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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Mar 08. 2022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4

클라우스 마이네의 목소리에는 이글대는 태양열이 스며 있다. 음색이 맑고 따뜻하며 경쾌하다. 프레디 머큐리는 현란한 동작과 대번에 가슴을 확 뚫어주는 시원한 목소리로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간다. 오지 오스본은 반복적인 멜로디를 타고 강령술사 같은 목소리로 머리를 발작적으로 뒤흔들며 주술의 세계로 데려다준다. 로버트 플랜트는 배꼽을 드러내고 교태 섞인 동작으로 생리 현상을 불러일으킬 듯한 음색과 창법으로 청중들을 흥분시킨다. 이얀 길런이나 로니 제임스 디오는 불을 뿜 듯한 창법으로 감동과 흥분의 분위기를 달궈낸다. 한편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드 길모어는 평탄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일상의 세계를 벗어나 신비의 경지로 이끈다.


통통 튀는 새로운 멜로디에 빠른 템포, 단순한 리듬과 비트 강한 음악으로 실신 지경으로 몰고 가는 초기 비틀즈의 노래는 그야말로 새로운 현상이었다. 비틀즈 마니아들은 비틀즈의 등장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만나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는 뉴욕 출신의 빌리 조엘로 비틀즈가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 열네 살이었다. 미국은 비틀즈의 첫 방문 몇 달 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으로 슬픔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에너지 넘치고 발랄한 이십 대 초반의 네 청년의 출현은 이 슬픔을 가라앉게 해 준다.


새로운 머리 스타일과 참신한 복장, 그리고 인터뷰에서 보여준 자유분방함과 유머감각, 새로운 무대매너, 그 무엇보다 흥겹고 새로운 록 멜로디는 팬들을 열광시키고 나아가 세상을 바꿔놓기에 이른다. 비틀즈 이전에 대중음악이 사람들한테 이렇게 큰 영향력을 끼친 적이 없었다. 물론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대중문화 소비계층이 부쩍 늘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비틀즈의 선풍적인 인기는 말 그대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다. 억눌렸던 젊은이들의 욕망을 이끌어내 분출시킨 기폭제였다. 그야말로 시대 분위기를 잘 표현한 현대적인 음악이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옛날풍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 시대를 주름잡은 카펜터스나 아바의 음악은 쉽게 칠팔십 년대로 되돌려 놓는다. 반면 비틀즈 음악은 굳이 육십 년대에 얽매이지 않는다. 비단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터. 그들은 여전히 새로이 젊은 팬을 거느리고 있으니까.


지금도 열 개가 훨씬 넘는 짝퉁 비틀즈 밴드가 활약 중이다. 부틀레그(bootleg) 밴드라고 부르는데, 연주와 노래의 기량과 흉내가 가장 뛰어난 밴드는 Fab Four이다. 이 밴드에서 폴의 역을 맡은 아디 샤라프(Ardy Sarraf)는 원래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바꿔 베이스 기타를 친다. 다른 밴드로는 Them Beatles, Liverpool Legends, Cavern Beatles, Bootleg Beatles, 1964 the Tribute, 4 lads from Liverpool, Studio Two, Zoom Beatles, Rain, Hard Days Night, Beatles experience… 마지막의 두 짝퉁 밴드도 실력과 흉내가 훌륭하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쌍둥이 자매 듀엣 Monalisa twins도 나름 자기 색깔을 띠고 비틀즈 음악을 커버한다.


어떤 음악이 그림이 문학작품이 단지 그 시대에 인기를 누렸다고 훌륭한 작품은 절대 아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아야 고전이다. 이런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늘 현대성과 보편성을 띤다. 다시 들어도 다시 보아도 다시 읽어도 고정된 느낌이나 이미지를 주는 게 아니라 늘 새롭게 다가온다. 우선 작품은 자기 시대를 잘 담아내야 한다. 동시에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결국 현대성과 보편성을 두루 갖추어야 된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고 살아남는 작품은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음악은 이제 듣는 게 아니다. 보는 거다. 기계와 인간이 적절하게 뒤섞여 소리가 나온다. 저 소리는 과연 인간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기계가 내는 소리인가? 기계로 믹싱 한 목소리는 정말 인간적인가, 기계적인가? 노래가 주는 최고의 감동은 가수의 목소리인데, 하긴 변조된 음성도 목소리는 맞다. 어느 순간이 되면 자연의 목소리는 컴퓨터로 합성한 소리가 되어 나온다. 이런 음악에 익숙하면 모든 목소리가 저런가 보다 하고 여길 테다. 아마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는 더 이상 기계와 결합하지 않으면 감동이 없나 보다. 그러면 저 목소리의 정체성은 뭐라고 보아야 하나? 가수에 온전히 속한 걸까? 기계와 합작한 거라고 여겨야 하나? 진정 변조되지 않은 목소리는 팬들을 끌어모으지 못하는가? 유튜브 같은 스트리밍의 조회 횟수가 인기를 판가름하는 시대에 형편없는 음질에 장면 전환이 너무 빨라 눈을 뗄 수 없도록 하는 요란한 비디오를 보며 음악을 듣는다. 듣는 걸까? 보는 걸까? 아님 그 중간인가?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아닌 것이 음악인가? 이제 음악은 보고 듣고 몸으로 느낀다.


