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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하는 손님을 잘 챙기세요.

by 밥 짓는 사람

한동안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손님' 홀대하는 뉴스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관광지에서의 홀대가 먼저 영상으로 주목을 받았지요. 여수가 그랬고 울릉도가 그랬고

여타의 맛집 명소들이 이런 영상으로 인해 피해(?)를 받았습니다.


머 억울한 영상도 있고, 정말 '야 돈 좀 벌었나 보다 정신줄 놓았구먼' 하는 영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크게 든 생각은 ' 역시 식당 하는 사람들 머리가 좋지는 않아' 하는 자조적 영상도 많았습니다. 저도 식당 하는 입장에서 다 이해가 됩니다. 반찬 한상 만드는 것보다 두 명 상 만드는 게 맞고, 가게도 좁은데 회전에 방해되고 , 다 좋습니다. 식당 하는 입장에서 해석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요.


정말 그 식당이 잘되려면 어떤 손님이 어떻게 빌드업되어 방문게이지가 쌓이는 게 좋을까. 하는 것을 찾아볼 여유가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어릴 때, 맥주와 칵테일을 주로 파는 바 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위치는 건대 지하철 역 앞이라 뜨내기손님이 많기도 했지만 , 사장 형이 워낙 영업을 잘해서 주말이면 자리가 없어 서서 맥주를 마실 정도 호황을 누리는 가게였습니다. 그 좁은 곳에서 하루에 몇백의 매출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한 적이 많았지요. 단순히 오는 고객들에게 안부 잘 전하고 , 칵테일 잘 만들어주는 것이 다 가 아니었습니다.

평일 한가한 저녁, 창가에 혼자 앉은 남자 손님들 몇몇 을 보면서 저에게 퀴즈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자, 저기 카스 한 병을 시키는 손님이 있고 , 버드 아이스 세트를 시킨 손님이 있다. 너는 어떤 손님에게 더 신경을 쓸래?"

매출이 우선이니까 저는 버드아이스 손님을 찍으려다가 너무 뻔한 대답인 거 같아서 카스라고 답을 했습니다.

사장은 다시 물어오더군요 " 그러면 그 이유는 뭐야? "

"그냥요. 좀 짠해 보이잖아요. 이 신나는 술집에 짝도 없이 저렇게 혼자 앉아서.... 아! 저 아저씨 저번주에도 혼자 왔어요"

"대답이 엉성하긴 했지만 정답이다. 네가 논리적으로 맞춘 것 같지는 않고 , 네 말들을 조립하면 정답이야"

어쨌든 정답이다. 내가 물었다. 진짜 정답은 뭐냐고.

" 여기는 이쁜 여자들이 잘생긴 남자들하고 와서 실없는 농담 하다가 바에서 연애도 하고 , 아니면 기념일에 와서 양주도 마시고 하는 곳이야. 맥주는 그냥 구색 맞추고 뜨내기손님들 잡으려고 갖다 놓는 메뉴인데 , 여기서 제일 경계하는 손님이 저 양주 마시는 커플이야. 오늘 분위기 안 좋으면 다시는 안 오는 슈퍼 뜨내기지."

그랬다. 주말이면 속칭 물 좋다고 바 앞에 서서 테킬라를 샷으로 마셔대던 사람들도 그냥 별 소득이 없으면 몇 달을 오지 않는다. 물론 다른 바에 가서 똑같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저 맥주 마시는 수수한 친구는 여기 구경 오는 거야. 어차피 집에 가서 혼자 마실 바에는 여기서 이 정도 가격의 맥주는 투자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그런 친구가 경계를 풀고 담을 넘을 때 이 가게는 가장 친숙한 공간이 되는 거야. 본인이 혼자 개척한 곳이니까 저 친구가 그동안 마신 카스가 몇 병인 줄 알아? 계산되나? 안되지? 그럼 얼른 가서 쥐포 구워서 서비스로 드리고 와"


