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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게 식었다.

예전 곰치국

by 밥 짓는 사람


"짜게 식었다"라는 말을 봤는데,


어원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검색해 보니 시답잖은 유래부터 그래도 근거가 있는 말까지.


요즘은 그 출처가 굳이 국립 국어원이 아니더라도 '많이 쓰이면' 인용해서 쓴다. 그것도 문장에 엄격한 신문이나 방송에서 말이지.


짜게 식는다 라는 말의 해석 중 가장 찰떡같이 달라붙었던 해석은 "연인에 대한 애정이 급격하게 식는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냥 아무 상황에서나 대입해도, 굳이 연인이 아니더라도 "나 너를 보고 있었는데 내 감정이 짜게 식었어 "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응' 하면서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설령 내가 그 말을 듣는 당사자라고 해도 말이다. 나 같이 감정의 찌꺼기가 깔끔하게 정리 안 되는 소심한 성격이라고 해도 오히려 분노하지 않고 ' 그 먼가 모를 나로부터 시작한 이 관계의 부서짐'에 대해 동감하고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왠지 나도 그 맛을 ,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뜨겁게 김치찌개에 두부가 설설 끓고 , 덩어리로 뭉텅뭉텅 썰어 넣은 목살이 잘 익어서 결대로 끊어지면 육즙에 김치의 설겅한 느낌이 같이 붙은 그 한 숟갈. 뜨거운 밥 위에 올려 먹으면 머리카락 사이사이에서 뜨거운 김과 땀이 흘러내려 끈적한 내 진기가 흘러내리는 그런 밥상에서 , 갑자기 차게 식어버린 그 찌개. 국물을 슬쩍 떠보니 , 빨간색보다 그 짜게 느껴지는 염분이 지독하게도 혀를 내두르게 하고 우무처럼 굳어가는 국물에 두 번 손이 안 가게 만드는 그 느낌 말이지. 게다가 두부는 부드럽지 않고 섬벙섬벙 구멍이 보이는 그런 색을 띠고 있는데 , 아까 맛있어 보이던 목살의 지방 부분에는 뜨거울 때 보이지도 않던 돼지 등급 도장이 보이는 그런 맛.


"짜게 식었어" 감정이 식으니까 당신에게서 굳이 감추려고 안 했던 그 동등하지 못한 것들이 한 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와. 그것도 말이지. 식어서 그런지 말캉말캉한 젤리가 아니라 푸딩도 아니고 그저 기름기에 붉은 고춧가루 맛이 불어서 흐르고 있어.


. 짜게 식었던 그 수많은 관계들이 생각나면서" 왜 우리는 늘 뜨거운 찌개가 되지 못할까. 차라리 그러면 아직 끓이기 전이면 말이지. 서로에게 다 녹아버리기 전에 약속이라도 좀 남겨놔서 , 아니면 중간중간 물이라도 부어서 짜지라도 않게 해달라고 암묵적으로 설계를 좀 해놓던지. "


아니다. 그러고 보니 끓었다가 식어도 짜지 않은 그런 찌개를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뭉근하게 설설 끓여서도 김도 안 나고 , 잠시 한눈팔다가 와서 밥상에 앉아도 보이는 그 색 그대로 설설한 매콤한 맛을 내는 그런 찌개 말이지.


찾아보니 우리 사이에도 그런 찌개가 있었네. 기억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주문진 그 동네가 지금보다 네온도 좀 별로 없고, 버스터미널 옆 골목에서 파스텔 톤 담벼락 따라 걸어 들어간 아주 작은 식당. 주문을 하면 "한상에 밥과 젓갈 김치 몇 가지 김 몇 장 이렇게 담아주는데 , 스뎅 국그릇에 한 대접 퍼주던 연한 붉은 빛깔 찌개 " 그게 곰치국이었어. 그래 곰치국! 물캉물캉한 살이 흐르고 아귀찜에서 잘 안 먹던 껍데기 같은 것들이 떠있고, 강원도 김치는 다 이런 것인지. 그냥 소금만 넣어 익힌 것 같은 짠지가 물에 씻겨 부들부들 힘을 잃고 있는 국 한 사발. 주인 할머니가 가져다줄 때부터 그렇게 뜨겁지도 않고 , 어젯밤 밤새 소주 마셔서 입에서는 플라스틱 냄새, 위장은 밤새 찹쌀떡 팔던 학생 몸뚱이처럼 추워서 오들 거리는 그때, 그렇게 뜨겁지도 않은 곰치국을 후루룩 넘기니, 식당에 앉아있는데 목욕탕 욕조에 몸을 넣은 것 같이 몸이 곰치국처럼 풀어지더란 말이지. 코도 훌쩍거렸어. 더럽게도 말이지. 나는 한 숟갈 뜨고 국물에 고춧가루 기운이 가라앉을까 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 뜨겁지도 않은 국물이 가라앉지도 않더라고. 스뎅 그릇이 다 비워지는데 식지도 않게 다 비웠어. 한 사발을.


식어도 그렇게 짜지 않아. 신기하지? 별거 없는 것들을 끓여서 더렇게 소박해서 그런가? 곰치도 과하게 다 쏟아내고 굳어버리지도 않고, 별거 없이 붉으죽죽한 강원도 김치도 말이지. 그냥 김치 속내도 없이 김치라고만 하고 있는 것 같으니.


지금은 그렇게 스뎅에 담아주는 국 한 사발은 없어. 아아 다른 곳에는 있겠지만 '그 파스텔 담벼락 그 할머니 그 식당' 아마 없을 거야.


지금은 그 소박한 한 그릇도 여러 사람 손을 타서 그런가 뜨거운 부루스타에 국 냄비 올려서 이것저것 꾸미도 올리고 해서 한 이만 원씩 받더라.


시원했던 , 아니 지금도 시원한 국물이라고 하는데 글쎄 , 예전 스뎅 한 사발 맛은 아니겠지. 그 한 사발 가격이 5000원 할 때 이야기니까 지금보다 한 삼십 년 전 즈음 이야기인 것 같네. 나도 좀 덜 비겁할 때니까.


국이 짜게 식지 않고 말이지. 그런 때가 있었다는 건 그냥 내 기억인가?


살면서 너무 짜게 식고 다시 끓이고 물 붓고 그렇게 치졸하게 살아서 그런가 그 국 같은 장면을 그리워할 때가 많아. 입도 지쳤고 , 그렇게나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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