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그때의 그리움
나의 10대 이전의 그날 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잊고 산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의 삶이 그 시절을 지난 지가 오래되었으니까.
다만 문득 알 수 없는 사건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나이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남는 일이 드물다고 하지만
나에게 그 시절은 가을날의 그림자 같은 온도감으로 기억한다.
사건들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의 10대 이적은 따스함이 없다.
써늘한 기억만이 남아 여전히 나의 마음을 차갑게 만든다.
왜일까, 난 항상 이쁨 받고 관심받던 사람인데 왜 내 마음의
온도는 싸늘함 뿐인 걸까. 왜 내 기억은 따스함이 없는 걸까.
있었겠지? 분명히 있었겠지? 그러나 기억은 없는 이유는 뭘까?
그 시절엔 집안이 부서지도록 싸우던 부모님의 사이만 기억이 난다.
인형놀이 당하던 나의 모습과 어른들 사이의 기대감을
채우지 못하면 질타받던 그 비난들을 받았던 시절
할머니의 파에 꽂힌 선풍기의 날개의 조각과 가출한 엄마의
그런 상황에 다 같이 죽자며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자던 아빠
나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 일은
없었을 거라던 어른들의 이야기.
그렇게 만들어진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져 내 어떤 감정도 표출할 수 없었던 아이
이 모든 기억들이 나를 여전히 괴롭히기도 하는 것 같다.
아니 나의 모든 습관과 나의 모든 사고방식에 무의식은
아직도 그때의 조각들이 남아서 가 커버린 지금도
문득문득 나를 괴롭힌다.
알 수 없는 멍함의 공허함
글을 쓰다가 가끔 밖을 보며 지나다니는 차들을 본다.
그저 멍하게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과 차를 보며
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냥 버릇처럼 머 하게 시선을 둔다.
유리너머 지나가는 가족을 볼 땐 갑자기 따스란 바람이
지나가듯 양 볼의 입꼬리 끝이 나도 모르게 말려 올라간다.
그 미소를 걸고 초점을 맞춰가면 사라지는 그 끝에 난 또 흩어진다.
무엇이 그리운 것인지 그저 공허함을 즐긴다.
그리곤 나름의 규칙이라는 듯 크게 한숨을 쉬고
어릴 적 엄마와 살가운 추억이 있는지 즐거웠던 나날을 찾아본다.
사소한 일이라도 함께 웃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미소를 머금었다가 이제는 잡히지 않는
그 기억들과 함께 미소 또한 날아간다.
멍하게 엄마를 떠올려 본다.
딱히 미움도 사랑도 암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나를 휘감고 있다.
이 기분 또한 무엇일까.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무엇인가?
어딘가에서 오는 건지 모를 공허함과 그 공허함이 고개를 내밀 때마다
나오는 멍함은 아를 멈춰 서게 만든다.
그 멈춰 선 시간에는 생각이 멈춘 것일까.
마음이 멈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간이 부러워하는 것일까.
또 고민해 본다.
10대의 기억은 자주 나를 울려
고즈넉한 시간 때면 나는 멍하니 그때 그 시절이 올라온다.
그 시절의 나는 왜 이리 외로워하며 살았던 건지 아니면
타인에 의해 외로웠던 건지 지금 생각해 보면 헷갈리지만
나는 항상 사람과 있음에도 그 속에서 조차 이해받지 못해 외로웠다.
나의 10대는 죽음을 향한 강구뿐이었다.
삶의 결말을 내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큰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아있고 지금은 그때의 내가 안쓰러워
나를 떠올리면 눈물이 흐르거나 마음이 먹먹해진다.
주위에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다.
나의 주위엔 항상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죽고자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이도 없었고
내가 삶을 힘들어하고 버거워하는 것조차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나는 유별난 사춘기를 겪는 관심종자였을 뿐
그 누구도 나의 마음을 볼 여유는 없어 보였다.
