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아빠의 고백
일단 , 변명처럼 이야기하지만 나와 와이프는 출산에 대해 닦달을 받지도 , 커다란 계획이 있지도 않았다.
결혼도 많이 늦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 사회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했다는 커다란 변명. 그 뻔하디 뻔한 변명을 해결하지 못해 결혼이 늦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내 나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절한 준비를 마친 것도 아니다. 더 가난하게 출발하는 것. 여전히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미안한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를 산책으로 시작하고 , 늦은 저녁에는 넷플릭스로 시간을 보내며 평온한 소박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안온한 하루를 포기하고(?) 아이를 갖게 된 과정은 나중에 다시 이야길 해보겠다.
암튼. 나는 , 와이프는 각각 아빠 엄마가 되었다. 우리는 부모가 되기를 기원했으며, 각종 종교와 과학과의 친화를 통해 아이를 만났다. 그때 나이가 무려 48살이다. 지금 나는 얼추 50. 예전 같으면 손자를 봐도 볼 나이였고, 종편 티브이에서 신성우 씨가 딸을 키우는 화면을 보면서 "아니 저 형은 저 나이에 굳이 왜 고생을"이라고 혀를 차던 게 몇 년 전이다. 지금은 내가 딱 그 포지션이다.
여러 위로의 말이 오가야 할 상황이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만 먼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 친구가 없을 나이라서 친구 만나러 나갈 일이 없다.
내 친구들은 어렸을 때 아이를 낳아 이 문제로 와이프와 정말 거칠게 싸웠다.
나이를 먹고 보니 내 친구들의 "중앙선 위반 추돌사고 급" 잘못이었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와이프에게 독박 육아를 시키거나 , 아이가 자고 있는데 "나름 와이프 생각한다고 " 집으로 친구들을 데려와서 술을 마시고.
그렇게 우리는 핑계 좋은 불량 어른이 되어갔다. 내 친구의 아이들은 거의 모두 그렇게 자랐다. 아이들은 아빠의 어설픈 청춘에 끼어 분유를 떼고 , 아빠의 안주상에 올라온 고기를 나눠먹고 , 아빠와 소주잔을 짠 하면서 친구도 되어 주었다. 물론 그런 기억들도 아름답고 그 힘겨운 삼십 대에는 힘이 되는 추억이다.
지금 나는 완성형 아버지의 나이. 그러니까 모든 것이 완료된 시점의 아버지다. 경제적 압박도 벗어났어야 하고, 사회적 활동도 어느 정도 정화된 상황이어야 맞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모든 것이 늦어서인지 (어찌 되었던) 사회적 관계도 완료되어서 별 영양가 없는 자리에 나갈 일이 없다. 아니 내 인생 자체가 영양가 없음을 깨닫게 되어서일까. 단순해진 일상 그것을 뺀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아이의 육아에 투여할 수 있어서 고민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것을 벗어나야 할 욕구도 , 욕구를 불러일으킬 상황도 없으니 '이보다 더 정갈할 수 없다'라는 것.
주저리주저리 적다 보니 단점을 적고 싶은 손의 움직임이 거세진다. 그러니 일단 장점 한 가지만 쓰고 또 다른 장점을 머릿속으로 정리해야겠다. 장점 두 개에 단점 한 개 정도. 큰 양념 두 스푼에 설탕 하나. 그렇게 이어가야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나는 늙어서 이제 친구가 없고 , 지금 나이 오십에 평생 친구 하나 얻었으니 아직 말도 못 하는 아들이다. 하루종일 같이 있어도 아쉬운 친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