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될 거 같아?

뭐가 되고 싶냐고? 아니 뭐가 될 거 같냐고.

by 홍 필구

육아와 일을 병행한다는 핑계로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두 해전에 다니시던 회사를 퇴직하시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로 내려가셨다(본가에서 왔다 갔다 하셨지만 집에서는 거의 잠만 주무셨다). 아버지는 퇴직하시기 전에도 시골에 가시기를 직장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성실히 다니셨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몸이 편찮으셔서 병가를 쓰시고도 시골에 내려가셔서 거기서 쉬실 정도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온 느낌을 얘기하자면 소꿉놀이를 크게 하시는 거 같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장난감 트럭과 장난감 굴삭기 그리고 그밖에 장난감으로 흙을 파고 집을 짓고 다시 허물었다가 새로운 것을 쌓고 한다면, 아버지는 앞에서는 말한 단어에서 '장난감'만 빼면 두 번의 설명이 필요 없어진다. 시골의 땅을 팠다가 묻었다가, 연못을 파서 물을 채웠다가 다시 메우고, 주택보다 높은 나무를 이리도 옮겨보고, 저리도 옮겨보고 하셨다(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하셨다. 도저히 혼자 안되실 때는 나를 찾으셨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버지의 대규모 소꿉장난이 이제 퇴직하시고 제2의 인생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요즘은 잔디를 깔고 계신다. 지난여름에 잔디를 심어 나는 근무가 아닌 날에는 잔디에 물을 주기 위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따라다녔다. 그 작업이 끝나고 잔디가 안정기에 올라오자 난 한동안 시골로 가지 않았다. 일도 일이었지만,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자니 도저히 체력이 남아나지 않았다. 거울을 보면 하루가 다르게 인상이 변해가는 나를 보는 것도 신기하지 않았다(미간사이에 내 천이 생겨 없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다. 이 나이에 무리하게 뭔가 시작할 힘도 없고 그냥 좋아하는 일을 소소하게 하신다고 말이다. 하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노동의 강도가 소소함은이미 아득히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주 방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이 나의 현재 상황과는 상관없이 조금씩 쌓이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죄책감(?) 게이지가 풀로 차오를 때쯤 시골에 내려가 같이 시간이라도 보내고 오는데, 아버지는 항상 바쁘신 분이다. 시골에 계시지만 주변의 퇴직하신 어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셔서, 막상 시골에 내려가면 계시지 않을 때도 많았다.

어쩔 때는 할 일이 많다고 오라고 하셔서 가면 자리에 계시지 않았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는 3시간을 넘게 오지 않으실 때도 있으셨다. 얼마 전에도 오랜만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시골에 갔는데 오시지 않으셨다. 오라고 하셔서 갔는데 또 계시지 않으니 전날에 밤샘 근무를 하고 온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 그러려니 했던 아버지의 행동에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평소하지 않던 불만을 쏟아냈다.

"아버지 이러시는 거 한 번씩 너무 배려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뭐 그러실 수 있지. 약속한 거 깜빡하셨을 수도 있고, 갑자기 또 생길 수도 있지. 왜 화를 내."

"그럼 전화라도 한통 해주실 수 있잖아. 가끔씩 그냥 아버지지만 기분이 안 좋다고 진짜로."

"오빠. 오빤 다음에 태어나면 뭐가 될 거 같아?"

"뭐야 갑자기..뭐가 되고 싶냐고?"

"아니 뭐가 될 거 같냐고."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될 거 같냐고?"

"응. 오빠가 지금껏 살아왔으면서 좀 착하게 살았다. 아님 좀 나쁘게 산거 같다. 그걸 기준으로."

"그러니까 이 정도 살았으면 그걸로 태어날 거 같다. 이걸 얘기하라는 거지?"

아내의 대화 돌리기에 난 은근슬쩍 그녀가 쏘아 올린 대화의 궤도에 올라탔다. 현실과 상관없는, 생각을 유도하게 만드는 스몰토크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왜 그 질문을 한 건지도 궁금해졌다.

"왜 그걸 갑자기 묻는데?"

"날씨가 좋으니까 산도 보이고 강도 보이고 해서 오빠가 이런 이야기하는거 좋아하니깐 궁금하기도 하고."

"음..."

"넌 생각해본 거 있어?"

"아직."

"그럼 내가 생각하는 동안 너도 생각해봐."

"그래."

난 잠시 생각에 빠졌다. 가끔씩 우린 쓸데없이 진지해지곤 하는데 쓸데없는 진지함이야말로 우리를 창의적이으로 만들어주고, 창의적인 생각은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재미있게 해 준다고 믿고있다. 그래서 난 이런 대화가 좋았고, 이런 주제의 대화가 때로는 나를 몇 날 며칠을 생각하기도 하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도 '전에 얘기했던거 생각이 바꼈어 이걸로 할래'라며 단호한 말투로 생각이 바뀌었음을 전하기도 한다.