사장의 말을 믿거나 말거나였지만 , 이 동네에서 장사로 잔뼈가 굵은 양반이었습니다. 나에게 장사를 하는 여러 팁을 알려주었지요. '매장에서는 앉아있지 않는다' ' 화장실은 최소 한 시간에 한번 확인' ' 친척이 와도 공짜술은 없다 차라리 용돈을 줘라' 등등. 그럴싸한 내용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저녁, 수요일은 사실 손님이 한가한 날입니다. 찾는 사람도 가게를 지키는 우리도 서로 한가한 날. 초 저녁에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네 오늘 거기 저녁에 통으로 예약이 되나요?" 전체 대관을 해본 적이 잘 없었지만 그날은 대관을 하기로 했습니다. 입구를 닫고 오기로 한 손님들 열댓 명이 왔네요. 누가 예약을 했는지 가늠이 안되고 있었습니다. 아는 얼굴이 없었어요. 그때, 나이 든 어른을 부축해서 온 청년이 어른에게 말을 전하네요.

"교수님 여기가 제가 단골로 오는 그곳입니다. 아주 분위기 좋아서 오늘 특별히 부탁해서 저희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

가게 앞 대학의 모 연구실 전체 회식이었습니다. 모시고 온 분은 정년이 지나셔서 은퇴한 교수님. 제자들에게 근사하게 술을 사고 싶다고 해서 조교에게 근사한 곳을 섭외하라고 한 것이라고. 교수님 취향에 맞게 60년대 영화음악을 틀어드렸고, 제자들은 교수님 손을 잡고 폴카(?) 정확지 않다. 암튼 예전 춤을 추고 , 서서 와인을 마시고 코냑을 마십니다. 대관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두 시간 정도 술을 마시고 돌아갔습니다. 가게에 장식으로 비치하고 있던 코냑은 모두 동났고 , 당일 매출은 이틀 매출을 넘어섰습니다. 700만 원이 넘었네요.


그 카스를 혼자 마시던 손님에게 특별히 마음이 가서 신경 써준 것은 아닌데 , 그 손님은 혼자 온 자기를 박대하지 않고 사소하게 인사를 주던 우리 가게를 "제가 좋아하는 가게"라고 표현했습니다. 가게는 그런 마음을 나눠줄 수 있어야 하지요. 그 마음을 주는 데는 부가세가 붙지도 않고 별도 식자재를 사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혼자 온 손님이 계란노른자처럼 뚱하니 떠다니지 않게 "가게에서 밥 한 끼 편하게 잘 먹었다"정도의 휘저음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 물론 저 추억은 20년 전 추억입니다. 그러니 상황도 지금과 다르고 , 매출 규모도 다르니 기껏 기백만 원 때문에 그렇게 가게를 돌릴 수 없는 곳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 지금의 가게에도 혼밥은 매력적인 전환포인트. 가게에 대한 이야기, 월 300만 원을 들여서 블로그 운영단을 하거나 , 말 같지도 않은 인스타 광고 만들라는 사람들 전화에 시달리지 말고 혼밥 오는 사람들을 잘 챙기는 것이 낫습니다. 혼밥 와서 꾸부정하게 의뭉스럽게 먼가 자꾸 하려는 사람. 지금 우리 가게에 대한 근사한 리뷰를 남기고 있는 중입니다. 혼밥으로 여기까지 들어온 소심한 J. 내가 아는 밥집 소개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손님들도 다 압니다. 당신의 가게 블로그 리뷰가 유료 서비스 인지. 기꺼이 돈 내고 용기 있게 적어준 사람의 리뷰인지.

설령 리뷰를 못쓰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와서 혼밥 한다고 하면 어떤가요.

나중에 밥 먹으러 식구들 끌고 와서 이 가게 메뉴 못 먹는 며느리까지 밥상 앞에 앉힐 수 있습니다.

트러블은 그 양반이 담당할 것이고, 당신은 정성껏 밥상만 차리면 됩니다.

혼밥은 이렇게 돌아올 수 있으니 혼밥을 두려워 말아야지요.


식당에 사람 오게 만드는 게 쉬운 일인가. 오는 손님 막지 말아야지.


아! 저 사장님 말고 여러 사장들이 말해준 이야기들. 생각나면 또 적어봐야겠습니다.

적으면서 나도 다시 배워야지요. 식당으로 밥 먹고 살라면 말입니다.

야구선수 오타니가 행운을 위해 쓰레기를 줍는 것보다 쉽습니다.

당신의 하루에 직접 돈까지 내면서 행운을 주겠다고 오는 손님을 말이지요. 내치면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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