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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필구 Nov 05. 2022

우리들의 일그러진 일상(3)

필구

재진이를 따라 그가 지름길이라고 말하는 길을 따라갔다.

어제 일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다시 한번 더 꺼내려니 2배의 용기가 필요했다.

다시 힘을 내서 말을 꺼냈다

"야.. 어제."

"아.... 야 아니다 다시 밑으로 가자."

재진이가 다시 나를 데리고 방향을 틀었다. 평소에 이렇게 리더적인 느낌이 아니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생애 마지막 경기에 나온 레이서처럼 나를 우회전했다가 좌회전했다가 하며 핸들 취급했다.

"야 그냥 이리로 가자 뭘 다시 돌아가."

"아 그냥 따라오라니까!!"

재진이가 갑자기 단단한 소리로 짧게 짜증을 냈다.

"왜 짜증을 내. 인마.."

그의 평소와는 다른 짜증 섞인 카리스마에 눌려 나의 목소리 끝은 한적한 절의 스님이 치는 목탁소리처럼 조금씩 잦아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낯선 환경에 겁을 쉽게 먹는 타입인 듯했다.

그때였다.

다다다 다다다 다다!!

우리가 가려던 방향 끝에서 누군가가 다리를 다친 아기 영양을 발견한 치타처럼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좌우의 팔이 어찌나 흔들리는지 팔만 몸과 분리되어있는 거 같이 보였다. 거리가 좀 있었지만 의기에 찬 얼굴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대한 실제상황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난 그때 내가 본능적으로 느낀 실제상황이 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느꼈었었지만 '난 아닐 거야'라고 애써 현실을 도피하려 했던 건지 아니면 정말 그들이 뛰어오는 것을 그냥 이상하다고만 느낀 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난 그들이 뛰어내려오는 것을 그저 멍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들에게 둘러 쌓였다. 두 명이었다. 두 명이 우리를 앞에 두고 허리를 숙여 헉헉대고 있었다. 둘러싸인 시점에서 예상했지만 그들은 어제 그 녀석 둘이었다.

 어제 내가 때리고 도망간 그 녀석은 여전히 백바지를 입고 있었다.  허리를 숙이고 헉헉대던 그 녀석은 호흡이 돌아온 건지 아니면 호흡이 딸려도 나 같은 거 때리는 데는 호흡을 돌릴 필요도 없다고 느낀 건지 갑자기 허리를 세우더니 말도 없이 나의 뺨을 쳤다. 그리고 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더니 한쪽 발로 나의 한쪽 발 아킬레스건을 툭 치더니 넘어뜨렸다. 일명 '아사바리'로 통하는 기술이었다.

몸에 힘이 빠진 상태로 몇 대 맞으니 짚이 다 빠진 허수아비처럼 나의 몸은 그의 손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신생아가 된 느낌이었다. 내 몸이 이렇게 가지고 놀기 쉬운 신생아용 곰돌이 인형 같을 줄 누가 알았겠나.

얼굴을 잠시 들었는데, 눈앞이 번쩍거렸다. 이내 코가 얼얼해지더니 코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난 코피가 수도꼭지 틀어놓은 수돗물처럼 그렇게 주르륵 쏟아지는 것은 처음 봤다. 그 후로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몇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윽. 윽. 소리만 연신 내면서 계속해서 맞았다.

처음으로 그 녀석이 말을 꺼냈다.

"코피 닦아라."

나의 교복 바지는 떨어진 코피가 튀어서 피방울이 군데군데 맺혀있었고, 새하얗던 신발은 갓 태어난 아기 치타의 얼룩처럼 변해있었다. 교복 소매와 안에 입은 셔츠는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더 이상 겁도 나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잠시 그 녀석이 나를 놓자, 그 녀석의 손에 의지하던 나의 몸이 기댈 곳이 없어졌다. 그러자 이별을 당한 사람처럼 비틀대다가 담벼락의 따뜻한 품에 안겼다. 담벼락에 나의 몸을 기대자 그 녀석은 질투 나가 났는지 기댄다고 발로 한 대 더 때렸다. 발로 한대 맞고 다시 벽에 부딪혀 주저앉았다. '어차피 담벼락한테 보내줄 거였으면 그냥 편하게 보내줬으면 되었을 텐데..'

