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량청, [한 사람의 마을], 글항아리, 2023.

신장의 산문

by 파샤 pacha
앞 표지

출판사에서 분류한 것처럼 수필이 아니고 산문이다. 광고 문구가 지적하듯 가슴으로 파고드는 감동이 아니라 한마디로 영혼을 울리는 글이다. 여태껏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읽은 적이 있나 할만치 시적인 문장이며 삶을 바라보는 사유의 깊이가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글의 발상은 감각에서 시작되지만 내면으로 침잠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앞 표지 뒷면, 출판사의 작가 소개

나이 들어 무덤덤해진 감각을 생생하게 되살려 준다. 자연을 바라보는 예민한 후각이며 청각, 시각을 되살아나게 만든다. 풀, 나무, 곤충, 가축, 바람, 그림자, 소리, 냄새... 그저 그냥 지나쳐버릴 하찮은 것에도 따뜻한 시선으로 끈질기게 바라보고 공감하여 자신과 연결된 존재 의미를 찾아낸다. 이와 함께 존재의 뿌리를 잇는 공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공간에 대한 기억은 그저 장소에 얽힌 사연이 아니다. 현재의 나를 만든 근원의 공간이며 내 과거를 아는 인물들의 기억이 아로새겨진 장소이다. 류량청은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듯해도 그의 시선은 금세 더 멀리 더 깊게 사물과 인물을 관조한다. 지금 바로 귀에 와 닿는 바람 소리를 듣는 것 같지만 그 소리는 더 먼 켜켜이 쌓인 시간을 품은 기억으로 변한다. 철학자며 선지자의 시선이요 랭보가 말하는 견자의 비전이다.


내 발자국이 남아 있고 날 알아보는 동네 사람이 살고 있는 옛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류량청은 농부에서 농기계 관리인, 신문 편집자가 되면서 농촌을 벗어난다. 어쩌면 간직하고 싶은 자아가 뿌리내린 황사량을 잃어버렸기에 사라진 고향에 대한 집착이 꿈처럼 되살아난다. 이젠 변해버린 과거의 나를 아무리 되살리려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커서 어른이 되었고 내가 살던 집은 이제 그 시절의 그 집이 아니다. 꿈 같은 환영으로나 그 시절 그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니...

류량청의 고향 묘사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삼십대에 이른 자신의 불안한 뿌리를 찾아가는 존재론적인 탐구다.


내가 알던 사람들은 없어지고 살던 집은 폐가가 되어 더 이상 나를 맞이할 수 없는 공간으로 변했을 때 예전의 나를 되찾을 수 없다.

전기 없던 어린 시절 밤에 홀로 제 그림자를 밟으며 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 머리가 쭈뼛하고 소름 끼치는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해 준다.


작가의 글을 기깔나게 우리말로 옮긴 번역자 선생님께 박수를 보낸다. 잊어버린 순우리말 표현을 되살려주신 조은 님께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가장귀, 짚가리, 둔덕...

작가 류량청은 잊어버린 어린 시절과 고향 마을 그리고 고향 사람들을 되돌이켜 주었다. 번역자는 잊혀져 가는 우리말을 되살려 주었다. 세월에 부대끼어 다 꺼져 재만 남은 한 줌의 시심을 새로 돟아나게 해 주었다.


늘 머리맡에 두고 조금조금씩 새겨 읽고 싶은 글이다.

뒷표지 안쪽면 작가의 말
뒷 표지 평가의 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삼화 서적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