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쉬는 날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몇 가지 간단하게 먹을 것을 옆에 두고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눈이 너무 빨리 피곤해진다. 눈이 빨리 건조해지니 두통까지 생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영상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땐 책에 나의 문화생활이 치중되어있었다면 지금은 영화로 조금 더 넘어가있다.
하지만 책과 영화가 주는 그만의 느낌은 서로 너무다르기 때문에 비교할 수가 없고 무엇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책은 읽는 내내 상상하게 하고 영화는 상상을 할 틈을 주지않고 끊임없이 자극한다. 영화는 인간이 만든 영상매체가 주는 감동을 극대화한 결과물이다. 영화에 제대로 빠지면 몇 날 며칠을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나의 영혼의 반은 그곳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한번 가보지도 않은 곳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에 걸리기도 한다. 나는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비엔나를 그리워하고, 비포선셋을 보고 파리를,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잘츠부르크를 그리워했다. 한 편의 영화가 주는 감동은 나를 집돌이와 망상가로 바꾸는데 한몫했음은 틀림이 없다.
나의 인생영화는 '오직 한 편의 영화'라는 느낌을 주는 그 타이틀에 맞지 않게 여러 개가 있다.
그것은 영화마다 꼽을 수 있는 이유가 분명했고 그 여운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몇 편을 꼽으라면 그중 하나는 레이첼 맥아담스 주연의 '어바웃 타임'이다. 얼마나 좋아하는 영화였냐면 결혼식 때 신랑 행진곡으로 영화 OST 중에 하나인 'il mondo'를 썼을 정도였다. 그리고 예전에 영어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도 이 영화로 시작했다. 눈만 뜨면 보았던 영화인데 그 영상미와 대사와 영화 속 음악이 주는 감동은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볼 때마다 명장면은 하나씩 늘어갔고,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바뀌었다. 항상 새로운 레이첼 맥아담스의 미소는 덤이었다. 여담으로 레이첼 맥아담스는 '웨딩 크레셔'라는 영화를 통해 처음 봤는데 그녀의 얼굴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예뻤다. 아름답다고 표현하기보단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거 같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영화 '노트북'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2013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시간여행이란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판타지다운 화려함이나 자극적인 내용이 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는 시간여행이란 소재를 다룬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은 없었다. 굳이 꼽으라면 남자 주인공 '팀'의 여동생 '킷켓'이 남자 친구와의 이별로 힘들어하다가 교통사고가 난 장면이랄까.
주인공 팀의 능력은 과거에 겪은 경험을 좁고 어두운 곳에서 주먹을 쥐고 상상하면 그때의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다. 경험하지 않은 곳으로 갈 수 없다. 흔한(?) 시간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능력이 제한적이다. 숫기가 없었던 팀은 여자를 만나기.. 아니 진정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첫사랑 샬럿에게 몇 번이나 능력을 이용해 다가가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다.(훗날 그녀는 팀을 유혹하지만 그는 뿌리친다.)
하지만 우연히 친구와 간 암흑(?)카페에서 그의 진정한 사랑인 메리를 만날 수 있었고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서 3번인가를 쓴다.
처음 영화를 봤었을 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우중 결혼식 장면이었다. 메리의 빨간 웨딩드레스와 Il Mondo 그리고 비와 바람으로 엉망이 된 결혼식은 영화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움을 대사 하나 없이 표현했다. 한동안 유튜브로 결혼식 장면을 계속 찾아보았었다. 당연하게도 결혼식이 열렸던 영국의 콘월과 팀과 메리의 주무대였던 런던은 한동안 나의 검색 목록에 상위를 유지했다.
다시 영화를 봤을 때는 팀의 아버지 제임스가 아들의 결혼식에서 베스트 맨으로써 했던 말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공부를 하면서 워낙에 많이 봤던 영화라 그 대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I'd only give one piece of advice to anyone marrying, we're all quite similiar in the end. We all get old and tell the same tales too many times. But try and marry someone kind and this is a kind man with good heart.
I'm not particlulary proud of many things in my life, but I am proud to be the father of my son."
인생의 끝은 비슷하고 우린 했던 이야기를 또 하며 추억하고 살지만, 결혼만큼은 따뜻한 사람과 하란 말이 귀에 박혔다. 내 딸아이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네가 나의 딸이라 난 너무 자랑스럽다고도 덧붙여서 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주인공 팀은 똑같은 하루를 두 번 산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지만 똑같은 하루를 그냥 한 번 더 살아보는 것이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 주인공은 첫 번째 보단 두 번째의 인생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 예측할 수 있는 삶이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어차피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면 바뀌는 건 자신의 생각이란 것에 다다른다. 그래서 한 번을 제대로 살고 두 번째의 하루는 살지 않기로 한다.
영화는 판타지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현실이다.
영화는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판타지를 '현실'을 살고 있는 주인공의 인생에 넣음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판타지를 적절하게 섞어 단순한 것을 깨닫게 해준다.
처음 영화가 끝났을 때는
'영화가 재미 있긴 한데 납득이 가지 않는 결말이다. 교훈을 주고 싶었겠지만 저 능력을 포기할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시간여행 초능력보다 저게 더 비현실적이다." 라며 영화의 한계를 거실바닥에 흘린 물의 깊이만큼이나 얕은 나의 머리로 지적했다. 하지만 몇 번을 더 보고 난 후 깨달은 것은 '내가 틀렸었구나'라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결국 영화를 본 누구도 초능력을 가질 수 없다. 초능력을 갖지 않은 우리의 삶이 그리고 초능력을 사용해도 소중한 무엇을 잃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면 우리는 그냥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사는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를 본 누구라도 '내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또는 옆의 사람으로부터 받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처음의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풍족한 삶을 위한 물질적인 것들을 떠오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의미가 없다. 왜냐면 어차피 우린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넌지시 말한다. 어차피 너흰 그런 능력이 없으니 로또 번호를 기억해놓는다는지, 주식을 사놓을 거라든지, 비트코인을 미리 사놓을 거라든지 그런 생각은 시간 때우는 용으로만 쓰라고.
우리는 능력자들이 능력을 고작 그런 것에 쓴다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우리는 비현실을 상상한다. 지금 소중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게 우리의 현실을 비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두 번째 날이 필요 없게 말이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 열심히 사는 것, 마치 그날이 내 특별한 삶의 마지막 날인 듯이..."
<어바웃 타임 대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