그 어떤 어른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나는 그저 혼날 뿐 답을 듣거나 감정적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인간은 왜 태어났으며 인간은 왜 살아가야 하며
인간이 왜 지구의 최정점에 있는지에 대한
학문적 이야기가 아닌 사상적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여전히 그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 질문을 좀 더 세련되게
그리고 좀 더 재미있게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 10대의 아이가 나에게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자해를 하면 안 되는지
왜 죽으면 안 되는지 물어본다면 그 아이에게 답을 내어 줄 수는 없어도
그 아이와 진지하게 대화를 해주는 어른으로 자라 가고 있다.
그렇다, 나는 나 같은 어른이 필요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그립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하루 일 때.
나는 그 사이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버거운 듯 서 있는다.
이미 남들과는 다른 삶의 발 식을 선택하고 걸어왔던 지난날들이
문득 떠오른 지금이다. 그 방식들이 딱히 불편하거나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힘들었고 돌아왔고 상처가 많이 났을 뿐이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고 마음의 조급함이 고개를 들 때는
그 마음을 꾹꾹 눌러 종이에 적어 태워버리고 구겨버리며 버렸던
그날들에서 비교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어느 날 보기 좋게 이 다짐들이 무너질 때는
홀로 그때의 당당한 내가 그립다.
사실 오늘은 그간의 일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버렸다. 우연이라는 핑계로 그간 모른 척해오던 나의 열등감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나의 마음 어딘가 생겨난
열등감이라는 녀석을 한참 들여다보니 이해가 되었다.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들어 다시 외면하려다가도 그 억울함을 풀고
다시 당당했던 나로 돌아가려 한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시간등, 당당함을 빼앗아간 생각들,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상황 등 그 모든 것을 나는 이제 놓아주고
그때의 나를 그리워만 하지 않고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
_나만 보내주면 될 일
이 이별이 나를 알게 했어.
우리는 헤어졌어. 남 보다 못할 정도로 한 편에는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대와 내가 말이야. 지난 시간 동안 쌓아왔던 애증을 다 털어내지도 못하고 참 허망하게
나를 떠나가 버렸네. 나의 애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갑게 식은 모습만 보이며
나에게 또 상처를 만들어주며 떠났어.
내 손을 잡아주던 그 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월동준비하는 동물마냥 만들어주던 다정함,
더운 여름 더위 먹지 않을지, 추운 겨울 감기 걸리지 않을지 나를 항상 따뜻하게 안아주던 그 품 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아련하고 불러보고 싶은 건지.
그 모든 것이 왜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었는지 그때는 그것도
귀찮아하며 그저 나에게 관심을 꺼주길 바라며 화만 냈던 기억들로
나를 가득 채운다. 함께하던 시간들을 불편해하고 원망의 말들만을 내뱉던 기억들로 나를 괴롭힌다.
이제는 알데 되었는데, 원망도 귀찮음도 애들도 모두 나에게 관심을 더 달라는
그저 어린 마음의 투정이었을 뿐이었음을 너무나 늦게 깨달아버렸다.
친구 같은 사이가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나를 떠나가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같은 계절을 세 번을 겪고 있어.
절대 그런 일은 없을 줄 알았지만 친구처럼 서로 하소연을 하고
위로를 하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조금 빨리 그런 사이가 되었더라면
막상 이런 이별이 왔을 때 나는 조금이나마 추억할 거리가 더 많아졌었을까?
그냥 미친 척하고 거기로 여행을 떠나 볼까?
그날 억지로라도 굳이 내가 나서서 함께였다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우리의 사이는 여전할 수 있었을까,
몇 번이고 되뇌고 되뇌며 스스로에게 자꾸 질문을 하게 된다.
이제는 연락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지.
삶에서 제일 친하고 제일 다정하고 제일 내 편인 친구로 둘 수 있던
사람을 나는 놓치고 말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우연히라도
마주칠 일이 우리는 없을 테니까...