성량이 부족해 엠프로 키우고 고음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아 일부분 가성으로 부르는 것까지는 괜찮다. 이젠 저 가수의 진짜 목소리가 어떤 것인가는 모른 채 그 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밴드의 사운드도 가수의 목소리도 다 컴퓨터로 만든다. 좀 더 나은 목소리와 이미지를 보여주려면 당연히 기술의 힘을 빌어야 한다. 불행히도 그러는 과정에서 주체인 인간의 자리는 점점 쪼그라든다. 기계가 내는 듯한 가성에 춤곡풍의 빠르게 반복되는 멜로디가 돋보이고 효과음과 코러스가 가수 목소리에 버금간다. 옛 세대인 내가 듣기엔 이런 노래엔 가수의 혼이 실리지 않은 느낌이다. 노래를 하는 건지 춤을 추려는 건지 알 수 없다. 벌떼 춤을 추며 돌림 노래처럼 코러스가 리더싱어 못지않다. 비욘세(Beyoncé),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K-pop 걸그룹… 한 마디로 개성도 새로움도 감동도 없다. 


어쨌거나 유튜브를 통해 최근에 등장한 인기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를 보며 씁쓸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당신은 구관이 명관인 구세대니까 그렇지! 그렇담 할 말이 없다. 그래 취향 차이야. 유행가란 원래 다 그런 거지 뭐! 다 한때가 있는 법… 그래서 메뚜기도 한 철 열심히 뛰잖아요. 맞아요 맞아. 그 한 철 지나면 무대에서 사라지는 게 우리네 인생! 위대한 셰익스피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진리. 인기란 게 십 년이 가면 정말 대단한 가수다. 그 이상을 가면 위대한 예술가가 된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록이나 헤비메탈의 시대는 저문 지 오래되었다. 1990년대부터는 랩이 대세인 듯한데… 록의 전성기 1970년대를 지나 막강한 제국이 돌이킬 수 없이 망해가는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1980년대부터 활동한 라디오헤드(Radiohead)나 너바나(Nirvana)는 솔직히 록의 명맥만 유지한 그룹들이라 내 관심 바깥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록이 살아 있다고 외치는 밴드가 있다. 콜드플레이(Coldplay), 원 디렉션(One direction)… 글쎄, 기대치에 못 미친다. 본격적인 록이라기보다는 발라드풍 팝 음악을 보여주는 콜드플레이는 그래도 나름 서정적인 음악성이 돋보인다. 그런데 멤버 다섯 모두가 영화배우 같은 미소년 용모의 원 디렉션은 케이팝 그룹처럼 전략적으로 만든 보이밴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멤버 전원이 돌림으로 떼로 불러 자신들만의 색깔이 없고 이것저것 섞어 만든 짬뽕 음악이다. 이런 류의 다른 그룹을 보아도 인물만 바뀌고 똑같은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방 가수처럼 누가 누구인지 구분 안 되는 개성 없고 길들여진 창법을 선보인다. 원 디렉션도 소리를 들려주는 그룹이 아니고 몸으로 보여주는 밴드이다. 이런 스타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밴드는 한계가 뚜렷하다.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통과한 멤버들을 조합해서 합숙 훈련을 통해 익힌 기예로 짧은 기간에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만 짧게 끝나기 쉽다.

 

다른 한편, 시대가 변하고 음악을 소비하는 세대와 매체가 달라졌다. 새로운 세대의 감성을 담는 음악이 유행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가장 아쉽다면 삶의 환희나 슬픔을 노래하는 가수들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이 부족하고 영혼이 없이 로봇처럼 연기한다는 점이다. 음악과 땔래야 뗄 수 없는 뮤직 비디오는 가수를 무용수나 연기자로 만든다. 

