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feat- deux)
너무 늦게 아빠가 되고 보니 어쩔 수 없이 주목을 받게 된다. 그 주목의 이유라는 것이 '아빠가 잘생겼거나 , 통속적인 형태의 성공한 커리어가 있거나 , 혹은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분유 선전에 나올 만큼 인형같이 생겼거나' 머 그래야 하는데 , 이건 그냥 나이가 많아서 어느 집단에 가도 노약자 석을 지정해 주는 모습이라니.
이런 걸로 주목받을 줄은 몰랐다.
처음 난임 병원에서 진찰받을 때도 나이로 인해 온 병원의 기술력이 집대성된 케이스처럼 논의가 되고, (정작 우리 부부는 운도 좋았고 몸도 좋았다. 별 다른 이유가 없었고 그냥 결혼을 늦게 했고 임신 시도가 늦었다는 것)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의사의 한마디 " 이번에 정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최선을 다해 봅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초반 인류가 망조가 들었을 때, 인류 구원의 계산을 하던 교수님의 모습이 왠지 오버랩되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안고 조리원에 갔을 때, 이때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끝난 후였지만 , 그래도 그 무대(?)에 서니 그 어색함은 어쩔 수 없었다. 조리원 가면 아빠들이 서는 무대 그곳, 신생아를 창밖에서 보는 공간. 그곳에 모인 아빠들은 그냥 스쳐 봐도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막 유치원 다닌 것 같은' 아이들. 아니 아빠들이다. 헤어스타일도 나와는 다르게 컬을 올려 다듬고 다니고 , 머 암튼 원장님은 나를 대하기 편했을 것 같다. 기억하기도 쉽고 구분하기도 쉬운 아빠니까. 물론 우리는 나이만 먹었지. 저 꼬꼬마 아빠들 엄마들보다 아는 게 더 없었다.
심지어 우리는 조리원 퇴원 후에도 원장님께 야밤에 전화를 걸어 "지금 아기가 막 울어요 어떡해요"를 시전 했다. 최고령 부부가 말이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한다. 동네 산책에 무슨 꾸밈이 있으랴. 원래 외모 가꾸기를 포기하고 사는 지라 머리도 어젯밤에 감고 잔 후 대충 부스스한 채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건널목에 서있던 동네주민 할머니의 한마디 " 아빠여? 할아버지여?" 나는 그날 이후로 산책 나갈 때도 가급적 늙어 보이는 옷과 아이템은 절대 하지 않는다.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거스르는 지적에 '아이에게 미안' 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다. 물론 아직은, 아직은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와 아이의 간극. 나와 사회적 아빠의 평균치는 정상에 수렴할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이대로 나는 더 늙은 아빠가 되어 가는 것. 아이는 '우리 아빠는 왜 다른 아빠와 다르지?'에 대한 철듦이 빨라야 하는 것.
아들에게 페널티를 주는 기분이다. 처음 이런 기분이 들었을 때, 와이프에게 선언했다. "내가 돈이라도 많이 벌어놓을게. 그래야 아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아" 물론 이 조건은 젊은 아빠 늙은 아빠 공통분모라는 것을 슬쩍 뭉개는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아들이 자의식이 없다는 전제하에 '나만 부끄러운 조금 낯선 아빠'를 수행하면 되는 일. 이제 아이가 어린이 집을 가고 , 아빠가 참여하는 여러 일이 생길 텐데.
나는 안티에이징을 사실 싫어했다. 나는 어릴 때 꿈처럼 소설가 최인호 선생처럼 늙고 싶었다, 그것도 빠르게 말이다. 내가 간과한 것은 최인호 선생은 그 동년배 사이에서 늙은 아빠 정도의 캐릭터는 구축하지 않으셨다는 것. 또래의 아빠였고 , 늙은 최인호 시절에는 성장한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
사소한 것부터 , 거대한 것까지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아들이 처음 태어난 날. 아들 처음 안아볼 때 내 팔의 좌우를 구분 못하던 혼란도 이겨낸 터, 아들이 원한다면 젊게 사는 것 따위 어렵겠냐. 그 좋은 술도 안 마시고 살아가는 나다.
며칠 전 쇼츠를 보는데 , 어린이집 장기자랑에 부모 코너였다. 갑자기 아이의 아빠가 나와서 비보잉을 하는 것이었다. 감탄 후에 나도 속으로 결심했다. ' 나도 어릴 때는 무대에서 절대 주눅 드는 법이 없었지'
나의 치기가 작동했다. 열심히 연습해 놓고 , 언젠가 그날이 오면 아들이 빛날 수 있도록.
예전 영상을 한참 보고 있을 때, 와이프가 옆에서 물어온다 "머 하고 계세요? 춤을 보고 있네요?"
"응, 저번에 아이들 장기자랑에 아빠들 춤추는 거 봤잖아. 나도 나중을 대비해서..."
".... 우리 아들 어린이집에 가려면 몇 년 남았어요. 그리고 말이지요. 다른 부모들은 오빠가 지금 보고 있는 듀스라는 댄스가수를 모를 거예요. 다들 그때쯤 태어났을 겁니다"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을 돌다가 돌아온 주인공 조셉쿠퍼 가 딸 머피를 만나는 장면이 생각났다.
아빠는 늙지 않았고 딸은 늙었다. 얼추 시곗바늘을 잘 맞추면 간극을 줄이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아들의 시계와 나의 시계는 크기도 다른데 어찌 시간을 잘 맞출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