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 가득한 이모할머니께

by 진시율

이렇게 부르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나한테 큰할머니는 그냥 할머니가 아니라, 아빠 같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존댓말을 한다는 것도 어색함만 가득하네요.


어릴 때 나는 부모가 없는 집에서 자랐었지. 엄마도 아빠도 집을 떠나고, 외할머니는 돈을 벌러 나가야 했고, 남동생과 나 말고는 없던 어른의 빈자리를 채운 사람이 바로 큰할머니 당신이었어. 나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 아니, 당연한 거라 믿고 싶었어. 그냥 원래 그런 줄 알았어. 누군가는 나와 동생을 돌봐야 하고, 그 사람이 큰할머니였던 것뿐이고.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었어. 맞아 그때도 알긴 했어... 큰할머니가 우리를 돌보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니란 걸...


외할머니의 큰언니라는 이유로 조카의 손주까지 책임져야 했던 삶. 자식도 없던 사람이 남의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시간. 큰할머니는 힘들지 않았을까?


나이 먹고도 나는 큰할머니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제대로 물어본 적도 없더라고. 힘들었냐고, 괜찮았냐고. 그저 큰할머니가 해주는 것들을 받기만 했지, 그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생각하기 싫어했던 거 같아. 미안해....


그리고 나는... 큰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아이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남아선호사상이 당연하던 세대에서 나는 여자아이였고, 고집도쎄고, 말도 안 듣고, 고분고분하지도 않았던 아이였으니 큰할머니는 나 때문에 힘들었던 적도 분명 있었을 거야. 그렇지?


한 번은 나를 혼내려다가 내 얼굴에 상처를 냈던 날도 있었어. 그날 이후로 큰할머니가 더 미안해했던 것 같아. 나는 이미 잊어버렸는데, 큰할머니 당신은 끝까지 그걸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였을까? 나이 들고나서는 이상하게 큰할머니는 나만을 많이 찾았던 것 같아.


다른 사람들 말은 잘 안 듣다가도 내가 가면 조금은 가라앉고, 내 이름을 부르고, 그리고... 치매가 와서도 할머니는 나를 잊지 않았지..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그 많은 것들을 다 잊어가면서도 나만은 기억하고 있었어...


나는 그게 지그도 너무 무겁게 남아. 왜 나는, 그만큼의 사람이 되어주지 못했을까? 큰할머니는 나를 끝까지 기억했는데, 나는 큰할머니 당신을 외면했던 거 같아.


요양원에 맡기고, 바쁘다는 핑계오,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그렇게 점점 밀어냈어. 사실은... 마주하기가 너무 많이 무서웠어. 점점 사라지는 큰할머니를 보는 것도, 그걸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를 보는 것도.


그래서 도망쳤어.


그리고 마지막까지 나는 도망쳤어.'


큰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이미 늦어버린 뒤에야 도착해서, 차갑게 식어버린 큰할머니를 보면서도 나는 끝내 아무 말도 못했어.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았는데,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어.


그리고...


나는 큰할머니를 무연고자들의 동산에 두고 왔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유골 사이에, 그렇게 두고 돌아왔어.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로,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그게 현실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선택을 했고, 지금도 그 선택이 나를 계속 붙잡고 있어. 큰할머니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그게 최선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도망이었는지. 근데 하나는 알아. 나는 할머니를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도 그렇게 해버렸어. 그래서 미안해. 정말.... 많이 미안해.


나를 키워 중 사람인데, 나를 끝까지 기억해 준 사람인데, 나는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어. 그래도... 그래도 한 가지는 말하고 싶어. 나는 큰할머니를 사랑했어. 표현을 못했을 뿐이고, 도망쳤을 뿐이고, 서툴렀을 뿐이야. 근데 그 마음까지 없었던 건 아니야. 큰할머니


혹시... 혹시 조금이라도 괜찮다면, 나를 너무 나쁜 사람으로만 기억하지는 말아 주세요.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야. 사람을 보는 방법도, 사랑하는 방법도, 그리고... 큰할머니를 잊지 않을 거야.


어디에 계시든, 어떤 모습니든, 나는 계속 할머니를 기억할 거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늦은 책임 같아. 큰할머니 미안해. 그리고...고마웠어... 정말 많이 고마웠어...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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