1970년대 말 프랑스에서 시작된 디스코 시절부터 춤이 노래만큼 중요해지고 들려주는 것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21세기 들어와 대중음악의 한 주류는 특히 귀에 달콤하며 짧은 리듬과 가사를 무한 반복시켜 저도 모르게 중독으로 몰고 간다. 시선을 사로잡는 뮤직 비디오와 함께 한 번 들어도 여러 번 들은 것처럼 멜로디가 머릿속에 자꾸만 맴돌게 만든다. 그래서 이런 음악은 듣는 사람의 취향까지도 조종한다. 아마도 이런 까닭에 세계적인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이제 청년단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할 듯…)은 세대차이도 뛰어넘어 아줌마 부대도 팬으로 거느리지 싶다. 물론 보이밴드라고 십 대 소녀팬만 있으란 법은 없다. 좋으면 됐지, 무슨 소리냐고? 맞는 말씀. 취향대로 들으면 된다.


이 글을 쓰다가 우연히 알게 된 폰테인스 디씨(Fontaines D.C.)가 귀를 솔깃하게 하였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음악학교 동창생 다섯 명이 만든 그룹으로 2017년에 데뷔한 시적인 가사에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들의 음악은 용감하게 1970년대를 되살린 듯하다. 음악성은 뛰어난데 그만한 상업적인 성공은 거둘지 글쎄… Boys in the better land, I don’t belong, A hero’s death, Televised mind…


록은 아니지만 원 디렉션에 비해 다음 두 여가수는 매력적인 목소리와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시도 쓰는 관능적인 미모의 라나 델 레이(Lana Del Ley)는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1950-60년대 헐리우드 영화음악을 떠올리는 복고풍에 마음을 사로잡는 목소리이어서 그런지 한 동안 푹 빠져들어갔다. 모델 출신에 싱어송라이터인 이 가수는 성량이 부족해서인지 창법이 특이해서인지 특히 고음부에서 가성을 참 많이 쓴다. 그래서 라이브를 들으면 목소리가 시원스레 나오지 않아 매력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느린 리듬 앤 블루스 템포에 저음으로 부르는 델 레이의 멜랑콜리한 분위기는 영혼을 호리는 주술적인 마력이 있다. 2010년대 초반 히트곡을 주로 발표하지만 8-9년이 지난 현재도 델 레이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델 레이는 나른하고 느릿하게 장면 전환되는 영화처럼 제작한 뮤직 비디오와 함께 듣는 게 제격이다. Video games, Blue jeans, Summertime sadness, Doin’ time…


다양한 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헐렁한 복장으로 사이코 드라마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이돌 가수 빌리 에일리쉬(Billie Eilish)는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다. 그렇지만 동작이나 표정 연기도 가창력만큼 일품인 에일리쉬의 가는 듯하지만 맑고 깊은 목소리며 창법은 분명 매혹적이다. 더욱이 노래가 3-4분 대에 끝나는 게 퍽 마음에 든다. Everything I wanted, I love you, Bury a friend, No time to die… 두 사람 모두 사회 적응이 싶지 않은 성격이라 내면적 고뇌를 담은 노래 가사가 많다. 사랑의 슬픔이나 삶의 환희보다 죽음이라든지 억눌린 고뇌를 노래하는 점이 특이하다. 기후 좋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활약하는 두 가수의 음악이 어두운 분위기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다. 또한 둘 다 강렬한 감정을 어떻게 그렇게 자제하여 내면화시키는지도 믿기 힘들다. 실제 에일리쉬의 십 대 팬들은 공감한 나머지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린다. 2020년 현재 에일리쉬가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델 레이는 뉘엿뉘엿 져가는 저녁 해다.

 

뮤직 비디오를 보지 않고 음악을 듣던 시절 목소리가 모든 감동의 원천이었다. 아무래도 가수의 생김새는 관심이 덜했다. 텔레비전이나 뮤직 비디오를 보며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수의 생김새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목소리는 주옥같은데 얼굴은 정말 아니올시다 이거나, 얼굴은 참 잘 생겼는데 목소리가 제대로 터져 나오지 않고 앵앵거리는 가수도 많다. 뭐니 뭐니 해도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훌륭한 가수다. 비디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면서 어쩔 수 없이 가수의 생김새가 더욱 중요하게 된다. 이젠 듣는 가수에서 보여주는 가수로 변하고 말았다.


