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김밥이 많이 커졌어.
몇 개월 전이었다.
인터넷 검색어에 싸이월드란 단어가 계속 올라왔고, 미니홈피에 자신의 젊음을 저장했던 세대들이 눈치를 보며
"어 진짜 부활해?"
하며 '점잖게' 궁금해했다. 그들(나포함)이 싸이월드의 부활에 대해 어떤 식으로 부활을 하는지 그리고 안에 있는 내용이 다 보존되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감정을 드러내면서 기대하기엔 그(싸이월드)는 친구들 모임에 나온 여자 친구 또는 남자 친구에게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술김에 꺼낼 수 있는 폭탄을 안고 있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속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또 생각지 못한 어떤 미지의 것이 스크롤을 내리다가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그를 누군가와 공유하기에는 조금 더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몇몇 지인들은 잠깐 어플을 깔고 혼자 즐기고(?) 지우기도 했음을 나에게 고백했다. 다시 지웠다는 건 잠깐 열어본 추억을 다시 가슴 저 아래에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 창고에 몇 중으로 보안장치를 걸었다는 뜻이겠지. 꽤 은밀한 작업을 마친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자신의 작업에 지나치게 몰두해 '가장 가까운 인물' 또한 은밀한 작업을 했을 거라곤 짐작조차 못한 것 같았다.
아무튼 나 또한 젊음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상당한 페이지를 그에게 할애했었는데, 조심스럽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이벤트성으로 열리는 세계의 독특한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가듯 나 홀로 커피를 마시며 과거의 나를 관람하고 싶어졌다. 물론 그곳에 감정 따위가 남아 있었겠냐만은 그냥 타임머신을 타고 싶은 어린아이의 맘이랄까. 아무튼 싸이월드는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은 친구처럼 많은 기억을 품고 있었고, 그것을 오랜만에 마주한 친구처럼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을 억지로 끄집어내며 "야 너 이거 기억나지?" 라며 물으며 신나서 설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쓸데없이 말이 많은 친구를 등지고 그곳에서 내가 진정 찾은 것은 그때의 내가 썼던 일기장이었다.
제대 후부터 썼었던 일기가 아직 있었다.
남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듯 재미있게 하나하나 읽어가다가 끝까지 다 읽는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제대 후 바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내용이 앞으로의 걱정,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안돼서 힘들다, 오늘은 몇 시간을 공부했는데 남는 게 하나도 없어서 스트레스받는다. 그런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독서실에서 일하며 공부할 때의 상황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제대 후 공부한답시고 용돈 받는 게 죄송해서 하루의 3분의2를 보내고 있던 독서실에서 오후6시부터 마무리 까지 카운터를 봐주고 자리 하나에 월급 조금을 받으면서 공부를 했다. 마감시간이 되면 각 열람실을 돌아다니며 책상에서 자고 있던 학생들을 깨우고 청소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각열람실을 청소하면 유독 지우개 가루가 많이 나오는 자리가 있는데 그 주변을 청소기로 밀려고 가까이 가면 자리의 주인들이 공부한 흔적들을 나도 모르게 흘깃 보게 된다. 그 흔적들을 보고 있으면 참 치열하게들 산다고 느끼며 한편으론 이들만큼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많고 난 그중에 한 명일뿐이다 열심히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성공할 순 없는 것 아닌가. 만약에 내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난 누구를 탓할 것인가? 결국 과정보다 결과만 남는다는 것을 스스로 되새기며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지쳐 기분은 끝없는 바닥을 향해 내려갈 뿐이었다.
가끔씩 초조함에 사로잡혀 그만 포기할까 생각이 날 때는 그날 하루의 마감 후 나의 발길은 저절로 그곳을 향해 갔다. 집으로 가는 길엔 24시간 김밥집이 있었다. 유독 정신이 피폐해진 하루의 마지막은 '짜투리 시간 영단어 외우기'를 포기하고 잠깐의 낭만을 만끽하는 사치를 선택하기로 한다.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달빛을 보며 듣는다. 그리고 오른손엔 썰지 않은 김밥이 들려있다. 우적우적 천천히 씹으며 씹는 속도에 맞춰 집으로 걷는 것이었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밤바람과 음악과 달은 차가운 도시의 새벽을 낭만적인 곳으로 바꾸어 주었고, 난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언젠가 봉평에 가서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을 봐야지.
집이 가까워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어떨 때는 조금 돌아서 들어가기도 했다. 그래서 난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공부하는 시간이 좀 더 길어지면 이 시간을 조금 더 즐기면 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일기를 읽고 있자니 그때로 돌아간 거 같았다. 그때의 밤공기, 들었던 음악, 상상으로 떠올린 봉평의 메밀밭. 때론 고통이, 때론 낭만이, 때론 희망으로 젊음이 마구 섞여 있던 그때의 앳된 내가 잠시 몸속으로 들어왔다 나간 거 같았다. 잠시나마 그것을 느끼게 해 준 싸이월드에게 감사했다. 물론 과거로의 여행은 그것으로 끝내고 어플을 지웠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겠지만, 지금 현재의 나에게 집중을 해야 똑같은 시간이 지난 후 그때의 내가 순수하게 다가올 것이다. 순도 100프로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
사람은 가끔은 많이 가끔은 조금씩 불안함을 안고 살아간다. 지금의 불안함도 언젠가 한 번은 돌아가 보고 싶은 추억이 되겠지. 결코 돌아가고싶지 않았던 그 시절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믿으며 나아간다.
그때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고생했어, 그리고 김밥이 2500원 넘게 올랐다. 근데 더 커졌다. 지금의 김밥을 그때의 너에게 선물하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