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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Feb 27. 2022

마스크를 훌훌 털어버리고

 이제 저녁 여덟 시면 어김없이 창문을 열고 손뼉 치던 일은 벌써 옛 추억이 되었다. 어쩌면 코로나를 막으려고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려고 그랬지만 속절없이 갇혀 지내는 자신한테도 박수를 쳤으리라.


 파리로 나갈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마주친다. 있던 건물이 허물어져 사라지고 새로 들어서는 건물이 그 사이에 몰라보게 우뚝 솟아 있다. 전에 없던 새 벽화도 눈에 띈다. 변하지 않은 풍경은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낀 좀비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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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봄 어느 날 14번 피라미드 역 플랫폼에서 의자를 탁자 삼아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내 쪽에는 일본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 여인 둘이 앉아 식품점에서 구입한 도시락을 펼쳐두고 먹었다. 맞은편에서는 삼십대로 보이는 프랑스 남자가 아예 한 상 차리고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는 마스크를 턱 아래 걸친 채 배낭에서 꺼낸 음식들을 늘어놓고 먹었다. 반면 아가씨 두 사람은 음식을 한 입 집어넣고는 연신 마스크를 끌어올리며 우물우물 먹었다. 이제 자리에 번듯이 앉아 여유롭게 식사하고 마스크 끼지 않은 온전한 얼굴도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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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위기로 인위적인 시간의 흐름에 장애가 생겼다. 그 결과 스포츠 행사 일정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지난해 스포츠 행사는 줄줄이 취소와 연기가 되고, 무관중 경기라는 초현실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올해 들어서도 무관중 아니면 제한적인 관중을 허용하고 있다. 지난해 열려야 했을 유럽컵 축구대회와 올림픽이 올해로 넘어오면서 다른 스포츠 행사들이 일정 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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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의 흥미를 돋우는 데는 반드시 반전이 뒤따른다. 반전이 없다면 드라마라고 할 수 없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반전 드라마인 역전이 종종 일어난다. 2020년 12월 중순 2차 파고 때 코로나의 영국 변종 알파가 나타나면서 프랑스와 독일의 코로나 형세에 반전이 일어났다. 서유럽 최고의 방역 모범국가로 뽑힌 독일이 12월 말에 가까워지면서 방역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의 하루 사망자가 거의 천 명에 육박하는 반면, 프랑스는 사백 명 선을 유지한다. 축구 경기로 치자면 후반전에 역전 분위기로 가는 판세가 된다. 지금 독일은 전반전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후반 들어 골을 먹는 형국이다. 2021년 1월 22일 독일의 총사망자가 5만(50642명)을 넘어섰다. 이날 하루 사망자가 859명이다. 독일은 하루 사망자가 한 달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다. 반면 프랑스는 같은 날 총 사망자 72647명에 하루 사망 400명대이다. 2020년 4월만 하더라도 독일의 사망자는 프랑스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그래도 인구 비율로 따져 본다면 아직 독일이 프랑스에 비해 전체 사망자가 훨씬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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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총리, 브라질과 미국 대통령의 뒤를 이어 2020년 12월 18일에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페스트처럼 코로나도 계층이나 사람을 가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코로나를 민주적인 바이러스라고 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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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26일 영국이 유럽에서 최초로 총 사망자 10만을 넘어섰다. 1월 20일 영국은 하루 사망자 1820명으로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 뒤 이 기록은 브라질과 인도가 갈아치운다. 지난해 봄 1차 파고 때만 하더라도 이탈리아, 에스파냐, 프랑스에 비해 영국은 희생자가 많은 나라에 속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2월 중순 영국 변종 알파가 생기면서 영국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들어갔다. 급기야 영국은 1월 5일부터 3차 전 국민 감금 조치를 내렸다. 영국이 그 지경이 되자 인접 유럽 국가들은 12월 21일부터 잇따라 영국과 국경 폐쇄에 들어갔다. 그 뒤 일부 풀리기는 했다. 그러지 않아도 섬나라인 영국이 유럽 연합에서 탈퇴하더니 코로나의 악화로 더욱 고립되어 간다.

주변 국가들이 다 방역 강화를 하는 와중에 2021년 2월 1일부터 이탈리아는 비록 저녁 6시부터 통금이 유지되지만 식당과 박물관(주말은 제외)이 다시 문 연다. 