요즘이야 유튜브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예전엔 국내 가수야 텔레비전에서 쉽게 얼굴을 접할 수 있어도 외국 가수의 경우 실물 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수의 모습이라야 앨범 자켓의 사진이나 팝송책에 실린 화보가 전부였다. 목소리만 듣고 좋아하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화면으로 실물을 보았을 때 상상했던 이미지와 달라 실망할 때가 더러 생긴다.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운데 얼굴은 전혀 아니다! 둘 다 조화가 이루어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그런 경우는 참 드물다. 인물도 좋고 목소리도 아름답다면 하늘이 내린 선물!! 젊을 때 괜찮다가 나이 들면서 곱게 늙지 못하고 추하게 추락하는 수도 많다. 한창 시절 고왔던 얼굴이 폭삭하고 매력적이던 목소리가 맛이 가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요란한 몸놀림과 정열적인 창법을 구사하는 롤링스톤즈의 가수 믹 재거는 생김새가 그저 그렇다. 영혼을 불사르는 열창 가수 자크 브렐 역시 마찬가지. 역시 대단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에디트 피아프도 자그마한 체구에 그리 아름다운 용모는 아니다. 이 세 사람 모두 뛰어난 가창력이 밑받침된 대표적인 가수들이다. 섬세하며 세련된 음색으로 관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목소리의 자지(Zazie)는 여전사를 떠올릴 만큼 건장한 육상선수의 몸을 보여준다. 황홀하게 감미로운 목소리를 타고난 카렌 카펜터의 용모도 그냥 수더분하다. 리듬 앤 블루스의 디바 와인하우스도 목소리와 가창력은 가히 신이 내린 것이지만 생김새는 마약과 알코올로 몸이 망가진 다음에는 보기 안쓰럽다. 디스코 시절의 팝스타 올리비아 뉴턴 존(Olivia Newton-John)은 얼굴과 목소리가 매력적이어도 성량이 부족한 비디오형 가수다. 한편, 포크송계의 큰 별인 형제 듀엣 에벌리 부라더스(The Everly Brothers)는 둘 다 깎은 밤톨 같은 용모에 음성 역시 참 감미롭기 그지없다. 이브 몽탕도 훨친한 용모에 노래도 잘하는 가수 겸 배우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둘 다 갖춘 대단한 가수다. 최근에는 가수의 생김새가 목소리보다 앞선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가수들이 다 잘 생겼다. 라디오형 가수가 아니라 비디오형 가수를 필요로 하는 세상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자주 옛일을 떠올린다. 청각을 타고 들어오는 기억은 거의 생리적이어서 그 반응은 정말 강력하다. 그 음악 듣던 시절이 거짓말 같이 되살아온다. 덩달아 음악에 얽힌 일이며 인물들이 줄줄이 엮여 나온다. Those were the days, Yesterday, All those years ago, Yesterday once more, The young ones, Mrs Robinson…


어느 봄날 대학 기숙사 휴게실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재결합 공연을 지켜보았다. 카세트 테이프 표지 화면으로 보던 가수들을 현장은 아니어도 실황 화면으로 보다니… 무엇보다 결별한 듀엣이 다시 모였다는데 더 많은 팬들이 열광했을지 모른다. 트윈폴리오의 해체나 그보다 한참 전 일어난 비틀즈의 해체에 못내 아쉬워하던 나였다. 벌떼 같이 모인 센트럴파크의 관중만은 못해도 참 많은 학생들이 휴게실 텔레비전 앞에 모였다. 1 지망에 떨어져 2 지망 과에 등록해 재수를 노리며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던 시절이었다. 갈피 잡지 못하고 헤매던 때 잠시나마 모든 시름을 잠재워 준 신선한 샘물 같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실제 공연은 1981년 9월에 있었고, 내가 본 것은 다음 해 나온 기록 영화로 제작된 거였다.


