 다녀봤지만 나의 친인척이 돌아가시

는 일은 없었었다. 그러다 이제는 죽음을 정확하게 과

학적 근거로 인지하는 나이인 나에게 첫 이별이 왔다.

친할머니의 죽음.. 너무나 괴로웠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다가온 외할아버지와의 이별

은 두배의 아픔을 주었다. 입관을 보며 다들 통곡을 하

지만 나는 왠지 내가 울어버릴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

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슬픔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 사이 친 작은 할아버지와 외가 작은 할아버지 등..

이별의 행렬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엄마와의 이별은 예상대로 찾아 왔다. 그래서

였을까? 덤덤하게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입관을

하는 엄마를 보면서도 울지 못했고 화장하는 엄마를 보

면서도 울지 못했다. 나 때문인 듯 한 죄책감 때문에…

그리고 9월 나의 엄마이자 아빠였던 이모할머니가 영

면의 세상으로 떠났다. 마지막 면회 이후 제대로 본 적

없는데 이미 떠나 버렸다. 너무 마르고 나약해진 몸의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며 나는 또 다시 죄책감에 쌓였

다.


아직 두 번의 이별이 더 남았다. 너무나 두렵고 절 써

아프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이니 또 난 받아들인 척 살

아가겠지 지금처럼..


죽음과의 이별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지만 그

저 받아들인 척 이해하는 척 무덤덤한 척 살아가는 것

인 것 같다.
















































#그리움


시간이 지나가면 무뎌질 줄 알았다. 익숙해지고 떠오르

지 않을 줄 알았다. 근데 왜 나는 매일 매일이 그리움

이고 매일매일이 무너지는 마음을 쌓아가는 걸까..


그리움을 느끼며 무너지고 그 마음 다시 쌓고 그 마음

또 무너지고 또 다시 쌓아가는 그런 매일을 보낼 수

밖에 없는 것 일까?


그리움이란 감정은 시간이 지날 수록 진해지고 짙어지

는 것 같다. 하늘아래 살아있을 이에대한 그리움과 달

리 죽음의 이별을 맞이한 그리움은 공허함을 더욱 불러

모으는 것 같다.


보고싶다. 다시 웃고싶다. 함께 떠들고 함께 욕하고 함

께 떠나고싶다. 그립다 함께 했던 시간들과 함께 하지

못 한 일들을..


인간은 후회에 동물인거 같다. 아니 나만이 후회의 멍

청이 인것인가? 보고싶어서 매일 눈물이 난다. 아직 자

라지 못한 마음속의 어린아이가 여전히 엄마를 찾아 울

어 제끼고 있다.


그 아이는 이제 진짜 자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아이

는 이제 진짜 엄마가 없다. 그 아이를 자라게 하기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 아이도 엄마를 그리워만 하며 살아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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