질문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뭐가 될 거 같냐였기 때문에 난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나를 생각했다. 착하게살았다기 보단 현실에 맞춰서 나의 수준에서 살았고, 타인의 가슴에 상처될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며 산거 같지도 않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마음도 안고 살았고, 한편으론 누군가를 미워하며 지냈던 거 같기도 했다. 그래서 절대적인 관점에서의 선함을 나에게 갖다 댄다면 그렇지는 않았다가 결론이며,

상대방에게 피해가 갈걸 알면서도 욕심과 순간의 본능으로 나를 위한 선택을 한 적도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랬던거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나의 행동이 상처가 되었다면 '내가 몰랐던' 부분에서 죄가 조금 감면이 되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을 이기지 못한 것은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니 저승에도 포인트 제도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마이너스였다.

음... 결론이 났다.

"난 이름 없는 야산의 크기가 좀 있는 바위가 되지 않을까 싶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구름이 되고 싶은데. 구름은 아무래도 엄청난 덕을 쌓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 같고, 적당히 나쁘게 살지는 않았으니, 축구공이나 샌드백 신발 이런 걸로는 안 태어날 거 같고, 그래서 조용히는 있게 해 주는데, 또 엄청나게 이타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으니, 바위로 태어나되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정도의 큰 바위로 태어나 한쪽 방향밖에 못 보게 해 주는 거지

'넌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살았으니 바위로 태어나 평생 움직이지 말고 한쪽만 보고 살아라'이렇게 심판을 내리면서 말이지." 그리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야산에 생긴 바위니깐 사람을 보기가 아주 힘들어 그래서 한 번씩 길 잃은 등산객들이 와서 잠시 쉬려고 바위에 걸터앉아 넋두리하는 것을 듣는 게 내가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거지."

"어중간하게 산거치곤 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

"그래도 똥퍼는 도구로 태어난다거나 힘센 짐승한테 산채로 찢겨서 잡아 먹혀 죽거나, 축구공으로 태어나서 평생 발로 차이거나 뭐 그런 것보단 낫지 않아?"

"그것도 그렇네."

"넌 생각해 봤어?"

"난 착하게 살아서 좋게 태어날 거 같은데 ㅎㅎㅎ. 오빠 난 오빠가 착한 것도 알고 가끔씩 말이 좀 셀 때도 있지만 그 순간뿐이란 것도 알고, 드라마 보면서 맨날 우는 거 보면 맘이 여린 것도 알아. 옷 사고 이런 거에는 엄청 아끼면서 불우이웃 돕기에는 큰돈 잘 내는 거 보면 오빠 나 만나기 전에도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충 보여. 아까 아버님한테 불평했던 것도 나한테 미안해서 그런 거 알겠는데 그러지 마 난 아무렇지도 않고, 그렇게 불만 조금씩 쌓아가다보면 나중에 미워하게되면 안되잖아. 누구때문에 일부러 부모님한테 불평하지마. 아버님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시는데 아무것도 아닌 걸로 오빠 그렇게 감정 드러내면서 원망하면 내가 더 불편해. 그래야 바위보다 더 좋은 걸로 태어나지."

한 번씩 아내는 어떤 말을 하기 전에 밑밥을 던진다. 그래서 아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 말을 시작하는구나 하고 보통 눈치를 채지만 이번에는 예상치 못하고 당했다.

저런 말을 던지고 내가 전혀 몰랐던 눈치를 하고 있자 뿌듯해하는 기운이 운전석까지 느껴졌다.

"아 당했네. 눈치 못 챘다 이번에는."

"점점 늘지?"

"아니 이번엔 내가 방심했지."

"그냥 인정해 ㅎㅎ"

가슴 안쪽까지 피가 도는 게 느껴지는 말을 들었다. 사소한 말이나 작은 배려에도 코가 아린 건 나이 탓도 아니고 가을 탓도 아니다(그렇게 믿는다). 평소에 차에 타면 찡찡거리던 아이도 오늘은 피곤했는지 곤히 잠들어있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에 일부러 불평을 쏟아낼 필요없다'

때론 상대방에게 동조해주기 위해서 때론 알아서 먼저 불평을 해주기도 했던 지난 날의 습관들이 참 못난 습관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겼다. 어렴풋이 옳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이 내가 신뢰하는 사람의 입밖에서 나오면 가끔 나만의 철학이 하나 만들어지기도 한다.

아이가 생기면서 둘이 조용히 앉아 대화할 시간이 부족했던 우리는 오랜만에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좋은 사람과 인연을 길게 이어갈 수 있다는 건 어쩌면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인생에 있어서 크나큰 행운이고 선물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선물은 이제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게 될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