우리 방에서 재홍이 기타를 치며 [해바라기]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어서 말을 해», «사랑이야»... 기타도 그런대로 퉁기고 성량이 좀 작기는 해도 들을 만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웬만큼 불렀다. 당시 재홍은 갓 사귄 여자 친구와 한창 잘 나가던 때였다. 내가 4학년이 되고 약대 대학원생 삼수 형이 졸업을 한 뒤로 룸메이트가 바뀌었다. 부산 출신의 물리학과 친구 "대화 학생". 충남 대천 사람인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재깍 나오지 않고 굼뜬 이 친구한테 "대화 학생, 밥 먹어유." 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사나흘이 멀다 않고 친구들을 데려와 재워도 싫은 내색 한 번 안 한 사람 좋은 삼수 형보다는 못해도 말수가 적고 조용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전축을 갖고 있었다. 클래식 레코드와 퀸의 앨범이 주를 이루었다. 대화 녀석의 오디오 기기 덕분에 난 오디오도 없으면서 음반 몇 장을 구입했다. 모노로 녹음된 파블로 카잘스 연주의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흐느끼는 관능적인 목소리를 자랑하는 마리 라포레 선곡 집, Moonlight shadow가 수록된 마이크 올드필드의 레코드... 


우리 방바닥에는 일본 배우들의 알몸 화보가 실린 포르노 잡지 두어 권, 김홍신의 [인간시장], 그리고 [메아리]와 가요 집도 몇 권 나뒹굴었다. 우리 방이 중앙에 있고 가장 큰 방이어서 하숙생들은 우리 방 맞은편 식당을 왔다 갔다 하면서 반드시 우리 방을 흘깃흘깃했다. 무슨 건수가 없나 하고... 하숙집 친구들은 나더러 총재라고 불렀다. 걸핏하면 내가 내뱉는 소리는 큰 목소리로 “먹자! 자자! 나가!”를 외치며 “재미 추구”와 “귀족적 품위”를 떠벌여서이다. 민주정의당에 대적하는 민주 재미 추구당 총재. 이게 하숙집에서 날 부르는 공식 호칭이었다. 재홍은 이걸 줄여 민재추 총재, 다른 친구들은 더 줄여 총재하고 부르곤 했다. 또 다른 내 구호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자!”다. 평소 말수가 많지 않은 나란 위인이 외마디처럼 외치는 소리가 주로 이런 것들밖에 없었으니...


뮤직 비디오와 함께 음악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같은 노래의 여러 버전을 보면 연령대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새파랗게 젊은 이얀 길런이 탄력 넘치는 몸매에 폼나게 입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바람 잡는 로저 글로버 옆에서 표효하는 모습을 보다가, 하얀 머리의 칠십 대가 된 이얀 길런이 여전히 로저 글로브 옆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친다. 어떤 때는 노란 티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어떤 때는 가죽옷을 입고 어떤 때는 하얀 정장 차림으로 적당한 볼륨감을 자랑하던 이얀 길런. 콧수염에 머리를 길게 기른 도사 같은 풍모의 전설적인 키보드 주자 존 로드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그 깐깐하고 까다로워 보이는 리치 블랙모어는 디퍼플을 떠나 오랜 전에 레인보우를 만들었다. 그 호리호리하며 날카로운 영원한 반항아 리치 블랙모어도 오십 대에 이르면 둥글넓적해진다. 전설적인 디퍼플의 라인업은 뭐니 뭐니 해도 리치 블랙모어가 리더 기타를 맡아야 제격! 다른 단원보다 비교적 젊은 디퍼플의 리더 기타 스티브 모스는 뭔지 모르게 어색하다.


이얀 페이스는 웃통을 벌거벗고 신들린 듯 드럼을 두드린다. 존 로드는 몇 대의 키보드를 오가며 환상의 멜로디를 이끈다. 로저 글로버는 으레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베이스 기타를 퉁기며 흥겹게 무대를 누빈다. 리치 블랙모어는 가슴 파헤쳐진 까만 옷을 입고 언제나 무표정하게 제자리에 박힌 채 리더 기타를 친다. 이얀 길런은 둥둥해지고 얼굴선이 부드러워졌어도 여전히 근육질을 자랑하며 약간 느린 템포로 노래한다. 세월이 흘러 이얀 길런의 성량과 힘이 줄어든 대신 엠프 기능이 눈에 띄게 나아져 밴드의 사운드는 오히려 더 웅장하고 강력해졌다. 사운드가 부드러워지고 달콤해졌지만 한창때의 팽팽한 긴장감과 섬세한 맛은 떨어진다. Child in time, Perfect stranger, Strange kind of woman, Highway star, Speed king, Woman from Tokyo... 

