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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Dec 30. 2020

술을 끊어도 생각나는 해장국

해장국은 어떻게 알코올 중독자를 유혹하는가

금주 시작한 지 이제 5개월.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침에 만나는 숙취는 술을 그만 마셔야 하나 하는 인생의 최대 숙제로 존재한다.
그럴 때 생각나는 건 역시 쓰린 속과 납덩어리로 변해버린 머릿속을 살려주는 해장국. 바로 그것이다.
해장국. 어떤 술꾼들은 그런 말을 한다. “해장하는 쾌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다.”
밤새 추운 골목을 허우적대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친 오래된 목욕탕. 나는 밤새 추위에 떨었으니 바로 옷을 벗고 온탕으로 들어간다. 온탕에서 느껴지는 그 저릿함.
나는 이제 풀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온탕의 김은 눈앞을 가린다. 나는 이제 좀 쉬어도 되겠다.
해장을 할 때 내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다. 뜨거운 국물을 입안에 넣어서 지친 세포를 탈락시키고 (그러다 보니 입천장에서 내피를 벗겨내는 과정은 일상화가 되었다.) 식도를 넘어갈 때의 진동 감. 그리고 위에 도착한다.

밤새 추운 곳을 헤맨듯한 지친 위에 뜨거운 국물이 들어간다. 위벽을 지져주는 느낌. 설마 진짜로 지지겠는가... 그 정도의 느낌이겠지. 위벽 사이사이에 도착해서 위로해주는 뜨거운 국물... 덕분에 나는 온탕에 주저앉은 사람이 되었다. 근육도 별로 없어서 부실한 몸뚱이가 위로받는 느낌.
국물을 마시다 보면 몸이 깨어난다. 정수리가 뜨거워지면서 흐르는 땀이 아닌 진액처럼 구차한 땀이 난다. 술냄새도 충분히 나는 그런 땀. 끈적거리는 땀에 어제의 기억과 이별할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 한 그릇 뜨거운 해장국을 마시고 나면 이 비루한 세상에 오늘 하루 더 버틸만한 힘이 생긴다. 졸리기도 한다. 그럴 때 십 분 정도 구석에 앉아 졸고 나면 눈앞이 환해진다. 나는 어제도 끈질기게 살았다. 오늘도 하루 사는 것이 가능하겠다.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낚시를 데리고 다니셨다. 낚시를 가서 술 한잔 하시는 불친절한 아버지는 가끔 맥주 한잔. 소주 한잔을 장난으로 주시곤 했다.
취하겠는가. 취하지는 않지. 5학년 때는 해구 신술도 한잔 주신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아들에게 술꾼의 길을 열어주고 싶었던 젊은 아버지는 술자리에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지금은 전혀 흔적이 없지만 예전 뚝섬에는 야밤에 배를 띄웠다. 배안에서 아버지는 야경을 보면서 견지낚시를 하시고 나는 배 타기 전에 사 왔던 알감자를 씹으면서 물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다.
집에서 아버지 술상 옆에서 술 한잔 얻어마시는 건 일종의 이벤트였지. 나의 술자리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집이 비었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신 날이다. 친구와 못된 모의를 했다. 소주를 사다가 진짜로 먹어보는 것. 일탈이었다. 우리는 늘 있는 심부름처럼 행색을 꾸미고 소주 두병과 콜라 큰 놈을 샀다. 집에 왔다. 소주를 한잔 따라봤다. 소주를 우리끼리 먹어본 건 처음이다. 사무라이의 다짐 같은 마음으로 술잔을 바라보다가 둘이 동시에 잔을 들이켰다. 나는 몇 번 입에 대본적이 있지만 사실 한잔 가득은 처음이었고 앞에 앉아있는 놈은 생긴 건 조폭인데 사실 술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단숨에 빨간 뚜껑의 맑은 소주를 들이켜고.... 절망스러웠다. 차라리 쓴 약을 먹거나 엄마가 쓰는 아세톤을 마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마실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촌스러운 중학생들은 어리석었다. 두병을 샀는데 각자 앞에 놓고 두병을 동시에 따서 한잔씩 각각 잔을 채운 것이다. 한잔씩 마시고 냉장고에 있던 김치를 우물거렸던 우리는 이제 선택을 해야 했다. 저술을 다 버리는 것. 아니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시도를 하는 것.  친구는 단호했고 행동이 빨랐다. 자기 집도 아닌 곳에서 냉면 대접을 찾아냈다. 냉면 대접 두 개에 소주 한 병씩을 따르고 아까 사 온 콜라를 채웠다. 찰랑찰랑하게.... 친구는 말한다. “ 한 번에 마시고  없애자. “  그랬다. 우리는 무지했고 용감했다. 콜라가 담뿍 들어간 냉면 대접 소주(?)는 그냥 콜라 같았다. 우리는 완샷을 했고 묵묵히 자리를 치우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천장이 눈앞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을.... 차마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만 그런 거라면.... 사실 쪽팔리지 않는가....’ 여물지 못한 수컷의 존심 같은 건가... 잠시 후 친구가 조용히 말을 건네 온다. “천장이 내려온다....” 다행이다. 우리는 같은 느낌이었다. 짝사랑하는 옆반 여자애 이야기. 집이 어려워서 힘들다는 이야기...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나누었다. 물론 우리의 오판이었다. 이야기를 다하고 난 시간은 저녁 10시밖에 안되었으니.... 친구는 화장실을 가겠다고 일어났다. 큰집이 아니었다. 평소에 1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가는 친구의 모습은 기가 막혔다. 벽을 잡고 가는 모습... 물론 나는 일어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날 시간과 공간의 왜곡을 경험했다.


