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의 끝 나의 외할아버지께

by 진시율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면 뭔가 거리감이 좀 느껴지는 거 같지 않아?

맨날 나는 할부지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안 부른 지 좀 되었다고 벌써 뭐라 불렀었는지 기억이 가물하네..


엄마가 자주 그랬었어. 나는 할부지를 많이 닮았다고.

그 말, 그냥 흘려들었던 적도 많았는데 지금은 그 말이 자꾸 생각나.


나 중학생 때 기억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할부지가 좋았고 할부지랑 대화하는 게

재밌었던 것도 맞지만 용돈 받는 게 좋아서 그 연희동 산 꼭대기를 그렇게 자주 갔던 것도 맞아.


일 이만 원 뒤여주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또 가고, 또 가고,

근데 웃긴 건 그게 시작이었는데

나중에는 그냥 할아버지랑 이야기하는 게 좋아서 갔던 것 같아.


별 얘기도 아닌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계속했잖아 우리...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왜 그렇게 자연스러웠는지 조금 알 것 같아.


할아버지는 항상 뭔가를 '해보는 사람'이었잖아


내가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색소폰 해보라고 했던 것도,

내가 드럼 친다니까 "여자애가 무슨 드럼이냐"

하면서도 결국 기본기를 알려주던 것도.


타투한다고 했을 때도 말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신기해하면서 응원해 줬잖아.


그때 느꼈어.


이 사람은

틀 안에 가두는 사람이 아니라

열어주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



색연필이랑 크레파스, 스케치북을 보내드렸을 때

그걸로 도안을 그려주던 것도 아직 기억나.

그때 나는 그냥 "잘 그린다"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그냥 그림이 아니라

나한테 건네준 방식이었던 것 같아.


"이렇게도 해볼 수 있다."

"이렇게도 살아볼 수 있다."


말 안 하고도 계속 보여줬던 사람.

그래서 나한테 할부지는 되게 신기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엄청난 사람이었어.


중풍 왔을 때도 그걸 그냥 이겨내 버리고,

대장암 수술 이후 하반신 마비 진단받았을 때도

결국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을 가고.


솔직히 말하면 그건 그냥 대단한 수준이 아니야!!


나는 그걸 보면서 '이게 사람의 의지구나'

그걸 처음 제대로 느꼈던 것 같아.

그래서인지 지금도 힘들 때마다

할부지 생각이 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버틸 수 있다."


이상하게 그런 힘이 생겨.


그래서 나한테 할부지는 아직도 지금도 살아 있는 느낌이야.

몸은 없는데 의지는 남아 있는 사람.


그런 사람.


근데... 그날은 진짜 힘들더라.

할부지가 떠나던 날.

나도, 엄마도 그냥 다 무너졌던 것 같아.


엄마가

"용서했다."

"조심히 가시라"

그렇게 말하는데

그 말이 너무 무겁고 너무 슬퍼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어.


그냥 서 있었어.


또...


항상 마지막엔 나는 말 못 하고 서 있더라.

그래서 조금 후회돼.


조금 더 이야기할 걸, 조금 더 자주 갈 걸,

조금 더 많이 들을 걸.


근데...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나는 할부지를 진짜 진짜 좋아했어.

그리고 존경했어. 지금도 그래.


그래서인지 죽음이 허망하게 느껴지면서도

이상하게 끝난 느낌은 아니야.

할부지는 끝난 사람이 아니라 이어지는 사람 같거든.


내 안에서.


내가 무언가를 해보려고 할 때, 포기하지 않으려고 할 때,

버티려고 할 때, 그때마다 할부지가 있는 느낌이야.

그래서 나... 이거 하나는 약속할게.


나 쉽게 안 무너질게.


적어도 할부지 손녀답게는 살게.

못해도 끝까지 해보는 사람으로 살게.

그게 내가 할부지한테 받은 거니까.


할부지


나 아직도 할부지 닮았다는 말 듣고 싶어

그래서 계속해볼게. 끝까지


고마워 할부지!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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