 어쨌든, 주저앉고 나니 차라리 그 편이 더 편했다. 내가 왜 맞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재진이와 이 녀석들이 한 패인거 같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얼굴을 들면 또 맞을까 봐 실눈을 뜨고 친구를 찾았다. 그 녀석은 겁에 질린 얼굴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예상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이 협박에 못 이겨 나를 팔았구나.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었지만 그 두 녀석은 내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발로 밟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박자를 생각하지 않고 퍼붓듯 그들의 발은 나의 온몸을 엇박자로 깊고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때리다가 지친 그들은 나의 주머니를 뒤지더니 오늘은 꼭 책을 사야지라고 생각하고 둔, 친구를 팔아가며 지킨 그 돈을 허무하게 앗아갔다. 그리고는 돌아섰다. 한마디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넌 오늘 이거라도 없었음 뒤졌다."

난 아직도 멈추지 않는 코피를 멈추게 하려고 코끝을 꽉 쥐고 일어났다. 온몸이 쑤셔왔다. 보통 싸움을 하고 나면 정신이 없어서 시간이 좀 지나야 아프기 시작하는데 그날은 예외였다. 코를 잡고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언젠가 코피가 났을 때 턱을 들면 안 된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코와 손가락 사이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야 괜찮냐? 코피 계속 나네. 턱 좀 들어. 안 나게."

재진이는 내 턱에 손을 대었다.

"건들지 마라."

 난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다."

"닥치고 그냥 가라."

내가 잘못한 건 생각 못하고, 친구에게 계속 살기를 뿜어댔다.

재진이는 가지 않고 계속 서있었다. 난 손을 코에쥔 채로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뒤에서 누군가 계속 같이 걸어오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모른척했다. 횡단보도에서 잠시 멈춰 섰다. 조금씩 코피가 멎는 거 같았다. 이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스크래치 난 나의 자존심과 친구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마음이 더 아픈 거 같았다. 울음이 나올 거 같았다.

곧 신호가 바뀌었고 난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마음이 더 아픈 건 착각이었다. 역시 몸이 더 아팠다. 한걸음 뗄 때마다 오는 온몸의 통증과 저릿함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잊게 했고 눈물마저 삼켜버렸다.

횡단보도를 지나 집 근처 대형마트 앞을 지날 때였다.

"야 홍! 너 얼굴이 왜 이래? 맞았냐??"

"뭘 맞아. 놔라 집에 가야 돼."

"이 XX 어디서 맞았네 ㅋㅋ."

동네에서 유명한 무리들이었다. 그 녀석들은 항상 우르르 몰려다니며 공원 근처나 오락실을 배회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그냥 껄렁대고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노는 무리였다. 하지만 하교 후에는 다른 학교 애들이 그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교실 밖에서 만나면 더 험악하게 행동했다. 소위 '내가 우리 학교에서 친구들을 이렇게 대해도 우리 학교 애들은 나에게 아무 소리 못한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무리 애들을 길에서 만나면 그런 허세 때문에 평소보다 함부로 친구들을 대하는 녀석들이었다.

그 다른 학교 친구들 무리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녀석도 한 명 섞여 있었다. 일은 그때 또 터져버렸다.

"얼굴 작살 났네 ㅋㅋ."

개인적으로는 일면식도 없는 그 '유명한 녀석'이 혼자서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온 세상이 나를 무시하는 거 같았다.

"XXXX야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난 악에 받친 듯 소리쳤고, 배로 커지는 그 녀석의 눈동자를 보며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 녀석은 특히 잔인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누군가와 싸웠는데 같이 싸운 애를 변기에 얼굴에 집어놓고 눌러버렸다는 소문도 들은 적이 있었다.

난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마트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맞았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던 나를 그 미친 듯이 날뛰던 녀석도 주변 시선이 느껴졌는지 적당히(?) 뺨 몇 차례 때리더니 그냥 가버렸다. 인생의 다시없을 비참한 순간이었다. 난 그때 조용히 집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난 하지 말았어야 할 더 큰 실수를 저질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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