다음날 아침이다. 우리는 휑한 모습이었고 아침밥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100미터 떨어진 우리 집으로 가야 했다. 머리는 두들겨 맞은 거 같았고 뱃속은 누군가가 와서 할퀸 거 같은 느낌.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에 길을 걷는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니 엄니가  아침밥을 차려주신다. 계란 프라이 반숙. 덴뿌라볶음. 그리고.... 김칫국이다. 멸치를 넣고 끓인 국물에 삭아가는 김치와 김치 국물을 넣고... 싸구려 덴뿌라를 넣어서 끓이셨다. 콩나물도 들어있다.  고춧가루는 가라앉아있지만 국물은 홍색이다. 아니 자세히 보니 감귤색이다.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니... 뱃속이 짜르르 해졌다.  국물을 계속 떠서 먹었다. 간간히 밥도 한 숟갈 뜨고 계란도 먹고... 얼굴에서는 진땀이 뚝뚝 떨어져서 국그릇에 빠진다. 내땀이 양념처럼 떨어진다. 부들부들한 싸구려 오뎅이 씹지 않고도 목을 타고 넘어간다. 분명 나는 국을 마시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가던 목욕탕 그 냄새가 난다. 나는 풀어지고 있다.

여전히 숙취는 나를 괴롭힌다. 그럴 때마다 우거지 해장국. 선지 해장국. 콩나물 해장국. 라면. 칼국수... 많은 음식을 만난다.  하지만 어떤 날은 술을 마신 이유도 명확하지 않고 술을 마시면서 화를 냈는지 온몸이 망가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여지없이 생각난다. 엄니가 끓여주신 그 김칫국. 그것만 먹으면 다시 진땀을 흘리고 행복해질 수 있다. 시간이 너무 오래돼서 , 그때의 김치도 아니고 그때의 오뎅도 아니지만.... 별 말없이 툭툭 끓여주신 그 국물.... 그 온도를 계속 기억한다. 장을 풀어준다. 해장국....
인생에서 처음 먹은 해장국이 계속 꼬여가는 나를 풀어준다. 덕분에 진땀을 흘린다. 괴로운 진땀이 아니라 이별을 행복하게 해주는 해장국. 김칫국이다.


이제  더 이상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아니 마시지도 못한다. 지독한 사랑에서 나는 상처를 주기도 입기도 했다. 술과의 사랑은 여기까지다. 나는 위로받지 못하지만 다른 이가 분명히 술의 너른 가슴에 안기어 울고 웃으면서 위로받을 것이다. 나는 위로받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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