내가 왜 이리 이기적이고 혼란스러워하는지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일도 없겠지.
이 글을 보여 줄 수도 없겠지. 이 글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겠지.
조금 더 빨리 엄마를 이해할 걸,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어 볼 걸,
조금 더 빨리 엄마와 친구가 되어 볼 걸.
그날 조금은 내 멋대로 해볼걸, 그럼 엄마는 친구 같은 사이로
여전히 함께하며 이 글을 읽으며 이야기해 줄 수 있었을 텐데.
16시 46분
잊을 수 없는 시각.
일을 하다가 시계를 볼 때 16시 46분이 보이면
멍하니 잠시 나도 모르게 멈칫한다.
그날의 모습이 눈앞에 아련하게 아른거리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여우비인지 아니면 내 마음인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면서도 하늘은 맑아 비가 오는 게 맞는지도
모를 날씨였던 날, 엄마에게 가던 길 접촉사고도 내버릴 정도로 눈앞이 뿌옇던 그날
하늘은 아마도 나 대신 펑펑 울어주었나 봐.
16시 46분 사망선고를 듣던 그 자리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보다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구멍에서 흐르던 피를 대충 닦은 그렇게 닦여있는
병원 침대보로 대충 가려져 있던 가녀린 그녀의 모습만을
앙상한 모습만을 멍하게 바라보며 옆에 서서 이제는 꺼진 기기들과
제거된 기기들을 보며 고통을 삼키던 그 시각.
지금에서야 이토록 시큰할 것이었다면 그때 그 누구도 상관하지 말고
그 눈들도 생각하지 말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보다 더욱 거세게 울어볼걸.
내 목이 다 쉬어도 좋을 만큼 내 목에서 피가 날 만큼 목놓아 엄마를 불러 볼 걸.
그 시각이 이렇게도 먹먹할 거였 가면 그때 그렇게 외쳐볼걸.
그랬다면 이 시각이 될 때마다 이리 먹먹하지는 않았을까.
그 시각이 될 때마다 코끝이 시큰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울었다면...
이 시각이 되어도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을까.
추억과 아픔, 그리고 그 수많은 무력감을 그 자리에서 엄마와 함께 떠나보낼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멍하니 어느 한 곳을 바라보지는 않았을까.
알 수 없지만 매듭지어지지 않은 마음은 어떨 수 없는 듯하다.
나의 그리움이 떠오르는 순간,
그날 오후 4시 46분 그날의 흔적 앞에 무력해진다.
2023년 7월 온몸에 새겨진 그날의 시각.
나만 알았더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나에게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던 듯하다. 나를 향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던 것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 놓쳐버린 걸까.
그 시절에 대해서 후회만이 남았다.
그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하던 사소함 마저 나에게 관심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오만했다. 떠올리고 깨달은 지금은 이제 영원히 들을 수 없는
말들이 되어버렸다.
나는 많이 초라하고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버린 현실이다.
그 사람에게 나는 언제나 어여쁘고 반짝이는 사랑스럽고 뭐든 1등인
그런 뭔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인 양 만들어 주던
그 말들의 소중함을 이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보내줘야지 하고 미련을 돌아서려고 할 때면
추억 속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을 보내지 못하고 손 끝의 매달린
물방울처럼 아슬하게 매달려있다.
미친 듯 아직도 선명한 그 일들은
숨 막히도록 일렁여서 여전히 놓는 마음은 후회인가 미련인가.
미련이든 후회든,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으며
분명한 건 그 사람의 시계는 이제 멈추었다는 것이다.
사랑도 원망도 슬픔도 미움도
그리고 그리움도 모두 떠나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시간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며 언제든 마음 한 곳에서
휘저어지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또 살아가겠지.
보내준다는 것은 남기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언제든 보낼 수 없을 것 같다.
나만의 욕심일 수 있다.
그때 알았더라면 남들은 다 알았는데
나만 몰랐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