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삼국지

홍 나라 모나라 대전

by 홍 필구

낯선 곳에서 잠을 자다가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그날은 온종일 고된 작업에 시달려 눕자마자 꿈 한번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좋은(?) 느낌이 들던 날이었다. 하지만 잠이든 이후로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결국 마지막으로 잠에서 깼을 때는 한낮의 정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온몸이 살갗이 바람만 불어도 아플 정도로 피곤하고 지쳐서 정신은 들었지만 앉아있을 수는 없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잠이 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정신이 말짱한 상태로 누워있으니 내가 잠에서 계속 깬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려움 때문이었다. 누워있으니 온몸이 가려워서 손이 저절로 계속 바빠졌다. 여기도 긁어야 되고 저기도 긁어야 되고.

'낮에 몸을 너무 혹사해서 면역력이 약해져서 두드러기가 생겼나' 또는 '덮고 있는 이불에 벼룩 같은 게 있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귀에서 '에에엥' 소리가 났다

'아 모기가 있구나'

허공에다 곰처럼 팔을 휘둘렀지만 뻣뻣한 강함은 하늘을 유유자적하는 모기의 유연함을 이길 수 없었다.

태극권의 고수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늦가을 모기는 눈을감고 휘둘러대는 팔로는 날개 한쪽도 스칠 수가 없었다.

이대로 잠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겨울 솜이불 같은 몸을 간신히 일으켜 불을 환하게 켜고 모기를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노련한 그녀는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요즘 모기는 똑똑해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인간의 속담을 십분 활용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어디 구석에 숨지 않고 먹잇감 근처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다시 사냥감을 향해 날아가는 수고를 아낀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지금은 늦가을 길어봐야 그녀의 목숨은 한 달이다.

추위에 점점 쇠퇴하는 기력과 흡혈의 맹목적 독기만 남은 그녀로서는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는 것이 생존의 방법일 터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주변을 괜한 움직임으로 자극하지 않고 눈으로만 살폈다.

역시... 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뻔뻔하게도 이불 옆 커튼 끝자락에 붙어있었다. 뻔뻔한 위치 선정과는 다르게 엉덩이를 조금씩 흔드는 초조함도 드러내고 있었다


'인간의 지혜를 한낱 미물이 따를 수 없다'


늦가을 힘빠진 모기를 상대로 우월감에 젖은 나는 그녀에게 손을 뻗쳤다.

이제 조금 뒤면 방해받지 않은 시간을 가질 생각을 하니 너무 흥분을 했었던 걸까?

난 그만 나의 양손바닥이 부딪히는 면적을 최소화하면서 그녀를 내리쳤다. 부딪히는 면적이 작으니 도망칠 수 있는 면적은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이내 자취를 감췄다.

새벽은 짧았고 이 녀석을 잡지 못하면 더 이상의 휴식이 없단 걸 알고 있기에 나의 마음은 그녀의 달싹거리던 배처럼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참을성이 없는 그녀의 본능을 믿기로 했다.


'불을 끄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자는 줄 알고 서서히 다가올 것이다'


나는 지구전을 펼치기로 했다.

노련하지만 피를 향한 본능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나의 주변을 천천히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낮게 날며 거리를 재는 그녀는 노련한 복싱선수 같이 섣불리 다가오지 않고 내가 잠들었는 지를 확인하는 거 같았다.

나 또한 신인답지 않은 참을성으로 그녀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만 차분함을 잃고 말았다.

그녀의 배는 이미 나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로 반틈이 차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지만 분노로 멘털이 흔들린 나는 '언제 저만큼 빨았어'라고 생각을 하며 흥분한 채로 팔을 휘둘렀고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제갈량이 가장 위험한 적인 사마의를 제거하려고 심혈을 기울여 파놓은 함정에 사마의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 넣었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전갈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나는 절망감에 빠졌다. 잠에서 깨면 씻고 출근을 해야했다. 거기에다 이제 내가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바로 잠들어도 채 3시간이 남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려는 그때 공중으로 그녀가 날 깔보듯 날아다녔고 고민할 틈도 없이 뛰어가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9번을 이기고도 한 번의 전쟁에서 패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이 전쟁터였다. 그녀는 오만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녀는 죽진 않았지만 바닥에 기절한 채 쓰러졌고 난 자비를 베풀었다. 그녀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순식간에 휴지 안의 화석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피였지만 나의 피로 붉게 물든 휴지를 보며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엄습해왔다.

'그녀는 한 마리였을까? 처음에 본 모기는 배에 피가 없었던 거 같은데'

마치 위촉오 삼국중 촉나라와 오나라가 대전을 치르고 있을 때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던 위나라가 텅빈 오나라의 본진을 습격하는 듯한 형국이었다.

난 더 이상 전쟁을 치를 힘과 의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불을 끄고 누웠다. 조용했다. 어딘가에서 내가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배고픈 맹수의 눈빛을 느끼며 불안하게 잠들었다.

'그래 조용히 날아와서 조용히만 빨아먹어라 그럼 나도 적당히 피를 내어주리라'


모든게 엉망일 때는 거절이 더 힘들다.

거절할 힘도 없기때문이다.

받아들였다고 해서 거기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다.

착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절도 정신이 힘들지 않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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