 서유럽 국가들이 3차 파고를 거치면서 형세가 뒤바뀌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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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 접종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코로나 상황이 눈에 띄게 나아지면서 2021년 6월 16일 프랑스 정부에서 이튿날부터 야외에서 마스크 착용 해제와 6월 20일부터 통금 해제를 발표했다. 16일 현재 접종 완료가 16,9백만으로 전체 인구의 25,4%, 성인의 32,3%에 해당한다. 1차 접종은 31백만으로 전체 인구의 46,4%, 성인의 59,2%에 이르렀다. 6월 17일 마스크를 벗고 집에서 부르라렌 역으로 걸어가고 루브르에 들어가기 전 정말 오랜만에 근처 단골 식당에서 "자리에 앉아" 가락국수를 먹었다. 얼마 만인가? 감개무량! 레알 역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사람들이 붐볐다. 6월 18일 현재 코로나 통계를 보면 지난 1주일 평균 확진자 3천 명 미만, 중환자 2천 명 미만, 하루 사망자는 50 명 선으로 떨어졌다. 어휴! 마침내 정상으로 되돌아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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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영국 변종 알파나 남아공 변종 베타는 별 위력을 떨치지 못한다. 유월말 현재 인도 변종 델타가 극성을 부리며 세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다시 반전 모드로 바뀔까 걱정이다. 벌써 가을에 불어닥칠 4차 파고 예보가 나온다. 코로나 변종이 그리스의 마지막 알파벳 오메가(24번째)까지 갈까 지레 두렵다. 7월 초 브라질 변종 감마나 델타보다 전파력이 훨씬 강력하고 백신 저항력도 더 센 페루에서 변신한 람다가 유럽 쪽으로 퍼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 등장한 미국 변종 엡실론도 다시 고개를 든다는데...


 바이러스가 변신을 통해 살아남듯이 인류는 새 병균에 대항하는 새 항체를 만들어 살아남는다. 앞으로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병균과 항체의 공방전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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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의 헌데에 딱지가 남았다. 중세 흑사병 시절 위생 증명서가 검문소를 통과하던 통행증으로 오늘날 여권의 기원이었다. 짐짓 세련되게 QR코드로 현대판 위생 증명서인 보건 패스가 불사조처럼 되살아났다. 코로나 시대에는 외국으로 여행할 때 여권에 보건 패스까지 갖추어야 한다. 보건 패스가 방역 수단이라고 치더라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을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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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는 대중 엑스포 시대를 살고 있다. 내다 팔 품목이 없어도 무언가를 전시해야 한다. 그것이 훌륭하든 진부하든 상관없다. 무한 반복해서 나를 전시하고 내가 한 것을 알리고 내가 찍은 사진을 올리고… 무한 반복하지 않으면 세뇌시킬 수 없다. 휴대 전화기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시대에 너나없이 스스로 스타가 되어야 살아남는다. 우리 모두 아나운서가 되고 성우가 되고 주연 배우가 되어야 한다. 친구도 전략적 제휴로 맺어야 살아남는다. 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추종자를 만들어야 한다. 추종자가 늘어날수록 영향력이 크지고 권력이 주어진다. 자신의 광고도 하지만 타인의 광고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으로 대표되는 SNS를 통해 배경 음악과 함께 단 10여 초 만에 연출하여 남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 얼핏 보면 그 가상 세계에서는 가능성이 무한하다. 하지만 기회가 공평한 것 같아도 엄청난 차별 또한 존재한다. 개인의 일생뿐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코로나도 이런 흐름에는 아무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참 희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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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해 점쟁이 예언자적 진단은 못해도 현재 상황에 비추어 어느 정도 유추할 수는 있다. 세계적 전염병 코로나는 머잖아 그 위세가 쪼그라들어 이름만 남고 감기 증세로 꼬리표를 달 터이다. 불행히도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주장하는 사회적 불평등 심화는 더 심해질 게 뻔하다. 코로나를 그저 깨고 나면 잊어버리는 한때의 악몽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자기반성이 없는 인류한테는 자연의 재앙과 신의 분노가 언제 다시 내려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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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에 이어 여름… 계절이 바뀌어도 버릴 수 없는 아주 오랜 친구처럼 코로나와 늘 함께 살고 있다. 그 사이이 한둘씩 돋아나던 흰머리가 변종 바이러스처럼 무한 번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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