대학시절 신한 다방에서 J와 둘이서 누구의 신청곡이 먼저 나오나 내기할 때 단골 메뉴 가운데 비틀즈는 물론이고 디퍼플, 레인보우, 롤링스톤즈, 핑크 플로이드, 산타나 등의 곡이 꼭 들어있었다. Soldier of fortune, Smoke on the water, Catch the rainbow, Rainbow eyes, Ruby Tuesday, As tears go by, Time, Money, Europa, Samba pa'Ti...


음악을 들으면 절로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장소만 이동하는 여행이 아닌 시간 여행이다. 그렇다고 그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는 여행은 아니다. 과거를 현재로 감쪽같이 되살려 놓는 마술 여행이다.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하고 벅찬 감동을 주고 귀신처럼 과거를 현재에 되살리는 탁월한 촉매다. 네르발은 생제르맹의 카페에서 기타를 퉁기며 노래하는 젊은이를 보자,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전쟁터에서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 돌아온 자신의 아비가 아내를 그리며 기타를 치면서, 제목과 달리 사랑의 슬픔을 노래하는 «사랑의 기쁨»을 읇조리던 모습을 떠올린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을 버리고 간 네르발의 엄마는 러시아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 군대의 군의관인 남편과 합류했지만, 폴란드 땅에서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열병(아마도 발진티푸스)으로 죽는다…


한 동안 음악을 들어야 잠들 수 있었다. 잠자리에 들면서 카세트 하나를 들으며 잠들곤 하였다. 음악을 켜 두지 않으면 잠 못 이룰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마약에 길들여진 중독자처럼 음악을 들어야 잠에 빠져들곤 하였다. 카세트가 한 바퀴 돌아가는 중에 잠이 들거나 한 바퀴 더 돌리는 때도 있었다. 약 기운이 적당히 퍼져 나가야 잠이 오는 현상은 과연 뭐라고 해야 하나. 머리맡에 카세트 라디오를 두고 누워 카세트 돌아가는 소리가 섞여 나오는 음악을 듣고서야 잠에 빠져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색으로 치면 렘브란트 그림에서 명암의 스펙트럼 효과로 어둠을 통해 한층 더 돋보이는 빛처럼 귀 속을 파고들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이런 거다. 시험공부할 때도 음악을 듣고, 텔레비전 스포츠 중계를 동시에 보았다. 한 눈으로 책을 한 눈으로 화면을 보고 귀로는 음악을 들었다. 학생수첩 곳곳에 맘에 드는 노래 제목이며 가수와 연주자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주로 에프엠을 통해 팝송을 듣던 시절이었다.


이런 멜로만적인 생활은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특히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절대 안 되는 일. 너무 슬프거나 극히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면 좋아하는 음악도 들을 수 없다. 그래도 슬플 때는 오히려 흥겨운 음악을 듣는 편이 낫다. 나는 한 동안 음악을 거의 듣지 않고 지냈다. 어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여름 철에 집중하여 들었던 걸 빼면 음악과는 담을 쌓다 시피 했다. 혼자 있고 피곤해서 공부를 하기엔 집중력이 모자랄 때 음악을 들었다. 에프엠을 통해 방송을 듣거나 CD를 들었다. 모두들 MP3로 음악을 듣던 때였다. 에프엠은 유행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옛날 노래도 많이 들려준다. 언제부터 유행에 덤덤해지면서 유행하는 노래보다는 예전에 좋아하던 노래 쪽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유행에 심드렁해진 탓도 크고 나이가 들어서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유행하는 노래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저도 모르게 지난 시절에 좋아한 명곡들을 주로 듣는다. 그래서 팬들도 가수와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 세대별로 애창곡이 따로 구분된다. 이러고 보면 사람이 자기 세대를 뛰어넘기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듣는 음악이라고는 젊은 시절 즐겨 듣던 걸 되풀이해서 듣고 있으니… 최근 연구 결과 개인의 음악 성향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나이는 여자가 13세, 남자는 14세의 사춘기라고 한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때의 음악 취향이 남는다고 한다.


이제 나란 사람도 무대 전면에서 차츰차츰 뒤로 물러나는 세대가 되었다. 언젠가 퇴장당하는 날이 오리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서글퍼지기 전에 공연히 초조해진다. 초조함과 조급함 이 둘은 한창 젊은 시절부터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젠 의젓한 동반자가 된 듯도 하고, 이 놈들을 떠올리면 괜히 신경이 곤두서며 짜증이 난다. 이런 심정이 들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콧소리로 흥얼거리며 좋아하는 노래를 듣자. 라라랄라라 랄랄라, 예예예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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